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사령탑으로 선임된 김기태 LG 감독(왼쪽)과 김진욱 두산 감독. 사진제공=LG트윈스, 두산베어스 |
LG 신임 감독에 이어 두산 새 사령탑이 발표되자 야구계는 하나같이 ‘이변’이라고 평가했다. 하마평에 올랐던 야구인들이 대거 탈락하고,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이 서울 연고지 팀의 감독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계는 두 팀의 감독 선임 과정을 두고는 전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LG와 두산답다”는 게 이유다. <일요신문>이 두 팀 감독의 선임 배경을 집중 취재했다.
“성적 부진의 책임은 내게 있다. 올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 10월 6일 삼성과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LG 박종훈 감독은 담담히 사퇴의 변을 밝혔다. 최소 3년, 최대 5년 계약이 보장됐던 박 감독이 불과 두 시즌을 끝으로 LG 유니폼을 벗는 순간이었다.
박 감독은 누누이 자신의 사퇴를 “스스로 결정한 용퇴”라고 밝히며 “후임 감독이 팀을 잘 추슬러 꼭 좋은 성적을 내기 바란다”고 말했다.
#용퇴인가 경질인가
박 감독의 사퇴는 예견된 것이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시즌 말미 두산에 3연패하며, 구단 안팎의 경질설에 시달렸다. 하지만, 박 감독은 그때까지도 미국 플로리다 마무리 캠프를 점검하며 다음 시즌을 준비했다. 많은 야구인이 박 감독의 사퇴를 “외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결정”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LG 아무개 코치는 “감독님이 사퇴를 언급하자마자 구단이 기다렸다는 듯 ‘후임 감독을 물색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구단 고위층이 새 감독을 낙점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러니까 박 감독의 사퇴는 용퇴가 아니라 사실상 경질이었다는 뜻이다.
LG는 새 감독 후보로 선동열 전 삼성 감독을 물망에 올려놨던 것으로 알려졌다. 선 전 감독은 LG의 현안인 ‘투수진 강화’와 ‘유망주 발굴’을 동시에 이룰 최고 적임자로 꼽혔다. LG그룹 측에서도 선 전 감독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봤다. 하지만, 선 전 감독의 개인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한때 강력한 감독 후보로 떠올랐던 김성근 전 SK 감독은 후보군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LG 사정을 잘 아는 모 야구인은 “구본준 LG 구단주가 김 전 감독을 좋아하고, 2군 경기를 관전하다가 갑자기 ‘우리 팀엔 김성근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며 “만약 김 전 감독이 후보군에 포함됐다면 구단주가 낙점했을지도 몰랐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어째서 김 전 감독은 후보군에도 포함되지 못한 것일까. LG 구단의 한 관계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구단 고위층도 김 전 감독의 능력은 인정했다. 그러나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위험요소가 많다고 판단했다. 구단주의 형(구본무 LG 회장)이 구단주일 때 해임한 사람을 동생이 다시 영입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자칫 그룹 일가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김 전 감독은 최종 감독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결국, LG 새 사령탑은 김기태 수석코치로 낙점됐다. 구단 고위층이 ‘모래알 같은 LG 팀워크를 바로잡을 적임자’로 김 수석을 적임자로 지목한 까닭이었다. 여기다 박 감독도 김 수석을 차기 감독으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기태 새 감독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구단 측이 새 감독 선정과정을 철저히 함구하고, 어째서 김 감독이 LG를 맡아야 하는지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팬들이 구단 측에 성실한 설명을 요구했을 때 LG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한 일은 구단 홈페이지 게시판을 폐쇄하는 것이었다.
구단 측은 “홈페이지 관리자가 휴가를 떠나 게시판을 이른 시일 안에 복구하지 못했다”고 항변했지만, 다른 홈페이지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을 볼 때 LG의 설명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실력인가 인맥인가
“LG 감독보다 더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됐다.” 두산이 김진욱 2군 투수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발표하자 야구계는 의외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그도 그럴 게 항간에 알려졌던 감독 후보군에 김 코치의 이름은 없었다. 선 전 감독, 양상문 MBC SPORTS+ 해설위원, 김태형 배터리 코치 등이 야구계가 지목한 감독 후보들이었다. 게다가 김 코치는 1군도 아니고 2군 코치였다. 지명도에서도 앞서 열거한 후보들과 큰 차이가 났다.
그런데도 김 코치가 신임 감독으로 낙점된 건 프런트의 투표가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모 야구인의 설명이다.
“김진욱 신임 감독은 프런트 투표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두산은 과거 김인식 감독 후임으로 새 사령탑을 선출할 때도 팀장급 이상이 모여 ‘누가 감독이 되면 좋을지’ 투표를 벌였다. 당시 김경문 배터리 코치가 최다 표를 얻었고, 결국 신임감독에 선임됐다. 김진욱 새 감독도 같은 방식을 통해 프런트에 의해 추천됐고, 구단주의 재가를 받아 최종 낙점됐다.”
구단 안팎에선 구단주가 김진욱 신임 감독을 몹시 아꼈다는 말이 돈다. 중량감 있는 후보들을 제치고 김 감독이 선임된 것도 구단주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모 야구인은 “구단주뿐만 아니라 구단 사장도 김 코치를 신뢰한 것으로 안다”며 “여기다 김 감독이 단장과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구단 고위층과의 인맥이 매우 탄탄했다”고 귀띔했다.
일부에서 김 감독의 선임을 두고 “실력이 아닌 인간관계가 우선한 결정이었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 감독 선임으로 김광수 감독대행은 정들었던 두산 유니폼을 벗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은 “아직 김 감독대행의 보직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히지만, 야구계의 관행상 후배 코치가 감독이 된 이상 김 감독대행이 다른 보직을 맡는 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몇몇 야구인은 “두산이 하루라도 빨리 김 감독대행에 ‘당신은 우리 팀 감독으로 선임되기 어렵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두산이 미적대는 통에 김 감독대행이 다른 취업처를 알아볼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