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회 최초 자매 시의원 탄생…여성의원만 총 11명 ‘시민의식↑’
- 이재숙 시의원 "너무 열심인 언니 따라서 잘난 척 하지 말고 초심 가지고 뛸 것"
[일요신문] 대구에서 자매 시의원이 탄생했다. 보수지역인 대구에서 여성시의원이, 그것도 자매가 당당히 당선되면서 '우먼파워(Woman Power)'를 뿜어냈다. 그녀들이 어떻게 정치판에 뛰어들게 되었을까?.
'일요신문'이 대구시의원 '이재화(67)', '이재숙53)' 당선인을 만났다.
― 이재화 대구시의원 당선인 "저는 아버지 닮아서 그래요"
8일 오후 햇살 가득한 카페에서 그녀들을 만났다. 웃음 가득하고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다.
"우리 식구가 아버지 닮아서 다 동안이예요. 아버지 80대 때도 60대 중반으로 보일 정도였어요. 2012년도에 돌아가셨지만, 제가 의원하는 것 보고 하늘로 가셨죠."
그녀들의 아버지는 6·25참전 용사다. 하지만 아버지는 원호대상자(국가유공자)가 되길 거부하셨다. 스스로가 젊은 데 알아서 살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이다. 그 아버지의 영향을 자매들은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이재화 당선인이 대구광역시재향군인회 여성 회장을 맡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아버지, 어머니 두분 다 너무 감사하죠. 그 시절친구들 다 중학교 졸업하고 공장 다니는데, 저를 경북여상 보내주셨어요. 어려운 형편에 낮에 직장가고 밤에 학교를 다닐까 도 고민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낮에 학교 다니며 아이들 주산 가르치면서 학업을 이어갔어요. 지금도 동창회장 맡아서 학교 친구들 만나곤 해요."
이재화 당선인은 주산 4단이다. 힘든 학창시절을 이겨내려고 했던 노력들의 결과다. 또 그녀는 대구청년회의소 창립멤버이다. 당시에는 남성들만 있었지만 최초로 대구여자청년회의소를 세웠고 회장직을 맡았다. 이후 1996년 한나라 당의 스카웃으로 정치계에 입문하게 됐다.
― 이재화 대구시의원, 정치 입문 배경은
"정치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1974년 경북여상 졸업하고 모 전기공사 업체 경리로 일하다가 전기공사협회에 입사했어요. 여기서 6년간 근무하다가 1994년에 결혼했죠. 강원도에서 시집생활 하다가 대구에 다시 와서 동생과 같이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때가 45살 쯤 이었던 것 같아요."
1996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당에서 차세대 여성의원이 생겼다. 사실 당시는 정치와 상관없는 활동들만 했다. 꽃다발을 건네주는 의전활동에 불과했다. 그녀는 2002년, 2006년 총 3차례 비례대표를 받게 됐다.
"그때부터 '내가 제도권 안에 들어가야 할 일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러 문제들이 있었어요. 사실 도전해도 떨어질 선거였죠. 하지만 '좋다. 떨어지면 떨어지지 뭐 어때. 도전!' 그렇게 생각하고 뭐든지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가 홍사덕 의원님의 눈에 띄었어요. 당시 홍 의원님 여동생이 저를 보고 발탁해주신 거였어요. 그리고 2010년 무조건 공천으로 당선됐죠."
이재화 당선인은 3번의 낙선을 맛본 후 2010년 제6대, 2014년 제 7대 대구시의원에 이어 이번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서구2선거구에 무투표로 당선돼 3선 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 이재숙 대구시의원 당선인 "언니 따라 열심히 초심 가지고 뛸 것"
"언니는 편법을 모르고 곧이 곧대로 해요. 지금은 좀 달라지려고 하지만, 태생이 편법을 몰라요. 정직하고 우직하고 뭐든지 열심히죠. 또 여성이 정치를 하려면 집안이 많이 도와줘야 해요. 남편은 바쁜 가운데서도 도와주고, 대학원 졸업한 큰 애도 선거 도와줬죠. 둘째가 선거 운동 제일 잘 해줬어요. 늘 힘이 되어 준 가족들에게 감사해요."
이재숙 당선인은 웃으며 언니와 함께 겪은 삶을 이야기했다.
"언니가 맏이라서 책임감도 강하지만 사실 순해요. 정말 너무 착해요. 오죽하면 조카도 '엄마는 정치하기엔 너무 착하다'라고 했겠어요. 그런데 저는 사실 까칠해요. 막내라서 그런 것도 있고, 세대차이도 있지만, 언니는 어렵게 컸고 당시 아버지 사업도 망해서 월급탄거 다 엄마한테 봉투 채로 가져다 주는 시절을 살았으니까요. 같은 집안이지만 저와는 다르죠."
까칠한 그녀는 언니를 보며 한마디를 더 했다.
"저는 구의원했죠. 그런데 시의원은 전혀 다르죠. 이제 기회는 왔어요. 그런데 사실 언니는 무투표 당선됐는데, 저는 당당하게 경선을 치뤄서 됐어요(웃음) 그래서 더 당당하게 시민을 위해서 일 할 거예요. 구의원 할 때 동네 분들과 많이 어울리면서 '민원해결사'로 불렸어요. 동구도 서구만큼 열악한게 많아요. 기초생활 수급자도 많죠. 시의원이 되면서 범위가 더 방대해지고 할 일도 더 많아졌지만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거예요."
이재숙 당선인도 정치에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저 언니의 정치생활을 돕고자 뛰었다.
"언니가 공천에서 시의원 비례를 3번이나 받았는데, 수성구 안되고, 서구도 공천 못 받았죠. 2010년 드디어 공천을 받아서 선거를 도와줬었어요. 그때 유승민 의원님이 저에게 기회를 주셨어요. 여성전략공천 지역을 찾다가 보니 제가 눈에 띄인 거예요.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저 언니만 도우면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언니가 '해봐라. 이런 기회 잘 오는 것 아니다'라고 조언해줬어요. 언니는 공천이 저렇게 어려운데 저한텐 편하게 기회가 생긴거죠. 2~3일 고민하다가 결국 하게 됐죠."
그녀는 오로지 언니의 길을 따라왔다고 한다. 언니와 같이 여상을 나와 같은 대학교로 언니를 따라갔다.
"이제는 언니가 저한테 많이 물어봐요. 사실 일방적인 사랑은 잘 없잖아요. 요즘은 제가 나이 먹어서 대들기도 해요(웃음). 저는 그저 초선이니 최선을 다해서 소신껏 배운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살피면서 열심히 할 거예요. 또 언니가 의장직에 도전하면 도움이 되고 싶어요. 사실 저는 크게 자리 욕심이 없어요. 언니의 능력을 옆에서 다 봤으니까요. 제가 왜 열심히 하냐면 시민을 위해서라는 마음이 가장 크지만 또 하나 언니한테 누 끼치지 않고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언니가 너무 열심히 하니까요. 잘난 척 하지 말고 초심 가지고 해야죠."
인터뷰는 이렇게 끝이 나고, 그녀들은 다른 일정이 있어 급하게 자리를 나갔다. 이재화 대구시의원 당선인은 재빨리 자신의 차에 몸을 실었다. 그녀의 차량은 빨간색 모닝이다. 딱 봐도 오래된 연식이다. 어디든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차형에 빨간색을 더해 사람들의 눈에 확 띈다. 진정 생활밀착형 여성시의원의 활약상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한편 대구시의회 최초로 자매 시의원이 나온 것은 매우 긍정적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역구는 다르지만 광역의원과 기초의원으로 8년간 호흡을 맞춘 경험도 있다. 무엇보다 보수적인 대구에서 여성의원이 총 11명이 나왔다. 1대 시의원에선 여성의원이 1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11명이다. 대구의 시정이 바뀌고 시민의식도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제도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많다. 현재 의원들의 의정활동은 5분 발언 등으로 평가된다. 언론사 등의 여타 시상도 평가에 반영된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주민들과 함께 해야 될 민원들과는 별개이다. 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가 있어야 생활밀착형 시의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김은주 남경원 대구/경북 기자 ilyo07@ilyo.co.kr
-
경북도, 2025 국비예산 역대 최대 11조 8677억 원 확보
온라인 기사 ( 2024.12.10 19:29 )
-
광역철도 대경선(구미~경산) 개통…"대구·경북 하나로 잇다"
온라인 기사 ( 2024.12.13 12:01 )
-
대구시, 2년 연속 국비 8조 원대 달성
온라인 기사 ( 2024.12.10 19: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