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4월 24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펜릴레이’에 참가해 400m 계주를 하고 있는 볼트. 로이터/뉴시스 |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100m 결승 경기. 볼트가 ‘괴물’이라는 첫 별명을 얻은 순간이다. 엄청난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볼트는 연신 익살맞은 표정으로 몸을 흔들어댔다. 경기가 시작돼도 쇼는 계속됐다.
앞만 보고 달려도 부족한 마당에 40m 지점을 통과할 무렵부터 옆 선수를 힐끔거리거나 전광판을 쳐다봤다. 80m부터는 아예 두 팔을 벌리며 환호했다. 그런데 1등이었다. 심지어 세계신기록(9초 69)까지 달성했다.
더 놀라운 점은 제대로 묶지도 않은 신발을 신고 달렸다는 것이다. 금메달의 기쁨에 심취해 트랙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볼트의 왼쪽 신발끈이 풀려있었다. 스타트도 8명 중 7위였다. 195㎝ 장신의 볼트는 ‘롱다리’가 단거리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공식마저 깨버렸다.
# 타고난 강심장
여유와 자신감. 볼트가 가진 최고의 장점 중 하나다. 출발선에 선 볼트의 표정은 늘 해맑다. 마치 동네 운동회에 참석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다. 길지도 않은 머리를 매만지고 손가락을 입에 댔다가 눈썹을 만지는 특이한 춤 동작을 선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관중석을 향해 멋진 제스처를 취하며 응원을 유도한다.
긴장을 하지 않아서일까. 경기에 대한 걱정도 없다. 2008 베이징올림픽 200m 경기를 앞두고 몸을 풀고 있던 볼트의 최대 관심사는 비행기였다. 다른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을 때 볼트는 올림픽이 끝난 후 스위스로 떠나는 비행기가 예약됐는지에 더 신경 썼다. 볼트는 육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완벽한 ‘괴물’이다.
# 사차원 답변
“저 선수는 잘생겼고 매우 빠르다.” 2008 베이징올림픽 100, 200m에서 금메달을 딴 볼트는 자신의 경기장면을 본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답변도 사차원이었지만 시종일관 과자를 먹으며 기자회견에 참석해 기자들마저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자메이카 출신 유명 육상선수들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선수생활을 하기 위해 선진국으로 떠나는 일이 잦다. 하지만 볼트는 미국 대학의 끊임없는 스카우트 제의에도 불구하고 고국을 지켰다. 그 이유에 대해 묻자 “(미국은) 추워서 싫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400m 경기를 뛰지 않는 이유로 “너무 오래 뛰기 싫다”고 답했으며 “멋진 댄스를 추는 것과 기록 경신은 같다”는 묘한 지론을 펼쳐 우주인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 특이한 식성
볼트를 보면 외계인의 식성을 짐작할 수 있을까. 그만큼 그의 식성은 유별나다. 보통 운동선수들은 음식조절에 상당한 신경을 쓴다. 하지만 볼트는 예외다. 운동선수에겐 금기인 치킨과 햄버거 등 인스턴트 식품이 주식이다. 경기 당일에는 꼭 치킨 너깃을 먹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내 스피드의 원천은 치킨 너깃”이라고 말할 정도다. 볼트의 독특한 식성은 새로운 음식을 잘 먹으려 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또 대회를 앞두고 배탈이 나면 안 되기 때문에 가장 익숙한 음식인 치킨 너깃을 찾는다고 한다.
# 자유분방함
볼트의 일상생활은 자유 그 자체다. 세계적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술에 취해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포즈를 취한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클럽이 자신의 집이라 말할 만큼 춤과 음악을 사랑한다. 훈련이 없는 날에는 어김없이 파티를 즐긴다. ‘파티광’이라고 불릴 정도다. 지나치게 자유로운 모습에 주위에서 운동을 게을리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볼트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며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박민정 인턴기자 mmjj@ilyo.co.kr
파월 ‘큰 무대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나’
▲ 2009년 대구국제육상경기대회에 참가했던 파월. |
무관의 제왕. 육상 남자 100m 특급 스프린터 아사파 파월(29·자메이카)에게 붙은 수식어다. 파월은 분명 뛰어난 선수다. 한때 세계신기록 보유자이기도 했으며 지금도 출전하는 대회마다 우승후보자로 거론된다. 100m 9초대 최다 기록(71회)을 가진 것도 파월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메이저대회 징크스가 있다. 이 때문에 파월은 운동선수에게는 꿈의 무대라 불리는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 한 차례도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라이벌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와 달리 경기에서 지나치게 긴장하는 탓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긴장감이 불러온 복통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이 사건으로 파월은 ‘새가슴’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파월 외에도 특정 대회 징크스를 가진 선수들이 꽤 많다. 여자 200m 강력 우승 후보 앨리슨 펠릭스(26·미국)는 올림픽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2005, 2007, 200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지만 2004, 2008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그나마 세계선수권만큼은 1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파월보다는 낫다는 위로 아닌 위로를 듣는다.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에게도 징크스가 있다. 이신바예바의 트레이드마크인 땋은 말총머리와 관련한 것이다. 긴 머리의 그는 경기가 있을 때마다 정성들여 머리를 땋고 나온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대기실로 돌아가 머리를 풀었다가 다시 땋는다. 머리를 풀고 다시 땋는 것처럼 경기도 잘 풀렸으면 하는 의미에서다. 또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시간에도 신경을 쓴다. 자고 일어나고 씻는 시간을 평소와 똑같이 맞춰야만 그날 경기가 잘 풀리기 때문이다.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