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금수저, 흙수저 삶 공감 못해…지나친 자부심 사회생활에 독…실패·위기 극복 능력도 부족
“우수한 도쿄대생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보통 사람과 비교해 절반 이하의 시간으로 일을 마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비율은 학년당 겨우 10% 정도. 나머지는 성실한 수재, 혹은 수험공부 요령을 터득한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도쿄대 따위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았다’의 저자 이케다 케이 씨는 이렇게 밝혔다. 그는 도쿄대 농학부와 동 대학원을 수료한 후 수많은 도쿄대 졸업생들을 취재해왔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것은 일반 기업에 들어가 다른 학교 출신인 상사와 동료들과 섞이지 못한 채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무얼 해도 ‘도쿄대 졸업생’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주위와의 마찰을 피하려고 “학벌 따윈 상관없다”고 말하면, 오히려 “잘난 척한다”며 눈총받기 십상이다.
“상사가 모든 직원 앞에서 ‘전문대를 나온 녀석도 저만큼 실적을 올리는데, 천하의 도쿄대를 나온 너는 왜 그러냐’고 추궁할 때마다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카세 씨(가명)는 대형은행에 취업한 케이스다. 중소기업과 개인영업을 담당했는데, 주로 회사 사장이나 자산가의 자택을 방문해 투자신탁 구입을 타진하는 일이었다.
고객의 기분을 헤아리고 설득하는 동시에, 거절당해도 계속 방문해야만 했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해온 그에게는 “고행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한다. 결국 카세 씨는 심리적 부담으로 정신질환을 앓았고, 의사와의 면담 끝에 휴직을 권고 받았다.
흔히 도쿄대 출신들을 가리켜 “까다롭다” “프라이드가 지나치게 강해 소통이 어렵다”는 볼멘소리를 한다. 옛날 같으면 비록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져도, 도쿄대생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길이 여럿 있었다. 가령, 눈앞에 주어진 방대한 일을 요령 있게 처리하는 변호사나 고위 관료를 택하는 것이다. 변호사가 되면 고액의 수입이 약속됐고, 관료의 경우 ‘나라를 움직이고 있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의 길은 법과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된 이후 공급과잉으로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조사에 의하면, 일본 변호사의 평균 수입은 2006년 1200만 엔(1억 2500만 원)에서 2018년 650만 엔까지 감소했다. 관료 또한 격무와 박봉에 시달리는 데다, 과거처럼 권세를 누리지 못한다. 주요 관청에 도쿄대 출신들이 몰린다는 것도 옛말. 2021년도 국가공무원 경력 채용에서 도쿄대 출신 비율은 단 14%에 불과했다.
도쿄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지금 도쿄대생들의 진로 목표는 프라이드도 가질 수 있고, 급여도 지극히 높은 대기업”이라고 밝혔다. 최우선 취직 자리는 ‘맥킨지’나 ‘딜로이트토마츠’ 같은 글로벌 컨설팅회사다. 채용 인원이 적기 때문에 우수한 학생들로 금방 메워져 버린다. 그 밖의 인기 취직처는 와세다대 및 게이오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작년 도쿄대생을 가장 많이 채용한 회사는 라쿠텐이었고, 2위가 미쓰비시상사, 3위가 미쓰비시 UFJ은행 순이다.
주간겐다이는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도쿄대생이 늘어난 결과, ‘입사하면 자동으로 간부 후보’가 되는 보장도 사라졌다”고 전했다. 도쿄대생의 ‘대량공급’이 그들의 우월적 지위를 앗아갔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대형 은행에 근무하는 40대 남성은 “예전에는 도쿄대 졸업자의 경우 웬만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한 지점장까지의 출세가 보장됐다. 하지만 지금은 특별한 대우를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도쿄대 출신은 30대까지는 굉장히 영리하다”고 한다. 경영계획서를 만들거나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 그러나 직급이 올라가면 관계 부서와 절충을 한다든지, 경우에 따라서는 고개를 숙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여기서 많은 도쿄대 출신들이 애를 먹는다.
인재 컨설턴트 이노우에 가즈유키 씨는 “도쿄대 입학이 인생의 피크이고, 이후 내리막길을 걷는 이들의 공통점은 평범 이하인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도쿄대가 조사한 결과를 보면, 도쿄대생 부모의 연수입은 ‘950만 엔(약 9800만 원) 이상’이 무려 60.8%였다. 그리고 “이 비율은 최근 20년간 거의 바뀌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노우에 씨는 “이러한 환경이 학생들의 사고방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언급했다. 예컨대 고학력·고소득 부모 밑에서 태어나 사립 중·고교를 거쳐 도쿄대에 입학한다. 같은 처지의 동급생들만 있는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다른 삶’은 아주 먼 얘기일 뿐이다. 입장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상해보라고 해도 무리일 수밖에 없다.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결과, 실패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경향도 보인다. 더욱이 최근에는 수험요령을 주입하는 ‘쪽집게 강의’로 도쿄대 합격자를 배출하는 사립학교도 증가하고 있다. 이를테면 상당수의 학생들이 주어진 시스템 속에서 순종적으로 공부한 덕에 도쿄대에 입학하는 것이다.
이케다 씨는 “공부와 일은 사정이 다르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일은 ‘정답’이 없는 가운데, 실패를 거듭하면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선진국을 모방해 성장하던 시대까지는 도쿄대 출신들이 가장 잘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도 ‘뭐가 정답인지 모르는 시대’다. 이제 출세할 수 있는 건 ‘100점 만점’이라는 상한선 속에서 실점을 줄이려는 게 아니라, 감점에도 굴하지 않고 200점, 300점을 노릴 수 있는 대담한 사람들이다.”
물론 도쿄대를 졸업한 후에도 강한 의지로 놀랄 만한 성과를 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AI스타트업 ‘프리퍼드 네트워크’를 설립한 니시카와 도루와 오카노하라 다이스케다. 이들은 인간의 뇌를 컴퓨터상에 수리모델로 재현해 AI가 스스로 학습해가는 ‘딥러닝(인공신경망 기반의 기계학습 기술)’ 분야에 집중했고, 시행착오 끝에 세계 톱클래스 수준의 기술을 확립했다. 도요타, 화낙, 미쓰이물산 등 쟁쟁한 대기업들이 줄줄이 기술제휴를 제의해와 현재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3500억 엔(약 3조 6000억 원)을 넘어섰다. 도쿄대 졸업생의 지성과 행동력이 결실을 이뤄낸 것이다.
이케다 씨는 “일반적으로 도쿄대생은 타고난 정보처리 능력으로 무엇을 해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분석이나 준비에 시간을 들이기 쉽다. 그렇지만 사회에 나와서 필요한 것은 빈틈없이 위기를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몇 번을 실패해도 일어서는 강인함”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인생의 피크가 도쿄대 졸업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도쿄대를 나왔는데 대체 왜?’라는 말을 들어도 웃어넘길 수 있는 뻔뻔함이 필요하다”고 선배로서의 조언을 건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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