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진강변을 연분홍으로 물들인 벚꽃. |
전북 장수와 진안 사이에 자리한 팔공산에서부터 시작해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섬진강은 봄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유순한 물줄기가 그려내는 멋진 산수화야 계절이 따로 없지만, 그 작품에 꽃을 보태니 누군들 홀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섬진강 꽃길이 시작되는 곳은 구례군 산동면이다. 19번 국도를 타고 남원을 넘어서 구례로 들면 산동면이다. 이곳은 봄이 노란 물을 흠뻑 들여 놓았다. 찬바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피기 시작해 4월 말까지 산동면을 밝히는 이 꽃의 정체는 산수유다. 산동면은 전국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유명한 산수유 군락지다. 의성, 양평 등지에도 산수유군락지가 있지만, 규모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산동면에는 대음, 반곡, 현천, 계척, 하위, 상위 등 20~30가구가 촌락을 이루는 산수유마을들이 여럿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은 상위마을이다.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어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기막히다. 그러나 반드시 ‘이 마을이다’라고 정하고 갈 필요는 없다. 모든 마을들이 지척이고, 어느 부분이 경계인지도 불분명하다. 현천과 계척마을이 다소 떨어져 있기는 한데, 그래봐야 산동면소재지에서 5분 거리다. 이들 산수유마을들은 돌담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특히 반곡마을과 현천마을의 돌담길이 일품이다.
산수유는 햇발 좋은 날 더욱 찬란한 꽃이다. 흐린 날 이 꽃은 별 매력이 없지만, 청명한 날이면 노란색 꽃이 부서지듯 빛난다. 멀리서 보면 마치 아지랑이가 어른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꽃은 가까이서 보면 한 마디로 별로다. 10여 개의 침엽이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꽃을 두고 ‘백 미터 미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번 국도는 저 멀리 하동으로 뻗는다. 길은 구례읍을 지나면서부터 좀 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벚꽃터널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른바 ‘섬진강 백리벚꽃길’이다. 구례 토지면에서부터 하동읍까지 이어지는 장장 40㎞의 길. 이곳은 지금 벚꽃이 만개했다.
이 길은 우리나라 ‘100대 아름다운 길’로 선정될 정도로 미려하다. 어느 한 곳에서도 비켜섬이 없이 길은 바다를 만날 때까지 강과 함께 흐른다. 강은 맑고 푸르며 벚꽃이 활짝 핀 길은 밝고 화사하다.
길을 가다보면 떠들썩한 화개장터를 지난다. 조영남이 불러 국민가요가 된 그 장터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에 자리한 이 장터를 기점으로 하동읍이다. 화개장터는 ‘쌍계사 십리벚꽃길’의 시작이기도 한 곳이다. 이곳에서 쌍계사까지 4㎞의 길은 섬진강 벚꽃길에서도 특히 빼어난 풍경을 자랑한다. 한쪽으로 섬진강에 물을 대는 계곡이 흐르고, 길은 그 계곡의 굽고 휨에 맞춰 나아간다. 이 길은 ‘혼례길’이라고도 불린다. 꽃비 내리는 날, 미혼 남녀가 그 비를 맞으며 걸어가면 결혼에 이르게 된다 해서 그렇게 붙여졌다. 그것은 아마 진실일 것이다. 그 잊지 못 할 추억을 공유한 두 사람이 맺어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비정상이기 때문이다.
화개장터를 지나 조금 더 달리면 악양면에 이른다. 고소성과 드라마 <토지>의 주 무대인 최참판댁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도 잠시 들러 숨을 돌린다. 고소성은 악양면 평사리 뒤편에 있는 신라시대의 산성이다. 사적 제151호로 지정된 고소성은 둘레 1,5㎞로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이 산성은 악양 들판을 굽어보는 전망대로서 인기가 높다.
최참판댁은 박경리 소설 <토지>의 가상무대를 평사리에 옮겨놓은 것이다. 오래 전부터 누가 살았던 것 같은 고풍스런 한옥이 야트막한 언덕 위에서 악양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안채 뒤편으로 장독대가 있는데, 여기에 동백과 목련이 한창이다.
벚꽃길은 악양을 지나서도 계속된다. 그 황홀한 길을 타고 달리다보면 하동읍내에 이르기 전 먹점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숨어 있는 매화마을이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하기 그지없다. 한길에서부터 3㎞ 정도 들어가면 이 마을이 나오는데, 지대가 굉장히 높다. 어느 정도 고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을로 가는 동안 귀가 먹먹해진다. 먹점마을은 흥룡리에 속하는 가옥 10여 채 남짓한 작은 자연마을이다. 예부터 먹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해서 먹점마을이다. 그런데 지금은 까만 먹이 아니라 봄이면 하얀 매화가 핀다.
19번 국도를 따라 내쳐 달리고 싶지만 하동읍내에서 작별을 고한다. 대신 섬진교를 건넌 후 861번 지방도로 갈아탄다. 이 길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먹점마을보다 훨씬 큰 광양 매화마을이 있다. 섬진강변에 자리한 다압면 도사리가 그곳이다.
마치 하얀 솜이불을 펼쳐 놓은 듯, 막 빨래를 한 깨끗한 구름이 드리운 듯, 매화가 산자락을 뒤덮고 있다. 크고 작은 매화밭이 있는데,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청매실농원이다. 도사리를 우리나라 대표 매화마을로 알린 일등공신이 바로 청매실농원이다. 1930년경 율산 김오천 선생이 심은 매화 고목 수백 그루를 포함해 수만 그루의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다. 며느리인 홍쌍리 씨와 그 장남인 김민수 씨가 계속해서 농원을 가꿔나가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을 촬영하기 위해 지었던 초가가 매화꽃과 어우러진 모습이 무척 정겹다.
청매실농원에는 팔각정자를 비롯해 전망대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이곳에 오르면 매화꽃밭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이 눈에 잡힌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경부고속국도 천안분기점→천안·논산간고속국도→호남고속국도 익산분기점→익산·포항간고속국도 완주분기점→순천·완주간고속국도 화엄사나들목→19번 국도→상위마을→섬진강길→화개장터→하동 먹점마을→하동읍내리 섬진강교→광양 매화마을
▲먹거리: 구례우체국 옆에 가격이 ‘착한’ 서울회관(061-782-2326)이 있다. 한정식이 2인 이하일 경우 1인당 1만 원, 3인 이상일 땐 9000원으로 반찬이 40가지나 된다.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운조루 지나서 토지우리식당(061-781-2415)이 있는데 다슬기탕이 일품이다. 하동으로 가면 동흥식당(055-884-2257) 재첩국이 시원하다. 하동송림 근처에 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3㎞쯤 더 달리면 왼쪽 편에 할매재첩식당(055-884-1034)도 있다. 진공포장 재첩국을 판다. 1봉지 4000원, 4개를 사면 1만 5000원이다. 쌍계사 앞에는 참게장을 잘 하는 혜성식당(055-883-2410)이 있다. 광양 매화마을에서는 벚굴을 맛볼 수 있다. 청매실농원에서도 팔고, 그 아래 식당이나 포장마차에서도 판다. 벚굴은 강굴이라고도 하는데 일반 굴에 비해 10배 이상 크다. 굴껍데기가 얼굴을 가릴 정도다. 광양 망덕포구 쪽에서 잡는다.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으로 영양분이 풍부해 굴이 크게 자란다.
▲잠자리: 구례 산동면 산수유마을에는 지리산온천랜드(061-783-2900)와 노고단관광온천장(061-783-0161) 등 숙박시설이 많다. 하동 쪽으로 가면 쌍계사 쪽에 새미거리민박(055-883-1728), 서울민박(055-883-1731) 등 민박을 놓는 집들이 있다. 광양 매화마을에는 느랭이골자연휴양림(061-772-2255) 외에 민박집들이 더러 있다.
▲문의: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55, 광양시청 문화홍보담당 061-797-2712, 하동군청 문화관광과 055-880-2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