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0일 열린 노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나경원 최고위원.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나경원 최고위원이 서울시장으로서 어떤가?”
기자의 질문에 한나라당 사람들의 한결같은 대답 하나는 “예쁘다”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그 이상의 수준을 넘기지 못했다. 나 최고위원의 출중한 외모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뤘지만 막상 그가 서울시장으로서 어떨 것이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말문이 막혔다. 여성 재선 의원이, 대권으로 가는 지름길인 서울시장직에 ‘겁도 없이’ 도전하는 데 대한 반응치고는 무관심을 넘어 무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사실 나 최고위원은 출중한 외모 덕분에 남들보다 빨리 출세가도를 달렸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자신은 외모에 대해 ‘손해나는 면도 있다’고 했지만 정치인 나경원으로 우뚝 서게 한 몇몇 결정적 장면은 그의 외모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2002년 서울행정법원 판사로 재직하다 39세의 나이에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의 정책특보로 영입됐다. 현직 여판사의 정치권 진입은 1995년 광주고법 판사를 사직하고 국민회의에 입당했던 추미애 의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때 이 후보를 취재했던 한 전직 기자는 이에 대해 “당시만 해도 정치권에 여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 나 최고위원의 외모는 그야말로 ‘연예인 급’이었다. 이 후보가 모임을 가질 때 참모들이 항상 그의 옆자리에 나 최고위원을 앉혔는데 분위기가 정말 화기애애해졌다. 기자들도 ‘누구냐’며 쑤군거리고 할 정도였으니까. 나이보다 어려 보여서 그런지 늙수그레한 정치인 모임에 나 최고위원은 그야말로 빛이 나는 여성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지금의 서울시장 후보의 자리에까지 오르지는 않았다. 집권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오른 데에는 그만의 경쟁력이 숨어 있다. 그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잘 활용한 대표적인 여성 정치인으로 통한다. 특히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나 최고위원이 당의 대변인직을 3년 정도 하면서 시쳇말로 정치에 눈이 떠졌다”라고 말한다.
그 스스로도 한 인터뷰에서 “(2002년 선대위 특보 시절) 그땐 사실 할 일이 없더라.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날도 있었다. 2004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지만 2006년 대변인이 되면서 비로소 정치를 알게 됐다. 대변인은 당은 물론 정치권의 모든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 직책이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외모로 대변인직에 올랐지만 지금의 서울시장 후보에까지 오른 데는 그만의 능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나 최고위원은 학습능력이 빠르고 굉장히 성실했다. 한번 맡은 일은 악착같이 해내는 독한 기질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예쁜 데다 일도 잘한다는 소리를 윗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다”라고 말했다.
나 최고위원은 이런 평가에 대해 “대변인 하는 동안 점심 저녁식사를 언론인 외의 사람들과 한 적이 없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당의 입장을 밝히는 게 내 일이었으니까. 매일을 그렇게 살았더니 윗분들이 나의 당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하게 된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 서울 곳곳의 침수사태 반복 원인을 점검하기 위해 광화문 지하관로를 살펴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그런데 나 최고위원이 대변인직에 있을 때는 후한 평가를 받았지만 최고위원으로서는 그것이 엇갈린다. 그는 대변인을 거치면서 ‘자기 정치’에 대해 목이 말랐다고 한다. 이에 대해 나 최고위원은 “난 초선에 원내대변인, 당 대변인, 서울시장 대변인 등 3년6개월 중에서 대변인만 3년을 했다.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열심히 한 정치인이다. 재선에선 내 이야기를 하는 정치인으로서 좀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뒤 그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강남송파를 저울질하다 박계동 전 의원 등의 반발에 부딪혀 중구에서 전략공천을 받아 당선돼 정치인 제2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직에 도전, 원희룡 의원을 제치며 선전했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당 전당대회에서 자력으로 선출직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나 최고위원이 ‘전국구’ 정치인으로 올라선 계기도 최고위원직 도전이 전환점이 됐다. 하지만 정작 그가 바랐던 자기 정치에 대한 평가는 다소 부정적이다.
그는 최고위원이 되면서 당의 목소리가 아닌 정치인 나경원의 목소리를 얻었지만 그 반향은 미미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나 최고위원은 시키면 일은 잘하지만 ‘시키는 일’을 잘 못 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대변인 직을 하면서 윗사람들의 명령에는 무리 없이 따라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정작 윗사람이 돼 보니 능력이 달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난해부터 최고위원직을 수행해오고 있는데 정치적 영향력이나 활동상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왜 그럴까.
그를 잘 아는 수도권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해 “그는 전문직 여성으로 17대에 처음 국회에 입문했다. 대변인 등을 거치며 경력을 잘 쌓았지만 한나라당 같은 거대 정당에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기는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다. 최고위원으로서 아이디어도 많고 발언도 많이 하지만 말발이 먹히지 않는다. 콘텐츠가 없다는 것도 결국 주변에서 그의 말을 따라 도와줘야 실현이 가능한데 그런 백업세력이 없다. 할 수 없이 주변 눈치도 보게 되게 되면서 위축된 최고위원 활동을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대변인을 3년 동안 하면서 들었던 평가와는 사뭇 다르다. 더구나 그는 지금 당 최고위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예산 21조 원을 요리하는 ‘작은 대한민국’의 수장이 되려고 한다. 지금까지 당 최고위원으로서 보여주었던 정치인 나경원의 리더십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통합과 추진력의 서울시장이 돼야 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공통된 주문이다.
친이계의 한 재선 의원은 이에 대해 “그는 메이킹을 잘하는 게 아니라 메이드 되는 데 익숙한 정치인이다. 시키면 빠른 학습능력으로 일 잘한다는 소리는 듣겠지만, 스스로 일을 추진해나가는 창조적인 리더십은 부족하다고 본다. 지난 1995년부터의 서울시장 면면을 보라. 조순 전 부총리-고건 전 총리-이명박 대통령-오세훈 전 시장으로 이어져왔다. 오 전 시장 전까지 한 분야에서 적어도 몇 십 년 동안 체계적인 리더십을 이뤄온 정치인들이 시정을 다뤘다. 그가 ‘오세훈 아바타’라고 불리는 까닭도 무상급식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측면도 있지만 이미지만 내세운 뜬구름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나경원 카드는 한나라당으로선 분명 괜찮은 도전이다. 그가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당의 늙고 극 보수 이미지를 탈색시키는 ‘세탁기’로서 훌륭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한나라당 관계자들이나 국민들이 ‘나경원은 예쁘다’는 찬사 외에 여전히 평가를 주저하는 까닭은, 그가 우리 사회와 정치를 향해 절박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 오세훈 아바타-이미지에 매몰, 정책능력 검증 안 돼 VS 여성과 장애인 정책이 정치 입문 동기였을 정도로 준비 많이 해왔다.
● 이명박-오세훈의 서울시정 옹호할 경우 정권심판 역풍 우려 솔솔 VS 무상급식 찬반투표 때 나온 25.7%의 보수층은 연속적인 서울시정 기대한다.
● 선거 초반 장애인청소년 목욕 연출 논란 등 출발 불안 VS 네거티브 공세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
● 사학법 반대 투표 앞장 서(부친 교장) VS 당론에 따랐을 뿐이다.
● 박근혜 전 대표는 뒤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있지만 나경원은 유약한 여성으로 내세울 카리스마가 없다 VS 탄탄한 토론 실력과 정책 개발 능력 계속 보여줄 것이다.
● 자위대 행사 참석 ‘거짓 해명’ 논란 VS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