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만 (주)두산 회장(왼쪽), LS가의 구자철 한성그룹 회장. |
박 회장과 구 회장은 경기고 동창으로 고교 시절부터 절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의 우정이 사돈관계로까지 발전한 셈이다. 물론 박 씨와 구 씨의 결혼이 비단 부친 간 친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만남의 다리는 선대에서 놓았지만 정작 결혼을 약속하게 된 것은 두 사람 모두 미국 뉴욕에 위치한 대학에 유학하면서부터다. 두 사람은 유학기간 내내 가깝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2005년 6월 30일 화제를 모은 결혼식 장면. 맨 오른쪽은 박용만 회장. |
박 씨는 별거 이후 구 씨를 상대로 이혼청구소송을 냈다. 소송 과정에서 박 씨 측은 구 씨가 사실상 이혼하기로 합의하고 친정으로 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구 씨 측은 이혼에 반대했으나 박 씨 측이 소송을 강행했다고 반박했다. 이때부터 법원의 기각, 조정, 합의 실패 등 기나긴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이혼소송의 중심에는 하나밖에 없는 딸의 양육권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법원 주변과 지인 등에 따르면 박 씨는 ‘딸의 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는데 결정적인 원인이 어머니인 구 씨가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채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소송청구이유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 과정에서 법원은 사전처분을 통해 일단 사건이 확정될 때까지 박 씨를 임시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했다.
지난 2월 23일 서울가정법원은 박 씨가 낸 이혼청구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박 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양측 모두 원만한 결혼생활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양육권 문제와 관련해서는 박 씨가 딸을 키워도 적응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1심 판결 후 박 씨 측에서는 강제집행을 통해 딸을 한남동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구 씨 측에서 곧바로 항소와 동시에 강제집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현재까지 딸은 구 씨 집에서 머물고 있다. 구 씨 측 입장에서 보면 1심 재판부와 달리 항소심 재판부가 전향적인 입장을 보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구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가정과 딸의 미래를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만 짧게 말했다. 구 씨의 어머니는 “박 회장 부부가 아이를 이용해서 엄마와 아이를 떼어놓으려고 (두산 측에서) 소송을 건 것”이라며 “박 회장 측은 뭐든 이겨야 되는 승부욕(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녀는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아무 것(양육권과 면접교섭권)도 확정된 게 없다”고 덧붙였다.
<일요신문>은 박 씨에게도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두산그룹은 공식적으로 “박서원-구원희 부부가 유명인사는 아니지 않느냐”며 언론 노출에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구원희 씨는 그렇다쳐도 박서원 씨는 다르다. 박 씨는 재벌가의 일원이기도 하지만 광고기획자로 꽤 유명한 인사다. 박 씨가 만든 광고기획사인 빅앤트인터내셔널은 2009년 프랑스 칸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등 국제 5대 메이저 광고제에서 모두 수상해 한국인 최초로 광고계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이혼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아는 것이다. 부모를 비롯한 주변인들이 끼어들면 주관적인 관점이 개입될 수 있다”면서 “가장 정확한 것은 재판부의 판단에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문제를 두산과 LS 간 그룹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두산과 LS 측 모두 이번 이혼소송을 그룹 간의 싸움으로 확대 해석하는 시선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박 회장과 구 회장 간 감정의 골이 깊게 패인 건 분명해 보인다. 현재 두 사람의 이혼소송은 구 씨 측의 항소로 인해 아결론이 났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굴지의 두 재벌가문의 일인 만큼 파장은 작지 않을 듯하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