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인선이 하이원 리조트배 명인전에서 8강에 오르며 첫 점수제 입단을 했다. |
프로 입단의 통과점은 100점. 그러니까 아마추어 선수가 위의 대회 중 한 곳에 출전해 한 번에, 단숨에 4강까지 치고 올라간다면 바로 프로가 되는 건데, 그건 현실적으로는 거의 무망한 일,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점수 누적을 인정한 것이고, 그건 어쩌다 한번 예선 결승에 올라갈 것이니 30점씩 4번을 얻어 입단하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새로운 길에 호기심을 발동했던 입단 지망생과 바둑계 사람들은 점수제의 내용을 알고 나서는, ‘누적점수’라고 해도 처음에는 말이 많았다. 한·중· 일의 프로-아마들과 맞붙어 5연승을 하는 것과 입단대회에 나가는 것과 어느 쪽이 어려우냐. 오히려 전자가 더 어려운 것 아니냐. 그런 회의와 궁금증이 의외로 쉽게 풀렸다.
포인트 입단 제1호가 탄생한 것. 영광스런 기록의 주인공은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 1990년생 조인선이다. 조인선은 지난 5월 제16회 LG배 통합예선 결승에 진출, 목진석 9단에게 져 본선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30점을 확보한 데 이어 9월에 열렸던 제39기 하이원 리조트배 명인전 통합예선에서 파죽의 5연승으로 본선에 오르더니 16강→8강까지 내달아 80점을 확보, 합계 110점으로 입단점을 통과했다.
조인선의 입단은 연구생으로 공부하며 입단에 도전하다가 만 18세 나이 제한에 걸려 연구생에서 나온 지 2년 만의 일. 2년 만에 성공했으니, 물론 쉽게 입단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나 대개는 몇 년씩 고생하다가 되고, 그래도 안 되는 청소년들도 수두룩한데, 그 정도면 그래도 비교적 ‘빠른 편’인데, 본인은 조용히 웃고 만다.
“글쎄요… 빠른 건지, 늦은 건지… 연구생에서 나와 아직 입단하지 못한 친구들과 비교하면 빠르다고 할 수 있겠고, 연구생으로 있으면서 입단한 친구들과 비교하면 늦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대개는 입단까지는 마음고생들을 많이 할 겁니다.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빠르고, 늦고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연구생으로 들어간 것이 2002년이거든요. 그때부터 입단대회에도 나갔습니다. 몇 번을 실패했는지 모릅니다. 열 번…? 아니, 열 번도 넘을 거예요. 심정적으로는 수없이 실패했다는 느낌이기도 하고…^^”
이번 명인전 직전 8월에 있었던 입단대회만 해도 그랬다. 조인선은 연구생에서 나온 후에도 늘 유력한 입단 후보였다. 2009년 시즌부터 이미 BC카드배, 올레배 등의 통합예선에 출전, 정예 프로기사들을 연파하며 프로 잡는 아마로 이름을 날렸다. 올해는 LG배와 이번 명인전에서 무려 8승1패, 2009년 이후 통산 13전 10승3패, 2011년만 본다면 프로를 상대로 현재 10전 9승1패, 가공할 승률 90%를 자랑하고 있다. 실력으로는 입단 이전에 벌써 프로였던 것.
그러나 입단대회는 기묘한 무대. 실력과 운세가 예측불허로 맞물리며 회전목마처럼 돌아가는 곳. 조인선은 초장에 6승1패, 이번에는 실력으로 운을 제압하는 듯이 보였으나 이후 4연패, 실력이 또다시 운세에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조인선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심정적으로 수십 번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동안 낙관파가 되어 버린 조인선은 굴하지 않고 명인전을 바라보며 하루 꼬박 12시간을 바둑판과 씨름했다.
바둑은 여덟 살 때 아버지 조재은 씨(51)의 손을 잡고 고향 공주에서 배웠다.
“공주에 바둑교실이 처음 등장할 때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바둑을 모르셨는데, 공주 바둑교실 1호 원장님이 아버님 친구 분이셨어요. 제가 어릴 때는, 지금도 그렇지만…^^, 무척 산만했던 모양이에요. 산만한 아이들이 바둑을 배우면 조금 차분해진다, 아버님이 그런 건 알고 계셨던 모양이에요.”
아버지의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재주가 보였다. 불과 2년쯤 바둑교실에서 배우고는 열 살 때인 2000년, 바둑공부를 위해, 프로기사를 꿈꾸며 서울로 올라와 또 그때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막 생긴 ‘야탑바둑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야탑’은 바둑교실이나 도장이 아니라 이를테면 ‘바둑 전문학교’였던 셈인데, 시대를 너무 앞질러 갔던 탓인지 몇 년 못가고 문을 닫았다. 조인선은 이후 연구생으로 들어갔고, 장수영 9단 도장, 양재호 9단 도장을 거쳐, 얼마 전에 허장회-양재호-최규병-유창혁 도장이 통합한 충암도장에서 입단할 때까지 갈고 닦았다.
조인선의 입단은 특히 한국기원 관계자들에게도 웃음을 선사했다. 여론을 참작한 것인지, 여론에 밀린 것인지, 아무튼 시대의 분위기를 읽고 포인트 입단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과연 반응이 어떨지, 약효가 있을지, 세간의 우려대로 기존 입단대회보다 어려운 것 아닐까, 그런 염려에서 해방시켜 주었으니까. 자, 봐라 말이지. 입단자가 나오지 않는가. 그것도 입단대회보다 더 화려하게 말이다.
조인선 입단 전에, 조인선이 수없이 고배를 들었던, 올해부터 7명을 동시에 뽑는 것으로 바뀐 입단대회 통과자 중에 김현찬(23)이 있다. 조인선과 김현찬, 그리고 또 한 사람 정찬호(25)는 평소에도 절친한 연구생 선-후배 간이면서 현재 고양시 바둑선수단 주니어 팀 멤버다. 후배 김현찬과 조인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입단했는데, 이들의 리더 격이며 “뛰어난 기재로 아주 창의적인 바둑을 둔다”고 높은 평가를 받던 정찬호는 올해 실패했다. 고양시 바둑선수단은 창단 1년 반 만에 2명이 한꺼번에 입단해 잔칫집이지만, 정찬호는 좀 그럴 것이다. 김현찬-조인선의 입단 축하연이 있던 날, 정찬호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누었다.
- 입단해야지? 해야죠. 현찬이, 인선이 어때? 앞으로 어디까지 갈까?
▲ 주변 얘기를 종합해 보면, 제 생각도 그렇지만, 현찬이는 금방 30~50권에 들어갈 거예요. 옛날부터 현찬이 기재가 출장하다는 건 다 인정했거든요.
- 인선이는?
▲ 인선이는… 폭발력이 있어요. 안정감은 현찬이가 나아보이는데, 인선이는 어느 순간 기세를 탔다 하면 겁 없이 치고나가는 힘이 있어요.
조인선은 실리파. 타개에 능하다는 평이다. 인물 좋고 예의 바른 포인트 1호 조인선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승부사는 좀 독해야 한다고 하는데, 인물과 성품이 승부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아니다. 예전엔 그랬을지 모르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 인물과 능력과 예절을 갖추고 있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광구 바둑전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