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폰서들은 투자비용 대비 홍보 효과가 높은 여자 골프 선수들을 남자 선수들보다 더 선호한다. |
#스폰서는 미녀를 좋아해
지난 1월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현 우리금융저축은행)은 골프계에 대대적인 투자를 한 기업으로 유명하다. 2006년 골프단을 창단했고, 간판을 바꿔달기 전까지 정상급 남녀선수 8명을 후원했다.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회장이 유력 정치인 및 고위공무원 접대에 소속 프로를 동원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골프단이 해체되자 여자 선수 3명은 모두 새로운 소속팀을 찾았다. 기대주인 이정민과 장하나(이상 19)는 KT에 새 둥지를 틀었고, 정혜진(24)은 우리투자증권을 메인스폰서로 삼았다. 그런데 남자 5명은 상황이 좀 다르다. 2006년 한국 프로골프 투어 상금왕 출신인 강경남(28)은 우리투자증권으로, 이태희(27)는 러시앤캐시로 각각 적을 옮겼다. 하지만 권명호(27)는 적을 구하지 못했고, 재미동포 홍창규(30)는 마땅한 메인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매니지먼트사인 스포티즌의 로고를 모자에 붙이고 있다. 간판스타였던 김대섭(30)은 군입대했다.
지난 9월 18일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 중 토마토, 제일, 에이스 등 3개사가 골프 마케팅에 공을 들였다. 제일과 에이스는 이벤트 형식의 골프대회를 여는 수준이었던 까닭에 문을 닫아도 골프계에 직접 미치는 파장이 적다.
하지만 토마토저축은행은 다르다. 2006년부터 올해까지 토마토저축은행오픈을 타이틀스폰서로 주최해왔고(2011년은 자회사인 티웨이항공오픈), 2007년에는 골프단을 창단해 여자 5명, 남자 7명 등 정상급 프로 12명을 후원해왔다. 이 은행의 골프단 관계자는 “선수들의 계약금은 연초에 이미 지급했고, 대회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는 골프단이 가입한 보험에 의해 지급되기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도 선수들이 큰 피해를 보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설령 문을 닫지 않는다고 해도, 모든 자산을 총동원해 은행정상화에 나서야 하는 만큼 당장 남녀 12명의 선수는 내년부터 새로운 메인스폰서를 구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소속선수로는 여자는 김유리, 윤슬아, 이정연, 장수화, 조윤희이고, 남자는 황인춘, 이승호, 김형태, 정지호, 맹동섭, 류현우, 윤정호이다. 모두 남녀 톱랭커로 국내 외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다.
이에 대해 골프마케팅회사인 크라우닝의 우도근 대표는 “선수별 성적이나 인지도 등 차이가 있겠지만 삼화저축은행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남자보다는 여자선수들이 보다 쉽게 메인스폰서를 구할 가능성이 크다. 현실적으로 스폰서 입장에서는 남자보다 여자선수에게 투자하는 비용이 더 적고, 또 관리와 홍보에서 더 효과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프로대회 직전에 열리는 프로암 대회의 경우 남자보다 여자대회가 더 인기가 있다고 한다. 300야드에 달하는 장타를 펑펑 날리는 남자프로들에 비해, 여자프로들은 비거리도 적당하고 레슨도 친절하게 잘 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은행 vs 코오롱
10월 한국 최고의 남녀골프대회 2개가 정면으로 충돌한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내셔널타이틀이 걸린 코오롱 한국오픈을 10월 6일부터 천안 우정힐스에서 개최하고, 여자골프는 국내 유일의 미LPGA대회인 하나은행 챔피언십이 하루 뒤인 7일부터 3일간 인천 영종도의 스카이72에서 개막한다.
보통 골프계에서 이런 일은 드물다. 미국에서도 남녀 메이저 대회가 맞물리는 것은 피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심지어 남자 메이저대회가 열릴 때는 여자는 아예 대회를 열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는 하나은행 측이 미LPGA 일정을 고려하면서 대회날짜를 잡는 것이 여의치 않자 한국오픈일 열리는 주로 기간을 선택해 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양측은 현재 급하다. 지난해 양용은의 극적인 역전우승으로 화제가 됐던 한국오픈은 하나은행 대회가 미LPGA라는 점을 고려해, 국제화로 맞불을 놓았다. 동양인 첫 미PGA 메이저챔피언으로 2연패에 나서는 양용은은 물론이고, 올해 US오픈 챔피언 로리 매킬로이, 차세대 유망주 리키 파울러를 초청했다. 여기에 해외에서 활약 중인 김경태, 노승열 등도 불러들였다. 야니 챙, 크리스티 커, 미야자토 아이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하나은행 챔피언십에 뒤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두 대회 측은 나란히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대회 전용 어플을 출시했다. 이것도 주요선수 4명의 모든 플레이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라이브 캐스트’(한국오픈)와 중계뿐 아니라 동영상 레슨, 룰과 에티켓, 게임 등도 가능한 어플(하나은행챔피언십)로 맞대결을 펼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두 대회 측은 골프기자 ‘모시기’에도 열중하고 있다. 대회가 같은 기간에 열리는 까닭에 신문과 방송 보도에서 보다 더 크게, 더 먼저 알려지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대회 장소가 영종도와 천안으로 오가기 힘들어 갤러리와 마찬가지로 취재진도 하나를 골라 봐야 할 가능성이 크다.
재미있는 것은 하나은행과 코오롱이 골프계에서 소문난 단짝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은행은 코오롱의 주 거래은행이다. 2005년에는 코오롱과 함께 한국오픈을 후원하면서 골프에 발을 내딛었고, 이듬해인 2006년부터 국내 유일의 LPGA투어 대회인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을 4년간 개최했다. ‘하나은행 챔피언십’이라는 단독스폰서로 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코오롱의 관계자는 “공교롭게 날짜가 겹쳤다. 서로에게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빅매치 위크라는 것으로 팬들의 흥미를 모으고, 파이를 키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이 아니었다면 둘 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흥행출혈(?)이 예상된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