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3이 된 여자 조카가 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태권도를 시켜서 제 또래보다 단단한 신체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늘씬하고 예쁘다! 엄마, 아빠가 골프 선수로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 뒤늦게 들었나 보다. 내게 상담을 해왔다. 주워 들은 것은 많아도 직접적인 조언을 줄 수준은 아니어서 대답하기 벅찼다. 서희경, 배상문의 스승, 고덕호 해설위원께 부모의 질문을 대신 물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시기의 적절성 여부였다. 중3은 대학 진학을 생각하면 운동에 뛰어들기 너무 부담스러운 나이다.
고 위원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늦진 않았어요. 그런데 조카가 ‘깡’이 있나요?”
“좀 순한 편인데요.” “그럼 시키지 마세요!”
명쾌한 대답이었다. 골프 캐스터가 아니었으면 시키지 말라는 이유를 재차 물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2009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그 해 루키였던 KLPGA 안신애 프로를 그늘집 화장실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처음 보는 프로였지만, 대회 도중이라 혹시 방해가 될까봐 뭘 물어보기가 미안했다. 기본적인 신상명세 몇 가지를 파악하고 돌려보내려 하자, 안 프로가 불쑥 묻지도 않은 얘기를 했다.
“아나운서 언니! 골프는 제 인생이에요. 저 열심히 할 거니까 지켜봐 주세요!”
이제 출발한 루키의 말 치고는 당돌했다. 마침 최상호 프로와 특집방송을 한 며칠 뒤였다. 수십 년을 투어에서 뛴 살아있는 전설도 “이제 좀 골프를 알 것 같다” 했는데, ‘신인이 인생을 운운하다니…’ 솔직히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 후 2승을 했고 현재 KLPGA를 대표하는 스타가 되어있다.
올해 한국오픈 3라운드 날이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티샷을 끝낸 시간, 클럽하우스 식당 안은 한가하다. 그런 가운데 선수 한 명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곧 경기가 시작될 텐데, 웬 여유? 호기심이 발동됐다. 루키 정연주 선수였다. 1, 2라운드 때 화면에 많이 잡히진 않았지만, 신인왕 포인트 1위를 달리고 있는 선수라 기본 정보를 알고 있었다. 떨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떨리진 않아요. 2부 투어 뛰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해요. 여긴 프로의 세계잖아요. 프로들이 모여 있으니까 긴장감이 느껴져서 좋아요”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신인 선수의 대답이었다. 옹골졌다. 그 다음날 정연주 선수는 선배들을 제치고 역전승으로 2011년 한국오픈 우승자가 됐다.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 확실히 특별한 느낌을 주는 선수가 있다. 물론 말을 잘한다고 우승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승하는 선수는 임팩트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골프에서 제일 중요한 순간이 임팩트인 것처럼 우승하는 선수들은 한방이 있다. 말을 시켜보면 어떠한 형태든 자기철학이 있다. 그것이 깡인지, 끼인지, 꾀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순둥이는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예쁜 조카를 그냥 평범한 학생으로 예쁘게 키우라고 조언했다.^^
S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