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의 왼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성지루, 승리, 김윤석, 송새벽, 김지영 |
수많은 연기자들 가운데, 그것도 여배우로서 놀랍게도 사투리의 귀재로 불리는 이가 있으니 다름 아닌 중견배우 김지영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깔난 사투리와 함께 가장 정확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배우로 손꼽힌다. 김지영과 드라마 <장미빛 인생>을 함께 작업한 김종창 PD는 “99%의 연기자들이 사투리를 할 때 촌스럽고 과장된 발음이 앞서는 데 반해 그는 입속에서부터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만들어내는 독보적인 배우다”라고 그를 극찬한 바 있다.
그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지만 오랜 세월을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다. 스크린과 연극에서 꾸준한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보지 못해 오십이 넘은 나이에 브라운관에 넘어온 그는 방송국 연기자들의 텃세를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집에서 모니터를 하며 그들의 부족한 부분을 찾으려 애쓴 그는 어색한 사투리를 보며 저 분야만큼은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일종의 차별화 전략이었던 셈. 그때부터 그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지방 촬영이 있으면 반드시 시장에 들렀고, 농촌 모내기 철이 되면 함께 모를 심으러 다니는 등 생활 속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지금도 그는 지방에만 가면 싸움구경은 결코 지나치지 못한다고. 그는 싸움을 봐야 진정한 사투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며 한사코 자리를 뜨지 못하는 독특한 직업병을 갖고 있다.
그런가하면 스크린 속 사투리의 달인으로 손꼽히는 이는 누가 뭐래도 충무로의 감초조연 성지루다. 걸어 다니는 팔도 사투리박사로 불리는 그는 실제로 영화 <용서는 없다>와 <가문의 영광>에선 전라도 사투리를, <신라의 달밤>에선 경상도 사투리를, 그리고 <선생 김봉두>에선 강원도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사투리의 귀재임을 증명했다. 게다가 연극무대에선 제주도 사투리까지 섭렵하며 ‘사투리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전무후무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의 사투리 비결은 무엇일까? 그 역시 시장을 방문하며 현지인들의 말을 익히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마다 다른 미세한 차이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한다. 같은 경상도라도 부산과 대구가 다르듯 울산, 울진, 여주, 안동 등 고개를 넘어갈 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그것을 잡아내는 게 포인트라고. 예를 들어 함경도 사투리하면 으레 ‘-슴둥’을 떠올리지만, 지역이 내려갈수록 ‘-지비’로 끝나는 말이 많단다. 그가 각 지역을 다니며 녹음한 테이프만 그의 방 한 벽면을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그에게도 스크린 속 완벽한 사투리가 가져온 웃지 못 할 애로사항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지방촬영을 갈 때마다 현지인들이 고향사람을 반기듯 환영해오는 일이라고. 흠잡을 데 없는 사투리에다 지방색이 물씬 풍겨나는 정겨운 외모 탓에 종종 현지인으로 오해를 받는다는 게 그의 즐거운 비명이다. 그의 실제 고향은 대전. 진정한 카멜레온이란 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싶다.
배우들이 꼽는 최고 난이도의 사투리는 어느 지역일까? 영화 <타짜>에서 전라도 사투리, <거북이 달린다>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한 김윤석은 최근작 <황해>에서 연변 사투리에 도전했다. 그는 “팔도 사투리에서 벗어나 오히려 쉬울 줄 알았지만 억양이 외국어 못지않았다”며 “조선족에게 3개월이 넘게 개인 과외를 받았는데 연기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대사의 연속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가하면 영화 <이끼>에서 ‘이장’ 역할로 출연했던 연기파 배우 정재영도 사투리 연기의 고충을 한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은 바 있다. 그는 “왜 자꾸 사투리 연기 섭외가 들어오는지 미칠 지경이다”라며 사투리 연기가 만만치 않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실제로 <이끼> 촬영 당시 사투리 연기에 상당한 부담을 느껴 “이장 역할은 사투리를 안 써도 되지 않겠느냐”며 감독에게 역제안을 했다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고 한다. 경상도 사투리가 가장 어렵다는 그는 반대로 부담 없는 사투리로 평양 사투리를 꼽았다. 북한의 표준말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억양이 강하지 않아 서울 출신 배우들이 도전하기 그나마 수월한 편이라고.
지난해 신인상을 휩쓸며 충무로의 샛별로 주목받은 배우 송새벽. 전북 군산 출신인 그에게 사투리는 이른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었다고 한다. 제대하고 전라도 말씨를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포기했다는 그는 드라마틱하게도 그토록 고민이었던 전라도 사투리를 통해 빛을 보게 되었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영화 <마더>에서 그가 맡은 역할 ‘홍조’는 사실 표준어를 구사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첫 대본 리딩 자리에서 송새벽이 나름대로 준비한 자신의 사투리 말투를 보여주자 봉준호 감독이 흡족해해 그의 대사를 전부 사투리로 수정하게 됐다. 이후 그는 <방자전> <시라노연애조작단> <해결사>, 그리고 최근작 <유쾌한 상견례>까지 특유의 어눌한 전라도 사투리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의 콤플렉스가 장점이 된 셈이지만 그는 여전히 사투리를 고치려 노력 중이라고 한다.
최근 2년 만에 컴백해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는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 그는 컴백 전 솔로활동을 펼치며 컴백의 시동을 건 바 있다. 타이틀곡 ‘어쩌라고’를 통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빼어난 작사 작곡 실력까지 선보였는데 그의 노래 가사에 비밀이 숨어있다. 후렴구 가운데 ‘난 어쩌라고 난 어쩌라고~’의 원래 가사는 ‘뭐 어쩌라고~ 뭐 어쩌라고~’였다고 한다. 하지만 녹음실에서 그가 계속 “므어 으쯔라구 므어 으짜라구~”를 반복하자 ‘뭐’를 ‘난’으로 개사할 수밖에 없었단다. 승리는 전라남도 광주 출신. 사투리가 몸에 배어있는걸 정말 어쩌라고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