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고향팀 KIA를 떠나게 된 김상현은 상심이 컸다. 그러나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었다. 그때 떠오른 이가 유미현씨(33) 였다. 김상현은 팀 동료 홍세완의 소개로 유 씨를 만나곤 했다. 물론 연애 감정이 있던 건 아니었다. 유 씨는 김상현보다 두살 연상의 누나였다.
김상현은 유 씨에게 트레이드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김상현을 유 씨는 진정으로 다독거렸다. 인천에 살던 유 씨는 김상현이 LG에서 뛰자 자연스레 가장 가까운 말동무가 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만남은 잦아졌고 ‘누나, 동생’에서 서로를 ‘자기’로 부르는 사이로 발전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김상현의 ‘철부지’ 행동이 문제였다. 20대 초반의 김상현은 돈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그 자리에서 썼다. 그런 김상현을 유 씨는 안타까워했고, 눈물로 “정신을 차리라”고 호소했다. 결국, 김상현은 유 씨에게 급여 통장을 맡기며 “돈을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김상현의 첫 번째 변화였다.
하지만, 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6년까지 1, 2군을 오가며 방황하던 김상현은 어느새 예전의 그로 돌아가 있었다.
두 번째 변화가 찾아온 건 그 즈음이었다. 김상현의 뒷바라지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유 씨가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유 씨는 갑상선 수술을 받았고 항암치료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더 절망적이었던 건 “갑상선 약을 먹으면 임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였다.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안다면 두 사람의 만남을 막을지도 몰랐다. 주변에선 조심스럽게 이별을 권유했다.
그러나 김상현은 이별 대신 책임을 택했다. 2007년 겨울 김상현은 유 씨를 신부로 맞으며 ‘평생 이 여자의 갑상선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김상현은 독기를 품고 훈련했다. 술도 끊고, 친구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2009년 4월 친정팀 KIA로 트레이드됐을 때 김상현은 ‘오직 아내를 위해 뛰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그 해 리그 최고의 거포로 거듭나며 KIA의 통산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것이다. 오랜 고난 끝에 찾아온 행복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듬해 김상현은 정규 시즌 MVP보다 더 갈망하던 2세를 얻었다.
올 시즌 김상현은 부상으로 제 실력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전에 좌절과 포기는 없다. 지금도 김상현은 힘이 들 때마다 지갑을 펼쳐 아내와 아들의 사진을 보며 힘을 얻는다.
김상현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 있어 아내가 야구이고, 아이는 인생”이라고.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