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시절부터 절친이자 라이벌인 유창식(한화), 임찬규(LG)가 1, 2순위 지명을 받고 나란히 프로에 입문했다. |
“완쾌했어요. 이제 던지는 일만 남았죠.”
개막을 앞둔 설렘에 부상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컨디션을 묻자 둘이 입을 맞춘 듯 동일한 대답이 돌아온다. 전체 1순위 지명을 받고 계약금 7억 원에 한화 유니폼을 입은 유창식은 고교 시절 누적된 피로로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한대화 감독이 선발 기용을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준 덕분에 유창식의 어깨는 완쾌된 상태다. 유창식은 “빨리 마운드에 나가고 싶다”며 주먹을 불끈 쥔다. “어깨는 나았지만 문제는 볼 스피드다. 최고 150㎞까지 찍었는데 지금은 145㎞까지 나온다. 그래도 개막까진 원래의 볼 스피드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체 2순위 지명을 받고 LG에 입단(계약금 3억 원)한 임찬규 역시 팔꿈치 부상으로 만족할 만한 훈련량을 소화하지 못했다. 때문에 새벽 1시까지 남몰래 이미지 트레이닝과 섀도 모션(Shadow Motion;투수들이 수건 등을 이용해 투구동작을 연습하는 것)을 병행하고 있다. “낮에 하기엔 부끄럽고 다들 주무실 때 몰래 나가서 연습하고 있다. 고교 시절, 제구가 흔들릴 때마다 썼던 방법이다. 이제 팔꿈치도 다 나았으니 맹훈련만 남았다. 기회가 왔을 때 꼭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 고교 시절엔
고교 시절 맞대결 이야기가 나오자 유창식은 “내가 졌다”며 고개를 푹 숙인다. 지난해 둘은 대통령배·무등기 대회·KBS 고교최강전에서 세 번의 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2 대 1, 임찬규의 승리. 당시 고교 최고의 투수는 유창식이었다. 지난해 3월, 제64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총 5경기 29이닝 평균 자책 0의 완벽투를 선보이며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그는 동료 선수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겨져 왔다. 그 벽을 깬 것이 바로 휘문고의 임찬규였다. 임찬규는 4월 벌어진 제44회 대통령배에서 31과 1/3이닝 동안 4승, 평균자책점 0.29의 뛰어난 성적으로 MVP를 차지하며 최고 투수 반열에 올라섰다. 특히 8강전에선 4이닝 동안 볼넷 하나만 내주는 완벽한 투구로 에이스 유창식을 앞세운 광주제일고를 8 대 3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어진 제7회 무등기 16강전 대결에서도 연장 승부치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광주일고 킬러로서의 명성을 재확인한 것.
임찬규는 2승 뒤에 숨겨진 비밀을 털어놓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나다. ‘최고가 되자’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노력할 때, (유)창식이가 저 꼭대기에 있더라. 넘어서고 싶었다. 사실 타자들이 도와준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당시 창식이가 마운드에만 오르면 타자들이 눈빛부터 달라졌다. 작정하고 달려들었다.” 마지막 대결, KBS 고교야구 최강전의 승자는 유창식이었다. 4이닝 동안 1피안타 1실점 호투해 구원승을 따낸 그는 마운드에 오른 임찬규를 상대로 중전 적시타를 때리기도 했다. 유창식은 “(임)찬규가 한가운데 직구를 던졌다. 빨라 보이긴 했는데 칠 만했다”며 너스레를 떤다.
# 서로 장·단점
둘은 묘한 신경전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았다. 임찬규는 “창식이는 마운드 위에서 표정 변화가 전혀 없다. 슬라이더로 타자를 요리하는 능력이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유창식 역시 “찬규는 여러 개의 변화구를 구사한다. 특히 서클 체인지업이 좋다. 마운드 위에서 자신 있게 던진다”며 장단을 맞춘다. 날카로운 지적도 이어졌다. “찬규는 강약 조절을 하지 않고 승부하는 경향이 있다.” “창식이는 직구 아니면 슬라이더라 긴 이닝을 끌고 가기 힘들 수 있다.”
두 선수 모두 개막을 앞두고 비밀병기를 연마 중이라고 한다. 임찬규는 봉중근으로부터 체인지업을 전수받았다. “봉중근 선배 공은 내가 던지던 서클 체인지업과 회전이 다르다. 두 종류의 체인지업을 던질 수 있도록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유창식은 스플리터(Splitter)를 연마 중이다. 류현진에게 배운 체인지업은 잘 안 맞는 것 같아 새로운 구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맞짱’ 인터뷰란 부담 때문일까. 라이벌로 몰고 가려는(?) 기자의 질문 때문일까. 인터뷰 말미, 둘은 “사실 우리 정말 친한 사인데 인터뷰 내용 보고 괜히 오해하실까 걱정된다”며 서로에 대한 응원을 부탁한다. 겨우내 웅크리던 날개를 활짝 펴고 마운드 위로 힘껏 날아오를, 당찬 두 신인의 올 시즌을 기대해보자.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
임찬규“뛰어넘겠다” VS 류현진“넌 해낼거야”
최근 “류현진 선배를 뛰어넘겠다”는 임찬규의 발언이 화제가 됐다. ‘꿈을 크게 갖고 노력하자’는 스스로를 향한 주문이었단다. “얼마 전 봉중근 선배의 소개로 대전구장에서 현진 선배를 만났다. 날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이 많았는데 먼저 웃으며 다가와주셨다. 이기라고, 넌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선배가 잠실에서 LG와 경기할 때 1패밖에 안한다면서 그 1패할 때 나와 맞대결하면 되겠다고 하시더라.”
한편, 류현진의 ‘까까머리’는 유창식의 작품이었다. 류현진에게 맛있는 점심을 대접받은 유창식이 단골 미용실을 소개한 것. 마침 둘 다 머리가 길었던 터라 사이좋게 ‘까까머리’를 하고 구장에 들어섰다. 특히, 앞머리를 사선으로 잘라 포인트를 준 유창식은 “야구 못하니 이런 거라도 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쑥스러운 듯 연신 머리를 만진다. 덕분에 한화 원투 펀치로 각광받는 두 좌완투수가 형제처럼 더욱 닮아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