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올 시즌 FA 최대어가 이대호라고? 글쎄.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본에서 즉시 전력감으로 통할 선수는 SK 정대현뿐이다.”
올 초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의 스카우트는 이대호보다 정대현을 더 높게 평가했다. 이유는 간명했다.
“역대 한국 프로야구 출신 타자들은 전부 일본에서 고전했다. 이종범, 이승엽, 이병규, 김태균 등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투수들은 그런대로 살아남았다. 특히나 독특한 투구폼인 임창용은 일본에서도 수준급 마무리로 활동 중이다. 몸값 대비 효율성에서도 이대호보다는 정대현이 나을 것으로 판단한다.”
따지고 보면 그만의 평가는 아니었다. 한신을 제외한 몇몇 일본 프로야구단에선 일찌감치 정대현을 스카우트 대상으로 점찍었다. 그렇다면 정대현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가 일본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그나마 큰 투수이기 때문일까.
“그나마 정도가 아니다. 임창용만큼 통할 가능성이 크다.” 라쿠텐 골든이글스 관계자의 평이다.
“정대현은 이젠 일본에서도 희귀한 언더핸드 투수다. 여기에다 언더핸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구종, 즉 싱커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또한 제구가 뛰어나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봤듯이 성격도 담대하다. 마무리까진 보장하기 어려우나, 어느 팀에 가더라도 필승조 셋업맨으로선 손색이 없다.”
애초 정대현도 일본행에 관심이 있었다. 일본 진출을 위해 모 에이전트와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11월 16일 미 MLB 사무국이 정대현의 신분조회를 요청하며 일본행은 점점 뒤로 밀리고 있다.
# 일본인 투수보다 관심
정대현의 신분조회를 요청한 미 메이저리그 구단은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알려졌다.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소속의 볼티모어는 1900년 창단해 올해로 11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올 시즌까지 월드시리즈 우승 3회를 기록한 볼티모어는 칼 립켄 주니어, 프랭크 로빈슨, 짐 파머, 에디 머레이 등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전력이 하락해 지난해까지 13년 연속 5할 이하 승률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손꼽히는 약체로 전락했다. 올 시즌도 69승93패로 동부지구 꼴찌를 차지했다. 볼티모어는 내년 시즌 전력강화를 위해 최근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 출신의 댄 듀켓을 구단 실무 부회장으로 영입한 상태다.
문제는 듀켓이 아시아야구에 정통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한국야구에 밝다. 보스턴 단장 시절 듀켓은 김선우, 송승준, 조진호 등 한국 아마추어 선수를 대거 스카우트했다. LG를 거쳐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뛰었던 이상훈을 영입한 것도 듀켓의 작품이었다.
당시 듀켓은 “한국 선수들은 정신력이 뛰어나고, 자기관리에 철저해 성공 가능성이 크다”며 “아시아야구의 장점이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야구계에선 정대현의 미국 진출을 돕는 에이전트가 듀켓과 절친한 이로 알려졌다. 정대현의 볼티모어 입단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미 메이저리그 모 구단의 한국인 스카우트는 “볼티모어뿐만 아니라 내셔널리그의 구단들도 정대현을 관심 있게 보는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 스카우트는 “그간 빅리그 팀들이 일본인 투수에게만 관심을 둬왔다”며 “그러나 일본인 투수는 몸값이 비싸고, 부상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조금씩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대현은 몸값이 비싸지 않고, 부상에서 회복한 지 오래”라며 일본인 투수보다 더 큰 관심을 모으는 이유를 설명했다.
# 다년계약은 글쎄
애초 SK는 내심 4년(3+1)에 총액 20억 원 정도로 정대현을 붙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두산이 불펜 요원 정재훈과 4년간 총액 28억 원으로 계약하며 빨간불이 들어왔다. SK 핵심관계자는 “두산이 몸값 인플레를 주도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리고서 “정재훈을 협상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SK가 더는 고민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11월 17일 정대현이 SK 구단을 방문해 “예전부터 동경했던 미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SK 민경삼 단장은 “정대현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그의 미국 진출 계획을 도울 생각”이라고 말해 사실상 협상 테이블을 정리했음을 밝혔다.
그렇다면 미국 야구계가 바라보는 정대현의 예상 몸값은 어느 정도일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하나같이 “100만 달러를 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모 스카우트는 “과거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입단한 다카쓰 신고가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프로야구 정상급 구원투수로 활약하다 2004년 화이트삭스에 입단한 언더핸드 투수 다카쓰는 1+1년 계약을 맺었다. 첫해 연봉은 75만 달러에 불과했다. 만약 구단이 재계약하지 않으면 25만 달러를 바이아웃으로 더 받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성적이 좋아 구단이 다음 해 계약을 맺으면 연봉 25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다카쓰는 2년째, 계약에 성공하며 250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스카우트 대부분은 “정대현도 다카쓰처럼 다년계약을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라며 “빅리그 구단들이 다양한 옵션을 통해 계약기간을 제시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는 A 에이전트는 “정대현이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스플릿 계약”이라고 했다. 스플릿계약은 ‘메이저리그 입성 시와 마이너리그 잔류 시 조건이 다른 계약’으로, 미국 구단들은 대개 선수의 부상과 실력 저하를 우려해 스플릿 계약을 요구한다. 메이저리그에서 뛸 실력이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트리플A 수준의 연봉을 받아야 하기에 대부분의 선수는 스플릿 계약을 꺼린다. 하지만, 미국에 진출하려고 ‘울며 겨자먹기’로 스플릿계약을 수용하는 아시아 선수가 태반이다.
신분조회를 곧 미국진출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주장이 많다. A 에이전트는 “미국은 ‘탬퍼링(사전 접촉)’이 매우 엄격해 신분조회 없이는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다”며 “미국 구단의 신분조회는 ‘이제부터 정대현이란 선수를 알고 싶다’는 뜻이지, ‘정대현을 영입하겠다’는 의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자칫 정대현이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