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건평씨와 건평씨 처남 민상철씨, 노 대통령의 친구이자 동업자 선봉술씨 부부, 동네 지인 오철주씨 등 재산의혹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들은 노 대통령 탓에 얽히고 설켜 때론 갈등을 빚거나 투자 실패로 상처를 입었다.
이 때문에 건평씨 재산의혹이 불거졌을 때 일부는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거나 엇갈린 해명으로 의혹을 더욱 확산시키는 등 나름대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들을 노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실제론 동업자이자 피해자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실제 노 대통령의 주변 인물들은 노 대통령에게 반감을 드러내진 않지만 대체로 ‘노 대통령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나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 지난 1월25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당선자(왼쪽)가 당선 이 후 처음으로 고향인 경남 진영 생가를 찾아 형 건평씨와 함께했다. | ||
건평씨 주변 인사에 따르면 건평씨는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재산의 투자·관리에 밝은 데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과수원 등 기본 재산을 통해 부동산투자에 성공해 많은 돈을 벌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건평씨의 명암은 동생 노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정치인 노 대통령을 대신해 건평씨는 재산을 관리해주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대표적인 게 김해 진영읍 여래리 상가다.
노 대통령은 5월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진영에 있는 대지와 상가 중 일부는 형님이 땅을 매수할 때 제게 돈을 보태라고 해서 제 돈을 보탠 것이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한 번도 자신의 명의를 사용한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은 그때까지 갖고 있던 자동차매매상사를 팔아 3억5천만원을 상가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부터 건평씨와 노 대통령의 재산은 경계가 불투명하게 됐다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다.
노 대통령은 “그 뒤 형님으로부터 많은 액수의 돈을 받아서 장수천사업에 투자를 했기 때문에 이 재산은 자연스럽게 형님 재산으로 넘어갔다”고 밝혔다. 형제간에 잦은 돈거래가 있었고, 노 대통령은 많은 돈을 건평씨로부터 받아썼다는 고백이다.
건평씨는 노 대통령이 떠안았던 장수천 사업 때문에 진영읍 상가뿐 아니라 거제 성포리의 땅도 가압류당했다. 거제 땅은 건평씨가 독자적으로 판단, 자신의 돈으로 투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 때문에 가압류되면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자 마음고생이 심했고 박연차 회장을 찾아가는 등 자구노력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 역시 장수천 빚보증을 잘못 선 뒤 자신의 자택을 권양숙 여사 명의로 돌려놓는 등 자구노력을 펼쳤다. 이때쯤부터 권 여사도 노 대통령에게 더 이상 돈 문제를 맡겨놓을 수 없다고 판단, 집 소유권을 이전시키고 재산관리에 본격 나섰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 대통령 집안을 잘 아는 여권의 한 관계자는 “경계가 불투명한 재산탓에, 서로 자구노력을 펼치던 건평씨와 권양숙 여사가 간혹 의견충돌을 빚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건평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형이라는 게 원망스럽고 죽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으며, 또 다른 인터뷰에선 “참 쓸쓸하고 소외된 감정은 이루 다 말할 수도 없다”고 서운함을 드러냈었다.
건평씨 재산의혹이 불거지면서 권 여사가 건평씨에게 위로전화를 했다고 알려졌으나 청와대는 부인했다.
건평씨를 잘 아는 한 동네 주민은 “원래 부동산 투자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던 건평씨가 동생 노 대통령 때문에 손해를 봤으면 봤지, 이득을 본 게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네주민은 “원래 두 형제 사이에 우애가 남달랐다”면서 “건평씨가 손해를 보긴 했지만 노 대통령을 원망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건평씨가 재산을 나름대로 지키기위해 등장시킨 인물이 처남 민상철씨다. 민씨는 경매에 붙여진 진영읍 여래리 상가를 12억원에 낙찰받았으며, 거제 구조라리 땅도 박연차 회장에게 넘기기 직전 민씨 명의로 해두었다.
민씨는 건평씨를 돕기 위해 무리한 대출를 여러 번 했고, 이 과정에서 신용불량자 리스트에 오르는 등 피해를 입었다. 민씨는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지도 못한 채 건평씨와 사이에 애매한 상황에 처한 셈이다.
민씨는 이번 사태가 발생한 뒤 일체 언론과 접촉하지 않았다. 민씨도 노 대통령 일가 재산문제에 연루돼 있지만 이득을 본 게 없는 만큼 속이 편할리 없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증언.
민씨의 형은 “건평씨가 형편이 풀리면 재산을 찾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여래리 상가 등을 아예 우리 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장수천 초대 대표이사를 맡았던 선봉술씨와 부인 박아무개씨도 노 대통령 때문에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80년대만 해도 노 대통령, 건평씨 등과 함께 동업관계였으나 장수천 빚보증 등에 휘말리면서 손해를 본 경우.
선씨는 진영읍 여래리 상가에 공동투자한 뒤 가압류 탓에 자신의 지분을 뺏기게 되자 96년 명의신탁해지를 통해 자신의 지분을 되찾았다. 선씨는 또 상가가 건평씨 처남 민씨 소유로 넘어가면서 돈을 건지기 어렵게 돼가자 마침내 경매를 신청하고 지분확보에 나섰다.
선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산실명제 시절도 아니고, 등기이전 하는 데도 비용이 들어서 그냥 건평씨 이름으로 등기를 해놨을 뿐”이라며 “부동산실명제가 되면서 집사람이 명의를 우리 앞으로 돌려놓자고 해서 그렇게(명의신탁해지) 했고 경매도 신청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선 한때 명의를 그냥 빌려줄 정도로 둘도 없는 동업자였던 이들이 경매신청까지 하게 된 데 대해 다소 의아해하고 있다.
선씨는 “나를 노 대통령의 운전기사인 것처럼 보도하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며 “노 대통령이 부산에 내려올 때 운전을 해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때 돈이 많았다던 선씨 부부는 현재 부산에서 18평짜리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다.
여래리 상가의 공동 소유자 중 한 명인 오철주씨 또한 상가에 투자했다가 건진 게 없는 경우다. 오씨는 건평씨 재산의혹과 관련, 언론 인터뷰에서 “나도 아직 (장수천) 보증 서준 돈도 못 돌려받고 있지만 골치 아파서 그냥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상가에 공동투자할 만큼 돈이 많았던 오씨는 한때 건강보험료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을 도왔던 주변 사람들이 과거만큼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단순 재산관리인이라는 김문수 의원의 주장과 달리 이들의 관계는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