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마지막 밤, 전세계를 열광시킨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연기. 아쉽게 2위에 머물렀지만 그녀가 선사한 ‘오마주 투 코리아’는 감동이었다. 연합뉴스 |
우승 실패의 원인으로 첫 손에 꼽힌 것은 바로 실전 경기 감각이다. 시니어 데뷔 시즌인 2006~2007시즌부터 지난 2009~2010시즌에 이르기까지 김연아는 빠짐없이 ISU 그랑프리 시리즈에 두 차례씩 출전해왔다. 그랑프리 시리즈 상위 랭커 6명이 출전하는 그랑프리 파이널에도 단골손님이었고 간혹 4대륙 선수권에도 출전했다.
ISU 대회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세계피겨선수권. 그랑프리 시리즈는 바로 이 세계선수권을 위해 출전하는 모의고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김연아는 이 모의고사들을 건너 뛰고 수능시험을 치른 격이다.
김연아는 이에 대해 “올림픽 시즌이 끝난 뒤 일단 휴식이 필요했다. 쉬다 보니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할 시간이 도저히 안됐다”며 “솔직히 훈련에 복귀한 뒤에도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나’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자문의 답은 스스로 찾았다. 김연아는 “나의 새로운 연기를 보길 원하는 팬들을 위해 다시 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목표를 모두 달성한 가운데 다시 무언가를 해보는 것도 새로운 도전일 것으로 생각했다”고 대회 출전 각오를 굳힌 배경을 밝혔다.
김연아가 새 시즌 준비에 돌입한 것은 지난해 10월. 다른 선수들이 그랑프리 시리즈에 맞춰 몸을 만들었을 즈음 시즌 준비 단계에 돌입한 셈이다.
13개월의 공백과 실전경기 감각에 대해 김연아는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아이스쇼 역시 실전 경기 못지 않은 긴장감이 있기 때문. 그러나 13개월의 봉인이 풀린 4월 29일. 김연아는 당황하고 말았다.
이번 대회 팀 리더로 온 고성희 대한빙상경기연맹 경기이사는 “긴장하는 것이 보여 안쓰러울 정도였다. 분명히 연습 때에는 빙판을 완전히 지배했다. LA와 한국에서의 훈련이 아주 잘 이루어져 김연아의 자신감도 상당했다”고 전했다.
긴장감으로 인해 김연아는 전에 없던 실수를 했다. 김연아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는 기본점수 10.10을 받는 최고의 장기. 실수도 거의 없는 편. 특히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이 점프는 훈련에서도 실수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의 포문을 여는 이 점프에서 삐긋했다. 한 번의 실수는 괜찮았다.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연아는 65.91을, ‘클린 프로그램’을 완성한 안도 미키는 65.58점을 받았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에서는 두 번의 실수가 나왔다. 두 번의 실수는 결국 역전을 허용했다.
김연아는 2위로 자리한 시상대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시상식이 끝난 후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흘린 이유에 대해 “잘 모르겠다. 그냥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라는 말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비록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김연아는 표현력의 정수 ‘지젤’과 한국의 멋을 세계에 알린 ‘오마주 투 코리아’를 선보였다.
‘지젤’과 ‘오마주 투 코리아’에서 보여준 김연아의 표현력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13개월의 시간 동안 김연아는 발레 동작과 한국 무용을 익히며 서양과 동양의 음악과 춤을 습득했다. 김연아는 4월 29일에는 비련에 찬 ‘지젤’이었다가 30일에는 한국 그 자체가 되었다. 13개월의 공백 기간 동안 김연아는 분명 정체하지도, 퇴보하지도 않았다.
이제 다시 김연아에게 프리 시즌이 주어진다. 김연아는 다음 시즌에 대해 묻는 질문과 관련해서 “예전에는 아사다 마오 관련 질문이 가장 싫었는데 이제는 다음 시즌에 대한 질문이 가장 싫다”는 말로 정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과연 내년에도 김연아를 시상대 위에서 볼 수 있을까.
모스크바=백길현 CBS 체육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