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 씨가 검찰에 제출한 문건. 상세한 접대내역이 기재돼 있다. |
술접대 파문은 공연기획사 대표 옥 아무개 씨가 A 씨를 사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수면위로 부상했다. 옥 씨가 지난 3월 23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고소장에 따르면 A 씨는 정계 인사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인도국제영화제 유치와 100억 원의 예산 지원을 도와주겠다며 옥 씨로부터 수억 원대의 향응과 금품을 제공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A 씨의 주장과 달리 예산은 지원되지 않았고, 영화제도 취소돼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는 게 옥 씨의 주장이다.
옥 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A 씨는 “예산 지원을 약속하거나 향응 접대를 받은 사실이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두 사람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와중에 술자리에 영화배우 박현진 씨가 동석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단순 사기극을 넘어 술접대 스캔들로 확전됐다.
파문이 확산될 조짐이 일자 박 씨는 4월 1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2월 아는 동생을 통해 알게 된 공연기획사 대표(옥 씨)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약속 장소로 갔다”며 “막상 가보니 약속 장소는 술자리였고 그 곳에 전 국무총리 아들 A 씨가 나와 있었다”고 고백했다.
박 씨는 또 “옥 씨가 ‘시간 내서 나와 줘 고맙다’며 봉투를 건넸고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 안에 100만 원이 들어있었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미 집에 돌아가는 길이라 돌려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박 씨는 “그곳에 있던 분들과 영화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을 뿐 술접대는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박 씨의 고백으로 술접대 추문이 가라앉는 듯하더니 이번엔 사건의 불똥이 청와대로 튀었다. 지난해 4월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A 씨와 동행한 청와대 경호처 소속 간부가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잘하라” “죽고 싶냐”는 등의 온갖 욕설과 협박을 했다고 옥 씨가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사실이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 청와대 간부는 옥 씨가 청와대 이름을 팔고 다닌다고 해서 이를 확인하려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청와대 경호처 등은 자체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청와대 간부는 A 씨의 대학원 제자였고, A 씨의 부탁으로 이 자리에 합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전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술자리에 몇몇 대기업 회장이 동석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현진 씨가 동석해 문제가 된 그 술자리는 아니지만 또다른 논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옥 씨는 이와 관련, A 씨를 비롯한 대기업 회장과 연예인 등에게 술접대를 한 목록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문건을 만들어 검찰에 제출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문건에는 접대 일자와 내용, 접대비 지출 내역, 참석자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문제는 이 문건에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의 실명이 언급돼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기업 회장 B 씨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술접대를 받는가 하면 고가의 선물도 건네받은 것으로 적시돼 있어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B 씨는 2009년 12월 23일 A 씨의 단골 룸살롱에서 옥 씨로부터 75만 원 상당의 선물(카르티에 벨트)을 받은 것을 비롯해 다음날(12월 24일) 청담동 소재 가라오케에서 A 씨와 공연기획사 관계자 등과 함께 아가씨 공연 등을 곁들인 접대(420만 원)를 받았다. B 씨는 또 같은 해 12월 29일 아가씨들이 동석한 자리에서 700만 원 상당의 술 접대를 받았고, 벨트 목도리 장갑 등 명품 세트(224만 원)를 선물 받은 것으로 적시돼 있다.
문건에는 또다른 대기업 회장인 C 씨와 D 씨도 등장한다. 2010년 2월 17일 A B C D 씨 네 사람은 고급 룸살롱에서 600만 원 상당의 술접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옥 씨는 왜 돈 많은 대기업 회장들을 접대해야 했을까. 옥 씨에 따르면 A 씨가 대기업 회장들이 협찬(B·C 회장 20억, D 회장 10억 원)하기로 했다며 이들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고 해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A 씨의 피소사건에 총수의 이름이 거론되자 해당 대기업들은 펄쩍 뛰었다. 4월 8일 기자와 통화한 각 대기업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금시초문이다”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기업 회장들이 술접대를 받았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논리였다. 다만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세 사람(B C D)은 개인적으로 절친한 사이다. 사적인 모임도 자주 갖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면 개인적인 용무로 만났을 것으로 보인다. 술값 또한 ‘일행 중 한 사람이 냈겠지’라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4월 8일 기자와 통화한 옥 씨는 “어제(7일)부터 검찰 조사가 시작됐으니깐 사실관계가 명확해질 것이다. 내가 주장한 것은 모두 사실이고 문건 내용도 다 맞다”며 “A 씨가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 경우 소 취하를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반드시 법정에서 진실을 가리겠다”고 주장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