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즐기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동반자가 생긴다. 이 골프 동반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구력이 늘어날수록 절감하게 된다. 우선 실력이 엇비슷해야 한다. 나보다 너무 처지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너무 월등해도 자괴감이 든다. 성품도 중요하다. 침착하든 발랄하든 어느 쪽이든 통해야 한다. 라운드 동반자 중 가장 최악은 급한 성격과 느려 터진 성격이 만났을 때다. 연습 스윙을 아예 안하거나 딱 한 번만 거침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샷 한 번 할 때마다 도 닦는 사람을 만나면 속에서 불이 난다. 플레이가 느린 사람들은 자신들의 플레이가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느긋한 사람과 조급한 사람이 만나면 누가 손해인지, 특히 골프에서는 그 결과가 자명하다. 마음에 맞는 골프 동반자 찾기가 거의 배우자 구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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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S오픈 연장전에서 맞붙은 유소연(왼쪽)과 서희경이 함께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
2011년 LPGA US오픈에서 유소연이 서희경을 연장에서 이기고 우승하자 두 선수를 분석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오랜 라이벌 대결에서 유소연 승리!’ ‘유소연, 라이벌 서희경을 마침내 누르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라이벌! 미국에서 대결하다’. 두 선수를 라이벌로 묘사한 기사가 여러 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당연하다. 성적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2009년 기록을 봤다. 서희경과 유소연은 나란히 5승씩을 거뒀다. 알려진 얘기다. 나는 다른 부분에 눈길이 갔다. 이 시기의 조 편성을 살펴봤다. 유소연과 서희경은 그 해 열린 20개 대회에서, 1라운드 같은 조로 10번이나 편성됐다. 1라운드 조 편성은 협회에서 전 대회까지의 순위를 두고 엇비슷한 선수들끼리 한 조로 묶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같은 조 아니면 거의 앞 뒤 팀으로 이렇게까지 빈번하게 함께 플레이하는 경우는 드물다. 두 선수의 맞대결을 각 대회마다 홍보 전략으로 부각시켰다.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두 선수가 작년에는 나란히 우승이 없었다. 재밌는 사실은 이때는 두 선수가 같은 조에서 만났던 횟수가 4번으로 현격히 줄었다. 다시 말하면 같은 조에서 플레이했던 경우가 많았을 때는 둘 다 나란히 다승을 기록했고, 만남이 적었을 때는 둘 다 우승이 없었다. 굴곡을 함께 겪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선수가 미국 최고 권위 대회 연장전에서 만나는 모습은 그래서 감동이 더 컸다. 승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우승해도 상관없었다. 서희경이 경기를 먼저 끝내고 하루를 쉰 상태여서 불리했다는 평가는 결과론적 얘기다. 유소연은 국내무대에서 활동하다 참가한 무대라서 상대적으로 마음을 비울 수 있었고 그래서 유리했다는 얘기도 큰 의미가 없다. 동반자와 라이벌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바라보는 창에 달려있다. 결국 마음의 문제다.
서희경과 유소연은 실력이 엇비슷하다. 매 샷 신중한 모습도 닮았다. 영어 인터뷰도 똑 부러지게 해낼 정도로 준비가 철저하다. 심지어 옷도 예쁘게 입는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이 있다. 승부가 갈린 순간, 서희경은 동생을 안아주며 깨끗이 승복했다. 유소연은 우승 인터뷰에서 ‘앞으로 희경언니가 우승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그들은 라이벌이 아니었다. 서로를 존중했다. 동반자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둘은 최선을 다했고 우리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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