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창치배 세계 대학생 바둑대회 여자부 개인전에서 김수영이 8승 1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
프로바둑 세계대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제1회 잉창치배 세계프로대회 개막이 1988년, 조훈현 9단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것이 이듬해인 1989년, 이후 4년마다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같이 열려 2008~9년에 7회를 치렀고, 대학생 대회는 1991년에 출범한 후 매년 열려 올해 20회를 맞았다. 연륜이 쌓였다. 잉창치 기금의 지속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번 대회에는 35개 팀이 참가했다. 그 중 남녀 대학생이 같이 출전한 곳이 20, 남자만 나온 곳이 11, 여자만 나온 곳이 3팀이었다. 대회는 단체전과 개인전인데, 단체전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같은 팀 소속 선수들의 개인전 성적을 합해 단체전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명지대에서 김명규 매성혁 권정원(여) 김수영(여) 4명, 대불대에서 함영우 박중훈 김기범 채현기(여) 4명, 서울대에서 오주성 이성엽 백승환 3명 - 3팀 11명이 참가했다. 단장 김원태 한국대학바둑연맹 고문(전 회장), 부단장 박애영(여) 대학연맹 부회장, 지도사범 이홍렬 9단, 코치 김진환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김향희(여) 부산바둑강사회장.
명지대는 바둑학과가 있고, 목포-영암 경계의 대불대는 바둑학과 대신 체육학과 안에 바둑전공이 있다. 명지대의 김수영은 연구생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특A급 강자. 명지대의 권정원과 대불대의 함영우, 채현기도 연구생 출신으로 요즘 한창 전국대회에서 활약하고 있다. 상위권 입상 단골손님이다. 특히 함영우는 실력도 출중한 데다 제일 연장이고 의젓해 이번 대회 동안 팀의 리더 역할을 했다.
명지대의 김명규와 매성혁, 대불대의 박중훈, 모두 인물이 좋다. 매성혁은 매화 매(梅), 희귀한 성이고 별 성(星)에 빛날 혁(赫), 이름은 한 폭의 그림이다. 박중훈은 친구들이 영화배우 박중훈보다 잘 생겼다고들 한다.
명지대와 대불대의 참전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인데, 서울대 선수들이 눈길을 끈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주성은 현역 프로기사 2단. 중국 대학생 대회에는 프로도 4단 이하면 출전할 수 있다.
오주성은 1988년생으로 2002년 열네 살 때 프로가 된 기재다. 입단 당시 장래가 촉망되는 주목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2단 승단은 2005년. 이것도 좀 특이한 기록이다. 입단이 ‘빠른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면 승단은 ‘늦은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입단할 때의 재주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인지. 그게 아니라 마음이 변했던 것이다. 프로 세계의 승부보다는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던 것. 오주성은 지금 서울대 물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통계물리학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오주성과 함께 온 이성엽도 물리학과, 백승환은 기계공학과. 이성엽은 입자물리학을 전공할 생각이다. 바둑 잘 두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둑 잘 두는 사람 가운데 머리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남자는 5일 동안 하루 두 판씩 두고 마지막 6일째 한 판, 모두 11판을, 여자는 4일 동안 하루 두 판씩에 5일째 한 판, 9판을 두었다. 경기 방식은 스위스리그에 제한시간 각 72분 타임아웃제. 초읽기 없이 72분을 다 쓰면 12분 초과할 때마다 2집씩 벌점을 먹는다. 괜찮은 제도다.
하루에 두 판씩 엿새 동안이나 매일 바둑을 두어야 하는 것이면 지겹지 않을까, 모처럼 외국에 와서 관광은 언제 하고, 놀기는 언제 노나? 학생들이 푸념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아니었다. “진지하게 두는 것도 재미있다. 인터넷에서는 물론이고 요즘은 주로 속기로 두지만, 시간을 충분히 들여 열심히 생각하면서 두다보니 지루한 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우리 성적은 평년작. 여자 개인전에서 김수영이 8승1패로 우승을 차지했고 남자 개인전에서는 지난해 우승자 함영우가 중국의 강자들과 선두그룹을 이루며 10승2패로 각축하다가 마지막 판에서 시간에 쫓겨 4집 벌점, 10승3패로 져 4위에 머물렀다.
우리가 잉창치배 세계대학생대회에 참가한 것은 2007년부터, 올해 다섯 번째다. 2007년 푸젠(福建)성 샤먼(厦門)대학 대회 때 우리는 첫 출전에 김대용 3단(현 4단)과 김지은(현 타이젬 기자)이 남녀 개인전을 석권하자 주최 측은 2008년 상하이(上海) 대회부터 프로-아마를 분리해 시상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으나 상하이 대회 때도 여자부에서는 명지대 김희수가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에도 한국 여자 대학생 파워는 식을 줄 몰라 2009년 산둥(山東)성 지난(濟南) 대회 때는 이선아, 2010년 산시(産西)성 타위위안(太原) 대회 때는 박한솔이 우승컵을 안았다. 그동안 남자부에서는 함영우가 고군분투했다. 김희수, 이선아, 박한솔 등은 요즘 바둑대회에서 자주 만나는 얼굴들이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대학 바둑은 어린이-청소년과 성인 바둑을 잇는 다리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 바둑을 다시 예전처럼 키울 수 있는 적기다.
“1997년에 IMF가 왔지만, 사실 그때 바둑교실은 별로 타격을 입지 않았다. 오히려 많았다. 2002년 카드대란 직전까지 전국적으로 바둑교실은 성행했다. 바둑교실이 줄어든 것은 카드대란 이후의 일이다. 줄어들기 직전까지, 그 무렵에 바둑을 배운 어린이들이 지금 대학생이 되었다. 그들 가운데 대다수가 중고교까지는 입시 때문에 바둑을 쉬었지만, 대학에 들어와 다시 바둑을 찾고 있다. 마당만 만들어 준다면 학생은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요즘은 여대생 바둑이 바둑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서울대 연대 고대 기우회장이 모두 바둑 18급 안팎의 여학생이다. 그들은 18급 대회도 만들어 바둑을 즐긴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서 확실히, 그리고 유쾌하게 초월하고 있다. 아무튼 대학 바둑이 활발해지면 이제는 거꾸로 어린이 바둑교육을 살릴 수 있다. 바둑이 다른 정규 학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기도 하거니와, 바둑 보급과 교육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는, 아니 바둑계는 대회 성적만 볼 일이 아니다. 젊은이들이 그려가고 있는 바둑문화의 새로운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 명지대 김진환(45) 교수의 말이다.
이광구 바둑전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