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26일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녀바둑 단체전 결승에서 동반 우승해 금메달을 획득한 남녀바둑대표팀. 시상식 후 태극기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두 마이너 대회를 이번에는 함께 열기로 하면서 바둑-체스-e스포츠를 비롯해 당구, 볼링, 댄스스포츠, 단거리(25m)수영, 풋살, 카바디, 킥복싱-무에타이, 크라쉬 등 9개 종목을 채택한 것. 바둑-체스-e스포츠가 한 종목, 킥복싱-무에타이가 한 종목이다. e스포츠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컴퓨터게임. 몇 가지 생소한 것들이 눈에 띈다. 풋살(futsal)은 FIFA(국제축구연맹)가 인정한 실내 축구. 한 팀이 5명이니 말하자면 미니축구다. 카바디(kabaddi)는 고대 인도의 병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우리 술래잡기 같은 것에 격투기 요소가 가미된 경기. 크라쉬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무예에서 대중적인 오락 형태의 무술로 발전한 경기.
실내 아시안게임은 2005년 태국 방콕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이후 2년 터울로 2007년에는 마카오, 2009년에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고, 올해는 페르시아 만의 작은 나라 카타르의 도하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다. 앞서 열린 세 번의 대회에서는 모두 중국이 종합 우승을 차지했고, 우리는 9위, 4위, 6위에 머물렀다.
아시안게임에 1년 앞서 열리는 실내 아시안게임은 아시안게임을 위한 전주곡 혹은 대회에 대한 관심을 끌고 분위기를 띄우자는 이벤트 같은 것인데, 바둑이 ‘정식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실내 아시안게임’에 들어간 것에 대해 바둑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대한바둑협회는 “바둑이 정식 아시안게임에는 못 들어갔지만, 그래도 이번에 처음으로 실내 아시안게임에 들어가게 된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라면서 이 정도면 절반의 성공은 된다고 내심 자부하는 분위기.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바둑팬들의 성화에 시달리던 대한바둑협회로서는 일정 부분 체면을 세운 셈이다. 하긴 아무 데도 못 끼는 것과 비교하면 절반의 성공이라는 게 틀린 얘기는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일단 한 자리를 차지했으니 이걸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가 있다. 단독 종목이 아니라 체스나 e스포츠와 연대해 들어간 것이 좀 그렇기도 하지만, 아직 체질 보강이 안 된 상태이니 일단은 그런 연대가 앞으로의 전략 수행을 위한 힘이 될 수 있다.
2013년 대회 때는 아시아 45개국에서 선수 임원 보도진 등 2400여 명이 인천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그만하면 규모도 어지간하다. 바둑을 모르는 아시아 나라들에게 바둑을 본격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바둑이 스스로의 격을 제한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정식종목이었는데, 이제 실내 아시안게임으로 들어갔으니 입지가 오히려 좁아진 것 아니냐는 우려다. 단지 실내에서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것이라면 명분도 약하다는 것. 바둑과 당구와 볼링과 댄스, 실내에서 한다고 다 똑같은 실내 경기인가 말이다. 풋살 카바디 크라쉬는 또 웬 듣보잡? 게다가 성적을 내도 별다른 혜택이 없으니 실리도 없다는 것.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는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파트너십을 발휘했었다. 한국기원은 정예 멤버를 대표선수로 선발했고, 대한바둑협회는 행정과 실무를 챙겨 3개 부문 금메달 석권이라는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질 조짐이다. 한국기원은 인천 실내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오는 12월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8만 달러의 우승 상금이 걸린, 제1회 스포츠어코드 세계 마인드게임에 이세돌 박정환 최철한 이영구 김혜민 등 남녀 프로 정예를 출전시킬 방침이고, 인천 실내 아시안게임에는 대한바둑협회가 아마 강자들 중심으로 선수단을 구성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린다.
바둑이 아시안게임에 정식종목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지난해 4월에 이미 드러났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바둑 경기도 펼쳐진다는 소식에 광저우 다음인 우리 인천 아시안게임은 어떤가, 여기는 바둑이 당연히 들어가 있겠지 확인한다는 마음으로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 건데, 없었다.
조직위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보자, 바둑을 잘 모르는 것으로 보였던 조직위 관계자는 “바둑은 빠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과 그 이유 등을 친절하고 성의 있게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실망하는 이쪽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혹시 실내 아시안게임에는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위로하며(?) 방법을 조언해 주었다.
그게 1년 반 전 일인데, 1년 반이 지나자 문제는 다른 쪽에서 불거지고 있다. 기껏 실내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고 바둑을 입성시켰는데, 손님을 불러 놓고 주인 쪽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도 좀 이상한 일이다. 웃음을 살 가능성이 높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다시 한 번 지난해 가을에 보여 주었던 파트너십을 발휘해 주기 바란다. 익숙한 길, 편한 길로 확실히 갈 수 있다면 당연히 그 길로 가야겠지만, 어차피 힘든 일이라면 이런 기회에 풋살이나 카바디, 크라쉬, 그런 생소한 친구들과 사귀어 놓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야 바둑이 최고지만, 인도 쪽 서남아시아 나라들이나 중앙아시아 나라들은 또 그들대로 카바디나 크라쉬를 알리고 싶어 할 것 아닌가. 주고받는 것이 맞다. 맞는데 이럴 때마다 가라앉아 있던 그 의문이 고개를 들곤 한다. 바둑이 과연 체육인가. 다소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런 길을 자원할 필요가 있었을까. 지금보다 더 어렵고 힘들더라도 독자적 길로 가야 했던 건 아닐까. 지금이라도 되돌릴 수는 없을까. 없겠지. 이제는 이미 좀 멀리 와 버렸으니까. 그래서 떠오르는 다른 생각 하나. 바둑도 두 가지로 하면 어떨까. 체육 동네에서 노는 바둑과 고색창연한 바둑만의 길로 가는 바둑으로.
이광구 바둑전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