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할까 3월 20일 일본 도쿄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 남성이 지바현에서 생산된 시금치를 살펴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번 후쿠시마(福島) 원전사태로 이바라키현에서 생산된 시금치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
지진 후 피폭 문제 등을 다룬 논픽션 <원자로 시한폭탄>(2010년 작)을 쓴 재야 반핵 운동가 겸 저널리스트 히로세 다카시(69)의 말이다. 히로세 씨는 대기업 엔지니어로 일하다 지난 1970년부터 40여 년간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정계의 야욕과 기업의 이권 개입 실태 등을 고발해 왔다. 그는 원자력이 절대로 안전하다는 소위 ‘안전 신화’ 이면에 건설비용만 수백억 엔대에 달하는 거대한 원전 사업을 놓고 정·재계, 관료 및 학계가 실타래처럼 얽힌 흑막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전역에는 총 55기의 원자로가 건설돼 있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 왜 이리 원자력 발전소가 많은 것일까.
우선 핵무기 개발을 염두에 뒀던 일본 정계 수뇌부의 야욕이 있다. 2차 세계대전에 승리한 연합국은 일본의 원자력 연구를 전면 금지했는데, 일본이 1952년 미국 점령에서 벗어나자 다시 원자력 연구가 시작됐다. 1955년 원자력기본법이 제정되고, 1963년 일본 내에서 처음으로 도카이무라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요시다 내각의 국회 답변을 보면, 과학기술청 부속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원자력 무기 개발을 기획했다고 한다. 일본의 반핵 운동가들은 핵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이 당시 일본 내에 전혀 알려지지 못했기에 이런 연구가 가능했다고 공통되게 지적한다.
또 2차 대전 A급 전범이었다가 1957년 총리가 된 기시 노부스케는 자서전에서 “원자력을 개발하면 자동으로 핵무장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썼다. 일본 외무성에도 “원자력 이용을 추진해 핵무장할 힘을 높일 수 있도록 하라. 국민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주의하라”란 내용이 쓰인 내부 문서가 있다고 한다.
히로세 씨가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원전의 이권을 둘러싸고 일본 내 정·재계, 관료는 물론, 학계까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거대한 ‘이익집단’의 존재다. 수백 명은 족히 넘는 이 집단은 혈연 및 결혼을 통한 친인척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히로세 씨는 1997년에 출간한 <사적 소유물-국가>에서 이 이익집단에 속한 이들의 가계도를 면밀히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이들 이익집단은 1976년 미국의 무기제조업체 록히드사가 일본 정계에 뇌물을 뿌린 ‘록히드 사건’, 베트남 유전 개발을 둘러싼 뇌물 수수 및 성접대 추문, 불량채권을 처리한 대장성(재무성) 각료 부패 사건 등 일본의 온갖 악명 높은 부정부패 사건에 항상 관여돼 있었다.
원자력 발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수도 도쿄 등이 있는 도카이(동해) 지역에 상하로 움직이는 직하형 지진이 온다면 가장 위험한 원전은 시즈오카현 하마오카 원전이다. 처음 이 원전 건설 계획이 나왔을 때 주민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질학계 등의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게 나왔다. 이에 맞서 원전에 내진 설계가 가능해 괜찮다는 학계 등의 주장이 등장하면서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결국 1976년 1기 건설이 강행됐다.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하마오카 원전 건설업체인 가시마건설 회장과 원전 운영회사인 중부전력 사장, 과학기술청 원자력 국장, 원전의 평화적 이용을 주장한 물리학자 등이 모두 가족이나 친족 관계라는 점이다.
히로세 씨는 일본 지진학계에도 비판을 보낸다. 대륙이동설과 판구조론 등은 그간 일본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대륙이동설은 원래 하나의 초대륙으로 이뤄진 대륙이 점점 갈라져 이동하면서 현재 대륙이 만들어졌다는 이론이고, 판 구조론은 지구 표면이 10여 개 판으로 쪼개져서 서로 상대적으로 운동한다는 이론이다. 둘 다 지진 발생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인데 오랫동안 일본의 지진학자들은 “일본이 지진의 나라이니만큼 지진학은 우리가 세계 제일이다. 서양 학자들이 뭘 알겠느냐. 지진은 화산 활동으로 일어난다”며 무시해왔다. 교과서에도 1980년대에 들어 겨우 실렸을 지경이다. 히로세 씨는 “일본 지진학계의 오만함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원전의 위험성이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다”고 꼬집는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야쿠자에 코 꿰 ‘원전 막장’ 투입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원전 노예’, ‘원전 집시’ 등으로 불리는 원전 현장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작업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전력회사들은 원전 노예의 존재를 일급비밀로 치부한다. 전력회사와 원전 노예 사이에는 야쿠자가 개입돼 있다고 한다. 이를 테면 야쿠자가 아무도 일하지 않으려 하는 원자력 발전소 현장에서 일할 노동자를 찾아서 전력회사와 계약하는 하청을 맡는다. 야쿠자들이 찾는 노동자들은 원전 노동의 위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만약 무슨 일이 생겨도 걱정해줄 가족이 없는 홈리스나 고아 등이다. 이른바 ‘야쿠자 공급설’이다. 때론 야쿠자가 원자력 발전소에서 ‘오야가타(십장)’로 일하기도 하는데, 노동자 일당이 원래 약 3만 엔 정도라면 2만 엔 정도를 수수료로 떼어간다고 한다.
전력회사는 하청을 통해 일시적으로 고용된 이런 원전 노예들에게 가장 위험한 일을 담당시킨다. 원자로 청소, 누출 시 오염 제거, 기술자들이 꺼리는 수리 일을 처리한다.
원전 노예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한 원전에서 다른 원전으로 옮겨 다니며 방랑한다. 그래서 ‘원전 집시’라 불리기도 한다. 무서운 것은 이런 집시 생활을 되풀이하면서 결국 심각한 피폭에 이른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연간 방사선량 허용치가 50밀리시버트이기 때문에 이 수치가 일정량에 달하면 건강을 위해 그만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 번 해고된 노동자가 다시 가명으로 계약을 해 결국 10년간 줄곧 고용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또 개중에는 일을 못하게 될까봐 두려운 나머지 방사선 수치를 감추기에 급급한 이마저 있다고 한다.
하청으로 일하는 원전 현장 노동자를 사진으로 기록해 오는 작업을 하고 있는 포토 저널리스트 히구치 겐지 씨는 “결국 (집시 생활로) 원전 현장에서 허용치의 수백 배에 달하는 방사선을 쬐게 된다”고 설명한다. 후쿠다 유코 일본 게이오대학 물리학 교수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벌써 700~1000명의 하청 노동자들이 죽었고, 수천 명이 암에 걸렸다고 한다.
일본 주간지들은 후쿠시마 원전 냉각수 투입 작업에 동원된 50명의 결사대 중에도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진 말단 업체에 속한 이들이 많다고 보도하고 있다. 실제로 도쿄전력 측은 지난 13일 후쿠시마 원전에 해수 공급을 하던 사원이 3호기 폭발 사고로 피폭당했다고 밝혔다. 이 사원이 23세의 파견직이란 점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에서는 ‘정사원도 숙련자도 아닌 20대 초반 젊은이가 이런 현장에 왜 동원되는가’라는 비난의 댓글이 폭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