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정종관의 삶은 어떠했는지 <일요신문>이 따라가 보았다.
3남매 중 막내이자 외아들인 정종관은 두 명의 누나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랐다. 작년 3월부터 몸이 안 좋아졌다는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쓰러졌고, 빈소는 누나가 대신 지키고 있었다.
정종관의 누나는 “동생은 자신과 관련된 얘기를 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라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리고 누나는 고인에 대해 “강하기도 했지만 약하기도 했던 동생”이라며 짧게 대답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정종관은 ‘운동밖에 몰랐던 친구’였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라 평소 인간 관계도 좋았다. 하지만 2008년 병역비리 사실이 들통 나면서 K리그에서 쫓겨나게 됐다. 이후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된 그는 축구 선수로서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게 됐다. 친구들과 교류 또한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와 중ㆍ고등학교 동창이라고 밝힌 한 조문객은 “종관이가 K-리그에 있을 때 만해도 자주 연락했었지만 근 3년 동안은 연락이 뚝 끊겼다”며 “작년 10월 친구 돌잔치 때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전했다.
정종관은 공익으로 군복무를 하면서도 챌린저스리그(K3리그)에 출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기장에 거의 나갈 수 없었다. 그의 친구들은 “공익 근무와 선수 생활을 병행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리 수당’만 있는 챌린저스리그를 통해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던 것. 즉 고 정종관은 ‘군인 월급’만 받고 객지 생활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듯 정종관은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서 승부조작의 유혹에 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몇몇 언론은 병마와 싸우는 어머니의 치료비 문제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의 친구들은 “어머니가 몸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생활고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다”며 “아버지도 건강하셨던 것으로 안다”고 입을 모았다. 그의 또 다른 친구는 그가 승부조작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K리그 선수로 활동했을 때에는 수입이 고정적으로 있다가 갑자기 수입이 없게 되다 보니 승부조작에 눈을 돌린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어려운 상황을 알고 도와주려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도와주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다”고 전했다.
한편 고 정종관의 동창들은 중ㆍ고등학교 선배라고 알려진 두 명의 승부조작 브로커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겠다”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창원=최정아 기자 cja8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