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때 이른 경질설 하지만…
항간에서는 벌써 조광래 감독의 경질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지금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에 충격적인 0-3 대패를 당한 삿포로 대참사 이후부터 조금씩 흘러나온 얘기다. 물론 미묘한 시점이다. 시기상조라는 말도 있다. 그저 그런 약체에 불과했던 안양LG(현 FC서울)를, 전력이 한참 떨어지는 경남FC를 강한 팀으로 만들어놓은 조 감독이었다. 실패를 맛본 사령탑이 아니란 점에서 ‘지도자’로서의 조 감독의 명성은 탄탄한 편이다.
레전드들의 생각도 분명하다. 2000년대 최고의 수비수로 명성을 쌓았던 이영표도 한·일전 직후 사석에서 만났을 때 “지금처럼 세대교체가 잘 이뤄지는 경우는 없었다.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하지만 3년 뒤 브라질월드컵 때 이들은 20대 중후반이 된다. 또한 짧은 소집 기간으로 인해,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는 대표팀 상황도 분명 인정해야 한다. 한번 믿고 맡겼으면 충분히 기회를 줘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유럽파에 대한 맹신이다. 현재 대표팀에서 유럽파는 소속 팀에서 어떠한 상태에 놓여있든, 혹은 어떠한 경기 감각을 갖췄든지 다소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인상이 다분하다. 1월 카타르 아시안컵 때만 해도 유럽파 및 예비 유럽파(구자철, 지동원)의 모습은 강했다. 일본에 비록 승부차기 끝에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됐지만 희망을 봤기에 웃을 수 있었다.
이젠 아니다. 10개월 전의 경기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각종 축구 게시판에는 “대표팀이 유럽파 트레이닝센터냐”란 웃지 못할 비난 글들이 자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파 멤버들은 계속 출전하고 있고, K리그 멤버들은 그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도 “유럽파가 역할을 못하고 있는 건 맞다. 6월 가나 평가전(2-1 승) 때의 모습이 나오지 않고 있다. 걱정스럽다. 일단 대표팀의 의견을 들어보고 조언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 그렇다면 해결책 있나
어찌됐든 유럽파가 대표팀 내 핵심 전력이란 점은 분명하다. 축구 전문가들은 5할, 더 나아가 8할 이상으로 바라본다. 조금 못한다고 해서 유럽파를 죄다 제외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이들의 감각을 키워줘야 한다. 기술위원회는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상의해 별도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코치진 파견도 조심스레 모색 중이다.
국내파 비중을 올리고, 주변 조언도 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파들은 엔트리에 꾸준히 발탁되지만 유럽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전 기회가 적다. 하지만 조 감독은 레바논전 패배 직후, “기존 멤버들과 백업들의 실력 차이가 현격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솔직히 자신의 속내를 전하는 건 좋지만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선수들의 사기 저하가 우려된다. 제대로 뛰지 못하고 돌아온 선수들의 컨디션과 페이스가 좋을 리 없다. 여기에 “기대 이하다”라는 감독의 말까지 접했으니 지도자에 대한 믿음도 차차 줄어들게 된다. 장기적으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통솔력도 갖춰야 한다.
대부분 국내파 선수들은 잠깐 훈련만 하고 돌아와 정작 K리그 소속 팀으로 복귀해선 헤매는 경우가 허다했다. K리그 감독들은 이에 대해 “그렇게 뛸 기회를 주지 않을 거면 뭐하러 데려갔느냐”고 볼멘 목소리를 낸다.
대표적인 예로 전북 공격수 이동국을 꼽을 수 있다. K리그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던 이동국한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았다. 그리고 이번 중동 원정 소집 명단에 제외됐다. 빤히 예견됐던 시나리오대로였다. 조 감독에게 한 번 찍히면 아웃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해외 진출과 국내 잔류를 놓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미드필더 김정우(성남 일화)도 이동국의 경우와 마찬가지.
어려울 때 고비를 넘겨본 경험이 있고, 어린 선수들을 독려해줄 수 있는 필드의 사령관이 없다는 얘기도 있다. 현재 ‘캡틴’ 완장을 찬 박주영(아스널)조차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어 팀 전체를 신경 쓰기는 무리라는 시선도 있다.
▲ 지난 15일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레바논 원정경기에서 2 대 1로 패한 조광래호. 연합뉴스 |
아울러 열린 귀에 대한 아쉬움도 지적되는 부분이다. 조 감독은 자신의 의견과 상충되는 목소리에는 귀를 닫아 버린다. 보다 열린 사고와 시각을 가질 필요가 대두된다.
조 감독이 한국 축구의 리더로서 뚜렷한 비전과 목표를 당장 바꾸라는 게 아니다. 당장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 남아공월드컵 당시에도 허정무호는 아시아 3차 예선 내내 힘겨운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마냥, 자신의 뜻만 관철하려 한다면 조광래호의 노력은 보는 사람에 따라선 고집을 넘어 아집, 독선으로까지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