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오래전에 약속했던 라운드가 있었다.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상황을 설명하면, 쉽게 양해를 얻으리라 생각했는데, 골프장 예약자가 상당히 난처해했다. 하도 부킹을 취소하는 사람이 많아서 골프장에서 웬만하면 와달라는 간청을 했다는 것이다. 수재민들에게는 한가한 신선놀음처럼 여겨질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골프장도 경영을 해야 하는 업체다. 손님이 와야 운영이 되니, 상황이 짐작되었다.
골프장 입장에서 최근의 기상변화는 심각한 문제다. 한반도의 아열대 기후화가 현실화됐다.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골프계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미 골퍼들이 줄고 있다. 특히 올 여름은 심각하다. 기상 상황을 비롯한 각종 악재가 겹치면서, 골프장들은 경영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국 골프장 평균 7월 전년대비 내장객이 40% 이상 급감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골프 치는 사람들은 줄어드는데 골프장은 계속 신설되고 있다. 작년기준으로 우리나라에 골프장 수가 500개를 돌파했다. 올해 개장된 신설 골프장은 각종 서비스 차별화를 회원모집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경영이 쉽지 않다. 피부로 느껴진다. 골프 치러 가자는 제의를 하는 사람이 드물다.
골프대회도 파행 진행이 속출하고 있다. 올 여름 원아시아 투어로 편입된 하이원 채리티 골프대회가 기상상황 때문에 1라운드도 제대로 못하고 대회를 끝냈다. 얼마 전에 제주도에서 있었던 조니 워커 클래식 대회도 비바람 때문에 마지막 날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양 대회 모두 장마기간을 피해서 날짜를 정했지만, 이상기후에는 대책이 없었다. 이제 기후변화가 대회의 존폐여부를 결정짓게 돼 버렸다. 하늘만 원망할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골프와 관련된 수많은 일에 생계가 달려있는 사람들이 많다. 용품업체, 협회, 관련 미디어와 투어 종사자, 골프장과 골프 연습장 근로자, 그 외에도 수많은 업계 종사자들에게 눈 폭탄과 물난리는 남의 얘기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자연을 이길 수 없다. 골프는 자연에 순응하는 스포츠다. 이기려 들면 진다. 승산 없는 싸움일지라도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골프계는 앞으로 어떤 타협을 해나가야 하는 걸까? 상대는 기후변화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비가 온다.
SBS 아나운서 최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