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들꽃들이 피고 지는 식물원. |
한국자생식물원을 찾아가기는 어렵지 않다. 영동고속국도 진부나들목으로 나와서 월정사를 찾아가다 보면 한국자생식물원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약 1㎞쯤 들어가면 목적지다. 오대산국립공원 내에 속한다.
한국자생식물원은 우리 땅에 자생하는 꽃과 나무들로만 조성된 곳이다. 약 15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99년 6월 문을 연 이 식물원은 그 이름 때문에 국립으로 오해받는 일이 많지만, 사실 한 개인이 피땀을 흘려 만든 작품이다. 그 주인공은 김창렬 씨(62). 우리나라에 식물원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부터 ‘미쳤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뚝심으로 일군 것이 바로 한국자생식물원이다. 이 식물원을 일구느라 그는 모두 30억여 원의 재산을 쏟아부었다. 시작은 우리의 자생식물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워서였다. 그는 유전자보호를 목적으로 온 산하를 돌아다니면서 자생식물들을 수집했고, 그것들을 번식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총면적 3만 3000평의 한국자생식물원에는 우리 식물 2200여 종이 식재돼 있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전체 식물의 50%가량 된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겨지는데, 해가 갈수록 자생식물의 보유 개체수는 점점 늘고 있다. 하찮은 풀꽃 하나라도 소중히 보전하는 게 목표라는 식물원의 각오를 읽을 수 있다.
사실 식물원으로 들어가면 시선을 확 잡아끄는 무언가를 기대하긴 힘들다. 우리 자생식물 중에서 이곳에는 특히 들꽃이 많은데, 우리 것의 특성이 그렇다. 서양 꽃처럼 화려하지가 않다. 장미처럼, 백합처럼, 튤립처럼, 히아신스처럼 존재감이 뚜렷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색깔도 향도 그저 그렇다. 앞서 말한 서양 꽃들이 만약 한국자생식물원에 식재된다면 단숨에 시선을 훔쳐버릴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우리 들꽃들은 쉽게 질리지 않는다. 수더분한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서 오래도록 곁에 두고서 보고 싶다. 한국자생식물원을 둘러보고 떠나는 사람들의 반응은 극명히 갈린다. 볼 것 하나 없다며 투덜대는 사람과 볼 것 많아 행복했다는 사람. 여느 관광지 다니듯 휙 하니 발도장 찍고 떠나는 사람에게 수줍어서 숨은 가녀린 우리 들꽃들이 보였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당부하건대, 한국자생식물원에서는 무조건 천천히 여유롭게 걷도록 하자. 그리고 풀섶 속에서 반짝이는 흐릿한 빛깔 하나도 놓치지 말자.
한국자생식물원은 실내전시장과 주제원, 재배단지, 습지원, 생태식물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문을 통해 식물원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실내전시장이다. 조경관, 분경관, 순채보전원 등의 식물 식재공간과 이벤트관 등의 전시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재공간 중에서는 요즘 만발한 순채보전원의 노랑어리연꽃이 볼거리다. 전시공간에서는 월별로 다양한 작품 전시가 열린다. 우리 꽃을 주제로 한 전시다.
▲ 식물원에는 뛰어놀기 좋은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한 가족이 잔디밭에서 추억을 담고 있다. |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재배단지에는 벌개미취가 가득이다. 분홍바늘꽃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분홍바늘꽃은 지금 꽃이 거의 다 진 편인데, 희한하게도 이때의 모습이 더 애잔하다. 벌개미취는 연보라색으로 들판을 수놓으며 가을을 불러들이고 있다.
재배단지 바로 옆이 습지원이다. 물봉선을 비롯해 산수국이 활짝이다. 특히 산수국은 일반 수국에 비해 크기가 아주 작다. 산골짜기나 돌무더기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데, 꽃은 희고 붉은 빛이 도는 하늘색이다.
길은 습지원에서 생태식물원 쪽으로 향한다. 애써 따로 가꾸지 않고, 식물들을 풀어놓은 곳이다. 뿌리를 내리면 내리는 대로, 도태되면 도태되는 대로 두었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해마다 더 번성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이듬해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생태식물원 옆에는 신갈나무 숲길이 약 1.2㎞ 길이로 나 있다.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가을이 일찍 찾아왔는지 요즘은 숲 그늘이 서늘하다.
한편 한국자생식물원에서 우리 들꽃과 데이트를 마치고 나서는 길에는 월정사를 들러볼 일이다. 한국자생식물원의 신갈나무숲길보다 더 좋은 전나무숲길이 있다. 일주문에서부터 월정사까지 1㎞쯤 명품 전나무숲길이 나 있다. 전나무들은 하나같이 하늘 향해 쭉쭉 뻗은 아름드리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된 절로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 등을 보유하고 있다. 월정사에서 위쪽으로 걸어 1시간 거리에는 상원사도 있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으로 유명하다.
월정사에서 자동차로 약 20분 떨어진 노동리에는 앵무새학교가 있는데, 만약 아이들과 함께라면 빼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이다. 앵무새의 각종 묘기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근처에는 이승복기념관과 방아다리약수가 있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진부IC→월정사 방면→월정삼거리에서 좌회전→6번국도→한국자생식물원.
▲먹거리: 평창을 대표하는 맛 하면 송어와 황태다. 송어는 이승복기념관에서 인제홍천 방면으로 넘어가는 도로변의 운두령횟집(033-332-1943)이 유명하다. 황태는 횡계 시내 황태회관(033-335-5795)을 첫손에 꼽는다. 해발 700m의 고원에서 키운 청정한우도 송어, 황태와 함께 떠오르는 평창의 맛이다. 영월의 다하누촌처럼 싸게 고기를 구입해서 자릿세를 내고 구워먹을 수 있는 대관령한우타운(033-332-0001)이 용평 읍내에 있다.
▲잠자리: 한국자생식물원 내에는 숙박시설이 없다. 아무래도 용평 쪽으로 나오는 것이 좋겠다. 용평리조트 가는 길에 있는 대관령가는길펜션(http://www.pension700.com 033-336-8169), 양떼목장 근처에는 스카이라인펜션(http://www.skylinepension.com 033-335-4568)이 있다.
▲문의: 한국자생식물원(http://www.kbotanic.co.kr) 033-332-7069, 평창군청문화관광포털(http://www.yes-pc.net), 문화관광과 033-330-27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