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강원도 춘천 제이드 팰리스 골프장에서 임진한 프로와 최영주 아나운서 공동 진행으로 열렸던 타이거 우즈 골프 클리닉. |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골프계의 최고 스타, 타이거 우즈가 왔다. 바로 내 옆에 있다. 그것도 나란히 서서 함께 방송을 하고 있다.
타이거 우즈는 7년 전 제주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따라서 사실상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신기의 샷은 여전했다. 자유자재로 높이를 조절하는 페이드, 드로우샷의 향연이 펼쳐졌다. 차원이 다른 역동적인 스윙도 그대로였다. 대회 마지막 날 입는 붉은 티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외모도 변하지 않았다.
진짜 근육질이 뭔가를 보여주는 탄탄한 풍모도 예전과 다름없었다. 함께 있는 시간이 꿈같이 느껴졌다. 이내 과거의 또 다른 꿈이 오버랩되었다.
2년 전 PGA ‘마스터스 대회’, 나는 취재를 위해 홀로 대회장소인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을 찾았다. 마스터스는 세계 최고의 대회라는 명성 그대로였다. 잭 니클라우스, 아널드 파머, 그렉 노먼…. 이름만 들어도 경이로운 골프의 전설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골프 스타들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하자, 나는 아이돌 스타에 광분하는 10대처럼 극도의 몰입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별들 사이에서 한 사람만을 위한 스포트라이트가 느껴졌다. 오거스타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간절하게 기다리는 단 한 사람, 그가 나타나는 길목에는 예외 없이 함성과 흥분이 출렁거렸다.
현장에서 본 우즈는 진짜 ‘황제’였다. ‘타이거 교’의 교주답게 그는 자신을 향해 광분하는 팬들에게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로지 한 샷 한 샷에만 집중할 뿐, 그 누구에게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 홀과 홀을 이동할 때조차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100명의 엄선된 한국 관중들 앞에 서 있었다. 긴장이 되었다. 황제의 냉소적인 표정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휴가를 내고 찾아온 한국의 아마추어들을 어떻게 대할지 걱정되었다.
행사 주최 회사는 사전 미팅 때부터 엄격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질문과 동선은 정해진 대로만 하기로 되어있었다. 본사의 지침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네 가지 파트로 진행된 레슨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다행히 오전에 다른 행사에서 봤던 딱딱함보다는 많이 유연해진 그가 정해진 순서대로 레슨을 하고 있었다. 뭔가 아쉬운 생각이 자꾸 들었다. 너무 규칙적이었다. 틀을 깨고 싶었다. 바로 그때 홀과 홀을 이동하는 아주 잠깐의 틈이 생겼다. 드디어 개인적으로 아는 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2년 전에 마스터스 프레스룸 때 내가 당신한테 질문했던 적이 있다. 한국 골프 선수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물었었다. 오늘 다시 보니까 정말 반갑다! 더 멋있어진 것 같다(아부성 발언^^).”
“그랬구나. 나두 반갑다….”
‘끝이야?’
혹시나 하는 기대를 안고 던진 질문은 역시로 끝났다.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행사의 마지막 세션은 퍼팅레슨이었다. 100명의 참가자 가운데 뽑힌 아마추어 가운데 가장 어린 학생이 마지막 참가자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 때문에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안쓰러웠다. 사회자 재량으로 타이거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소년이 수줍게 물었다.
“골프를 타이거 우즈처럼 잘 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질문을 듣자 그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환한 미소로 답했다.
“잘 칠 필요 없어요. 지금처럼만 치면 돼요.”
그리고 소년을 부르더니 꼭 안아줬다.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그 장면은 그날의 가장 멋진 순간이었다.
누구는 그를 몰락한 황제라고 말한다. 더 이상 호랑이라 할 수 없단다. 메이저에서는 이제 우승 못할 것 같다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 적어도 2년 전 날선 이빨로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호랑이는 아니었다. 충치도 생기고 하얗게 빛나던 치아도 좀 바래졌다. 하지만 그 대신 팬들을 향해 웃을 줄도 알고 어린이를 안아줄 수 있는 호랑이가 내 옆에 있었다.
그는 여전히 타이거였다.
지금까지 출발 모닝와이드, 주말 8뉴스, 빙글빙글 퀴즈, 우주인 특집, 기아체험 24시간 대선 주자와 함께, 그리스 올림픽 개, 폐회식 등등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현재, SBS 생활경제(오전 11시~12시 매거진 프로그램)의 앵커로 활동하면서 골프 캐스터(KPGA&KLPGA 중계)와 골프 진행자(SBS 골프 아카데미)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