▲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런데 친이계 일각에서는 “이 의원이 그동안 끊임없는 비리연루 의혹에 시달리다 지쳐 ‘하산’을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여전히 정국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고, ‘대통령의 형’의 정치권 존재 자체만으로도 비리를 양산하는 ‘숙주’ 역할을 한다는 의심을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4·27 재·보궐 선거를 전후해 당 지도부가 개편될 경우 이 의원이 정치권을 떠날 수도 있다는 예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은 2년이 남았지만 그에 앞서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은 과연 하산을 준비하는 것일까.
그동안 이상득 의원의 진퇴 문제는 이명박 정권의 권력구도를 읽을 수 있는 바로미터 바로 그것이었다.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 총선 과정에서 친이계 의원 55명이 이상득 의원의 불출마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던 것을 기점으로 ‘형님’의 퇴진 문제는 여권의 권력구도를 결정하는 상수였다. 하지만 이상득 의원은 소장파 등의 온갖 견제에도 불구하고 정권 3년차를 넘기고 있다. 지금과 같은 기세라면 이 대통령의 이임식 참석은 물론, 19대 총선 출마도 점쳐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호지세로 달려왔던 이상득 의원의 권력 의지에 변화가 온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는 친이계 측근 의원들을 잇달아 만나며 정국 운영 방향과 쓴 소리 등을 경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친이계 핵심들 일각에서는 “이 의원이 그동안 너무 시달린 나머지 하산하기 위해 광범위한 의견 청취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3년차를 넘어서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만사형통’ 이상득 의원의 하산설은 왜 나오는 것일까.
가장 먼저 나오는 이유로는 이 의원이 그동안 각종 대형사건의 배후로 의심을 받아왔는데 이제는 방어에 한계가 왔다는 분석이 있다. 친이계의 한 핵심 의원은 이에 대해 “최근 모 인사로부터 ‘검찰이 이상득 의원과 관련된 의혹 리스트 40개를 작성해 놓고 조질 시기만 조율하고 있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일부에선 이것을 전해들은 이 의원이 ‘떨고 있다’라는 말까지 나오더라. 그동안 총리실 민간인 사찰 의혹 등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건에다 정보계통에서 흘러 다니는 비리 의혹들까지, 이 의원의 이름이 거론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잘 막아왔지만 최근 들어 이 의원이 힘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서서히 차기 정권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검찰의 ‘등돌림’도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검찰에서 올라오는 각종 이상득 의원 관련 X파일에 대한 청와대 민정 파트 등의 방어로 이 의원이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향후 ‘권력 이양’을 준비해야 하는 검찰이 차기 정권과의 ‘딜’용으로 ‘이상득 리스트’를 만들어 철저한 조사를 할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정권 말로 갈수록 검찰 컨트롤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이명박 정권은 지난 1월 말 고검장급 인사를 단행해 ‘반 이상득’ 검찰라인 견제에 나섰다. 이상득 의원 직계라인 노환균 대구고검장을 의도적으로 견제해온 김준규 검찰총장에 대한 불만이 인사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의 법조개혁안 입안을 통해 검찰 힘의 상징인 중수부를 폐지하고 검찰과는 별도조직인 특수수사청을 신설하려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이상득 의원이 정권 말까지 검찰을 안전판으로 삼으려는 의도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검찰 견제에도 불구하고 이상득 의원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이 정권 말기로 갈수록 ‘반 이상득’ 라인을 통해 하나씩 흘러나올 가능성이 크다. 역대 정권에서 검찰의 차기 정권 줄서기 행태를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진위를 떠나 의혹들이 수면 위로 불거지는 것 자체가 집권 후반기로 접어든 이명박 정부나 이 의원에게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의원은 이런 검찰의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는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일정 시점에서 차라리 손을 털고 하산하는 것이 덜 다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검찰의 압박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이계 내부에서도 이상득 의원을 흔드는 징후가 나타나면서 이 의원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 퇴로를 마련할 때가 된 것 아니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 의원은 올해 초 리비아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해 ‘자화자찬’ 기자회견까지 한 바 있다. 지난해 7월 국정원 직원의 첩보활동을 둘러싸고 ‘한국-리비아’ 양국관계가 악화되고 우리 선교사가 불법선교 혐의로 리비아 당국에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특사로 파견된 이 의원이 지난해 10월 카다피 최고원수를 만나 민감한 외교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국회 정보위에서는 친이계 의원들 일부가 나서서 “왜 국정원 공식라인이 아니고 정부의 외교 관계자도 아닌 ‘비전문가’ 이상득 의원이 리비아와의 외교 갈등을 해결했느냐”고 따지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당시 참석했던 한 정보위원은 이에 대해 “한 친이계 인사가 ‘왜 공식 라인을 통하지 않고 외교력이 검증도 되지 않은 인사를 국가의 대표인사로 보내느냐. 실세면 아무 일에나 관여해도 되느냐’고 따졌다. 이에 국정원 측은 ‘리비아는 카다피 원수가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우리도 정권 원로가 가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라는 답변을 했다. 그러자 그 인사는 ‘그런 식으로 하면 젊은 독재자가 있는 나라라면 우리도 젊은 실세가 가야 한다는 말이냐’며 따졌다. 국정원이 정권 실세 때문에 원칙 없는 외교대응을 했던 것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정치권에서 ‘형님 외교’에 대한 비판이 괜히 나왔겠느냐”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여당의 한 핵심 친이계 관계자는 “친이계 의원들마저도 이상득 의원의 무원칙하고 일방적인 국정개입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게다가 이 의원이 욕심이 많다는 평판까지 나오고 있다. 의원들이 외국에 특사로 나가 터를 닦아 놓으면 그 뒤 열매는 자신이 따먹는 식으로 하다가 비난을 받은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런 것들이 누적돼 이 의원이 친이계 의원들에게마저 인심을 잃고 있다. 최근 들어 그런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의원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이 권력 후반기로 갈수록 힘이 빠져 친이계 의원들에게마저 견제를 받는 형국이 오면서 ‘이제 하산할 때가 됐나’라는 생각이 더 간절하게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의원의 하산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친이계 일각에서는 ‘일체 국내 정치에 관여하지 말고 외유에 나서는 게 좋다’는 의견이 있다. 의원직은 최소한의 예우로 보장해주고 이명박 정권의 남은 기간 동안 일본 중국 등지에서 보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의원의 존재 자체가 ‘만사형통’이라는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일으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방해하는 최대의 걸림돌이자 레임덕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외유설’은 공감대를 얻고 있다.
하지만 앞서의 친이계 핵심 의원은 이에 대해 “배지를 달고 있는 것 자체가 정치행위인데 아무리 외국에 간다고 한들 국정간섭은 불가피하다. 아예 의원직을 사퇴하고 어디든 가서 칩거를 해야 한다. 본인으로서는 ‘죄도 없는데 왜 그러느냐’라고 할 수 있지만 이명박 정권의 성공을 위해선 이상득 의원의 대승적인 결심이 꼭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산론’에 대한 반론으로 ‘정권책임론’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 의원이 갑자기 정계은퇴를 하는 것도 우습다. 큰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밀려 나가야 하느냐. 왜 억울한 희생양이 돼야 하나.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끝까지 현 정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와서 하산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이명박 대통령 치적마저도 모두 부인하는 것이다. 또한 한 번 힘이 빠진 상태에서 물러나면 무자비하게 공격당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이다. 끝까지 버티는 게 이기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상득 의원은 정치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일부 친이계 핵심 의원들마저도 “역대 정권 거의 모두가 친인척 문제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라고 지적하는 상황에 직면한 이상, 정치자유보다 국가대의를 생각할 때도 됐다는 게 여권의 대체적 분위기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자의든 타의든 버티기 지속?
최근 들어 여당 친이계에서마저 이상득 의원 ‘하산론’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의원이 하산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이 의원이 공직뿐 아니라 의원직에서도 자진사퇴할 경우 이른바 ‘이상득 라인’도 모두 같이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부하’들의 반발과 저항 때문에 이 의원이 마음대로 진퇴를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의원과 이상득 라인 간에 흐르는 미묘한 권력 갈등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의원을 떠받치는 젊은 여권 실세들은 오랫동안 그를 모셔온 가신들이다. 이 의원을 둘러싼 민감한 문제들을 모두 알고 있다. 돈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선을 거치면서 그들은 이 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 가장 위험하고 민감한 문제들을 다뤘다. 당연히 주군의 고급정보와 비밀뿐 아니라 아킬레스건도 모두 알고 있다. 이명박 정권 들어 그들이 몇 번 잘릴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이런 점으로 주군을 압박해 자리를 지켰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더욱이 지금은 그들이 반발할 경우 이 의원으로서도 쉽게 진압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의원으로서도 그들이 자신의 ‘부하’라고 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부담이 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끝까지 보호할 수밖에 없고, 정계은퇴와 관련해서도 당연히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 의원이 아랫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은 변명일 뿐 정작 자신의 권력 의지가 갈수록 더 세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의원의 권력의지는 동생 이명박 대통령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포항 지역정가에서는 “이 의원이 내년 19대 총선을 염두에 두고 7선을 목표로 이미 오래전부터 열심히 뛰고 있다”라는 말들이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영남권 지역구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의원이 자원외교 등을 통해 활발하게 의정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권력운용이기도 하지만 차기 총선을 준비하는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포항에서 아직 할 일이 많다’는 역할론과 타고 난 건강 나이는 어느 청년 못지않다. 그리고 여전히 열혈 지지자들이 지역구를 장악하고 있어 7선 도전은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 의원의 권력의지는 ‘다음 타자’ 이상천 전 경북도의회 의장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 전 의장은 22년간 이 부의장을 보필해온 최측근이지만 4년마다 돌아오던 두세 차례의 출마 기회를 ‘보스’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이번 19대 총선도 그가 보스의 양보를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지역정가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