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도원 2단(20)은 올해 세계바둑대회의 테이프를 끊은 제9회 정관정배 한-중-일 여자 대항전에서 한국 팀 첫 주자로 나와 경이의 7연승으로 화제를 독점했고, 팬들은 “이러다 문도원이 세계여자바둑을 평정하는 것 아니냐”면서 한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신영과 최정은 제5회 지지옥션배(중년 남자 대 젊은 여자 연승대항전)가 배출한 스타자매. 김신영(20)은 아마추어 강자, 최정은 열다섯 살, 1996년생으로 작년에 입단한 중학생 프로 초단 소녀인데, 김신영은 6월 초에 끝난 아마추어 지지옥션배에서 3번 타자로 나와 6연승, 여성 팀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최정은 요즘 진행 중인 프로 지지옥션배에서 여성 팀 선봉에 서더니 7월 7일 현재 6연승으로 달리고 있다.
박영훈 원성진 최철한이 1985년 소띠 동갑으로 어릴 적에는 ‘송아지 3총사’, 요즘은 ‘세계 정상에 올라 있는 황소 3총사’로 불리는 것처럼, 이슬아 문도원 김신영은 모두 방년 스무 살, 양띠 동갑인 것이 재미있다. 글자 그대로 ‘재원(才媛)’이다. 이슬아는 깜찍하고 문도원은 단아하며 김신영은 당당하다. 김신영은 프로 입단 영순위. 머지않아 프로 동네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최정은 6월 20일, 남자 팀의 기선제압을 위해 등판한 속기와 난전의 명수, 손오공 서능욱 9단에게 백을 들고 무려 33집반의 대첩을 거두는 것으로 연승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튿날인 21일, 이론에 밝고 행마가 가볍고 깨끗해 ‘명품 바둑’으로 인정받는 김종수 7단을 만나 이번에도 백을 들고 처음에는 조금 밀리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김 7단의 대마를 잡고 이겼다.
일주일 쉬고 6월 27일, 상대는 왕년 도전5강의 맏형 장수영 9단. 최정은 또 백을 들고 반면 빅, 6집반을 이겼다. 3연승이었다. 3연승부터는 연승상금이 있다. 3연승이면 200만 원이고 이후 1승 추가마다 100만 원이 계속 붙는다. 4연승이면 300만 원, 5연승이면 400만 원이다. 최정은 일단 200만 원을 확보한 것.
6월 28일, 다급해진 남자 팀에서는 특급 소방수 차민수 4단이 나왔다. 최정은 4회 때 바로 차 4단에게 걸리는 바람에 1승도 못하고 내려간 기억이 있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모처럼 흑을 들고 차 4단의 백 대마를 잡아 빚을 갚았다. 김종수 7단의 대마를 잡을 때는 152수, 이번에는 177수, 최정이 아저씨들의 대마를 메다꽂은 바둑은 단명국이었다.
최정의 일인극은 계속된다. 7월 4일, 다섯 번째 상대는 김동면 9단. 충암사단에서 허장회 9단 다음의 선배며 젊었을 때부터 정연한 바둑에 외모가 수려하고 성품이 원만해 ‘신사(紳士)’로 불리는 아저씨다. 바둑은 중반 이후 백을 든 김 9단이 계속 유리했다. 최정의 연승은 4연승으로 막을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승점을 몇 걸음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김 9단이 끝내기에서 연달아 실수를 했다. 최정은 김 9단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낚아채 여덟 집을 남겨 1집반 역전승에 성공했다.
<1도>를 보자. 김 9단의 백1이 우선 실수. 큰 곳이긴 하지만, 우하귀 흑8을 당해 국면이 졸지에 이상해졌다는 것. 백1로는 흑8 자리를 먼저 막아야 했다는 것. 게다가 그게 선수다. 백8이면 흑은 A에 받아야 한다.
<2도>처럼 백로 막을 때 흑이 지키지 않으면 백1로 간단히 수가 난다. 백5 다음 A와 B가 맞보기. <2도>백는 선수 5집. <1도>흑8은 백의 선수 5집을 역으로 해치운 것.
<3도> 우변에서 제1선에 백1로 내려선 것이 최후의 패착. 좌변 흑2로 확실한 역전이라는 것인데, 흑2가 또한 백으로서는 어이없는 역끝내기였다. 백1로는….
<4도> 백1로 두어야 했다는 것. 역시 선수다. 흑은 2로 받아야 한다. 흑2를 기다려 백3에 막아두는 것으로 바둑은 백승이었다.
김 9단은 역끝내기 두 방으로 고배를 들었다. 신사 김 9단인지라 나이 어린 중학생 소녀의 신나는 연승에 부담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7월 5일 김동면 9단과 이름도 나이도 비슷한 김동엽 9단이 나왔다. 야전과 실전으로 내공을 쌓은 바둑. 서봉수 9단, 박영찬 4단 등과 같은 계보의 잡초류로 알려져 있다. 이날 바둑은 김 9단이 최정의 흑 진영에 침투하는 것에서 전투가 시작되었고, 김 9단이 잘 수습하면서 괜찮은 형세로 이끌었으나 2라운드 초입, 최정의 응수타진에 김 9단의 페이스가 약간 흔들리면서 최정이 주도권을 잡았다. 이후는 공격과 타개의 불꽃 튀는 공방이었는데, 최정은 빈틈없는 용병술로 김 9단을 따돌렸다.
<5도>가 최정의 응수타진에 김 9단이 흔들리는 장면. 흑1로 들여다보자 백은 2로 중앙을 보강했다. 흑1은 단순히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중앙 A 자리를 끊으려는 축머리 공작이어서 대국 당시에는, 백2는 온당한 응수처럼 보였으나 국후 유격전의 명수 김 9단답지 않게 나약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6도>는 실전진행. 흑1, 3이 아팠고, 흑5로 몰 때 백6으로 즉시 나간 것은 이른바 오버플레이. 흑7, 9에서 11, 13으로 이쪽을 봉쇄해서는 흑이 편한 바둑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백으로선 일단은 받고 버티었어야 했다는 평이다.
<7도> 백1로 받고 싶다는 것. 흑2로 끊으면? 그거야 싸운다는 것. 이건 피차 겁나는 싸움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싸움이야 김 9단 전공 아니냐는 것이었다.
김동엽 9단은 어릴 적에 말하자면 불우한 환경이었다. 봉천동이 지금은 고층 아파트촌이 되었지만 옛날엔 달동네였다. 김 9단은 달동네 시장에서 어머니와 행상을 하며 자랐다. 바둑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청년 시절에 바둑으로 봉천동 일대를 주름잡았다. 김 9단의 바둑이 강인한 생명력의 잡초류인 것은 그런 히스토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잡초류도 나이 쉰이 넘으면, 내일모레 예순을 바라보는 그런 나이가 되면 순하고 부드러워지는 것일까. 그럴지 모른다. 그게 바둑으로는 손해겠지만, 삶으로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도 든다.
그나저나 그것 참. 한 판 이기기도 어렵고, 2연승, 3연승 같은 건 그야말로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운이 따라 주어야 한다는 건데, 이 아가씨들은 두었다 하면 6연승, 7연승이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