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득 의원 소환 여부를 두고 검찰 수뇌부와 청와대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있었다는 후문이 들려오고 있다. |
또한 이 과정에서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발생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대통령 형님을 겨냥한 검찰의 ‘은밀한’ 반란이 실패로 돌아간 내막을 들춰봤다.
검찰이 지난 3월 중순 저축은행 비리 수사에 착수하자 정치권 시선은 로비 부분으로 모아졌다. 부산저축은행을 포함한 몇몇 저축은행들이 불법대출과 퇴출저지를 위해 전·현 정권 유력 인사들에게 금품을 건넸다는 의혹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저축은행 사태에 연루된 정치인이 ‘리스트’ 형식으로 오르내렸고, 검찰 역시 이에 대한 확인 작업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가운데 야권 일각에서 이상득 의원의 이름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민주당 몇몇 의원들은 이 의원을 저축은행 사건의 ‘몸통’으로 규정하고, 여러 채널을 가동해 진위 규명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저축은행 국정조사에서도 이 의원을 증인으로 요청하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야권에서 제기했던 이 의원 관련 의혹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지난해 6월 부산저축은행이 실시한 유상증자에 포스텍과 삼성꿈장학재단이 각각 500억 원씩 투자하는 과정에서 이 의원이 ‘로비스트’ 박태규 씨 청탁을 받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첫 번째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소망교회 장로 출신인 박 씨가 부산저축은행 경영진으로부터 돈을 받고, 평소 친분이 있던 이 의원에게 로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현재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 유상증자에 대한 거액 투자가 박 씨의 ‘성공한 로비’ 때문이라고 판단, 그 배경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두 번째 의혹은 이 의원이 불법대출 등의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 ‘남다른’ 친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6월 2일 대정부질문에서 “이웅렬 코오롱 회장이 이 의원에게 삼화저축은행 구명 로비를 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검찰도 수사 과정에서 이 의원과 관련 있는 여러 첩보들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엔 앞서 언급한 두 의혹도 포함돼 있었다. 또한 피의자와 참고인들 진술에서도 수차례 이 의원 이름이 언급됐다고 한다.
이처럼 이 의원 ‘X 파일’들이 쌓이자 수사팀 사이에선 이 의원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폐지 위기에 놓였던 중수부 내에선 이 의원 내사설까지 돌았을 만큼 ‘강경론’이 주를 이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부 관계자는 “서면이든 소환이든 이 의원에 대한 소문을 확인은 해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저축은행 수사가 용두사미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 후 일선에서 이 의원 조사 요구가 더욱 거세졌다”고 귀띔했다.
검찰 수뇌부 역시 이러한 여론에 공감, 이 의원 조사에 필요한 준비 작업을 ‘극비리에’ 진행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한 검찰 고위 인사는 “이 의원 조사는 엄청난 파장을 낳는다. 정권과 정면충돌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린 것은 우선 검찰총장을 비롯한 주요 간부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극에 달한 조직 불만을 달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5월 말 이 의원과 관련된 의혹들 중 신빙성 있는 것들만 4~5개 골라 조사 항목을 작성했고, 이를 6월 초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청와대에 보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의원을 ‘참고인’ 자격으로 부를 예정이며, 제기된 의혹들을 지금 짚고 넘어가야 나중에 ‘뒤탈’이 없을 것이라고 청와대를 설득했다는 전언이다.
검찰로부터 이 의원 조사 계획을 보고받은 청와대는 ‘발칵’ 뒤집혔다. 은진수 전 감사위원,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등 이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옷을 벗은 상황에서 이 의원까지 조사를 받을 경우 여권 전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청와대 정무라인 관계자는 “확실한 ‘팩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검찰이 다소 무리하는 것처럼 보였다”면서 “(이 의원은) 마지노선이다. 이 대통령과 사실상 공동운명체 아니냐.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다”고 털어놨다.
청와대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검찰 역시 ‘주춤’했다. 중수부 관계자는 “현직 대통령 ‘형님’이다. (청와대 의중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이 의원을 조사하겠다는 뜻을 ‘마지못해’ 접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한 수사관은 “애초에 (청와대에) 보고한다는 발상 자체가 틀렸다. 밀어붙였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수사관 역시 “(이 의원이) 무슨 성역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의혹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데 적어도 물어볼 수는 있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러한 검찰 분위기에 대해 여권 핵심부는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고 있다. MB 캠프 출신의 한 여권 전직 관료는 “임기 초반이었다면 (이 의원 조사를) 검토조차 했겠느냐. 대통령 힘이 빠지니 검찰에서 진행한 것이다. 야권의 일방적 주장에 검찰이 놀아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는 검찰을 향한 이러한 청와대 기류가 ‘한상대 검찰총장-권재진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친정체제를 구축해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검찰의 쿠데타’를 사전에 막겠다는 의지로 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검찰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불신감도 엿볼 수 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정권 초부터 이 의원 이름이 거론되는 의혹들은 끊이지 않았다. 사정라인에 최측근들을 기용해 임기가 끝나기 전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한편 다른 사정기관 역시 이 의원을 조사하려고 했던 검찰 움직임에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기자로부터 관련 내용을 들은 사정기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권 후반 친인척 비리는 반드시 터지게 돼 있다. 그동안 ‘금기시’됐던 이 의원 파일들에 대해 검찰이 조사하려고 시도했다는 것 자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잘 지내다 하필 정권 말에…
이 씨가 한국을 떠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그의 주변에서는 ‘대통령 조카’로 살아가는 데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는 말들이 들리고 있다. 이 씨의 한 지인은 “정권 실세인 이상득 의원 아들이기 전에 (이 씨는)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금융 및 인수·합병 전문가다. 그런데 이 대통령 취임 후 뭘 해도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에 대해 상당히 힘들어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 씨는 평소 사석에서도 “내가 마치 범죄인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불쾌하다”며 대통령의 조카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충을 털어놨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씨의 갑작스런 출국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동안 한국에서 활동을 잘하고 있다가 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 떠나는 것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뭔가 뒤가 구려 도피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대통령 조카로서 사업하는 데 제약이 있었다면 정권 초에 외국으로 갔어야 맞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러한 세간의 ‘삐딱한’ 시선이 이 씨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겠지만 그동안 대통령 친·인척들 비리가 끊이지 않았던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로열패밀리’가 짊어져야 할 ‘몫’이라는 지적도 귀담아 들어야 할 듯하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