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전 총장에 대한 중수부의 수사는 군납비리 척결을 강조해 온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그런데 내사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건은 곧바로 대전지검 특수부로 이첩됐다. 이에 대해 우병우 대검 수사기획관은 “내사 초기단계였고 사건의 규모, 관련자들의 소재지를 감안할 때 대전지검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중수부에서 정 전 총장을 시작으로 군납비리에 대한 대대적 사정을 할 예정이었으나 내사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김이 샜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이첩받은 대전지검 특수부는 정 전 총장의 비리와 관련한 각종 의혹들을 수사해왔다. 업무추진비를 유용한 것 이외에도 대검에서 내려온 각종 첩보들을 일일이 확인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최근 정 전 총장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빼돌렸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정 전 총장은 지난 4월 4일 검찰에 소환됐지만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검찰은 방위산업체인 STX엔진으로부터 정 전 총장의 아들 회사에 7억 원이 흘러들어간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진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STX엔진은 정 전 총장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요트업체 Y 사에 돈을 건넸다고 한다. 이 요트업체는 해군 장교 출신인 정 전 총장의 아들이 친구 두 명과 함께 설립한 회사로, 세 명이 지분을 3분의 1씩 나눠가지고 있다. 이 회사는 요트 관련 이벤트 행사, 요트직업 훈련 등을 해왔다. Y 사는 지난 2008년 10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관함식 당시 기념 요트대회를 개최했고, STX엔진이 요트대회를 후원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한다.
관함식은 국가 원수 등이 자국의 함대를 사열하는 행사로 국제관함식에는 전 세계 해군 함정들이 함께 참가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에 이어 2008년 두 차례 개최됐다. 2008년 관함식에는 미국의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비롯해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12개국 해군 함정 50여 척 및 항공기 30여 대가 참가했다. 관함식 당시 해군 수장이 바로 정 전 총장이었다. 해군은 부산과 진해 등에서 일주일간 관함식을 축하하기 위한 각종 행사를 개최했고 요트대회도 축하행사의 일환이었다.
검찰은 STX엔진이 Y 사에 후원할 만한 별다른 계기가 없었음에도 7억 원이란 거금을 건넨 이유가 정 전 총장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2008년 개업한 Y 사는 그해 7억 1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후 2009년에는 매출 기록이 없고, 2010년에는 1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회사에 STX엔진이 후원금 명목으로 7억 원을 건넨 것이 석연치 않다는 게 검찰 측의 판단이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STX엔진이 낸 후원금 중 일부는 관함식 관련 행사에 적합하게 사용했고 일부는 정 전 총장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한 STX엔진이 Y 사에 건넨 돈 중 일부가 정 전 총장의 아들이 대표로 있는 영화사로 흘러들어간 정황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정 전 총장이 취임한 2008년부터 STX엔진의 해군 관련 사업 수주가 늘어난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STX엔진은 2008년 12월 방위사업청이 발주한 해군의 735억 원 규모 고속함 디젤엔진을 수주했으며 2009년 7월에는 한국형 구축함에 군 위성통신체계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지난 3월 STX엔진은 협력업체와의 공모를 통해 인건비를 부풀리는 방법으로 100억 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임원 등이 검찰에 기소된 바 있다. 만약 이번 검찰 수사에서도 정 전 총장과 STX엔진의 ‘부당거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STX엔진은 방산비리의 또 다른 온상으로 낙인 찍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TX그룹 측은 이에 대해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확인해보겠다”는 말만 남긴 채 별다른 해명을 해오지 않았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