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파격적 금융 지원, 하반기 업황 회복 기대감…3대 항공사 에어버스 A320 48조 원어치 주문
중국 민항국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4월까지 국내 항공기를 이용한 승객은 788만 명이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70%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업계에선 “2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2021년 민항산업 발전통계 공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항공업체 적자는 842억 위안(16조 원)에 달했다. 사상 최대다. 올해만 따져도 4월까지의 적자는 330억 위안(6조 3000억 원)이다. 이 추세라면 지난해보다 적자 폭이 클 것으로 점쳐진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중국 항공업계는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끝날 듯했던 코로나는 다시 기승을 부렸다. 춘제(중국의 설 명절) 이후 주요 도시에서 다시 발생했다. 당국은 이동을 억제했고, 여행 수요는 크게 줄었다. 출장은 재택으로 바뀌었고, 항공사들은 방역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3대 항공사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중국국제항공, 남방항공, 동방항공의 4월 국내선 여객 수송량은 전년 대비 80% 가까이 떨어졌다. 중국민간항공대학교 항공경제연구소 이효진 소장은 “지난 2년간 코로나19는 전국에서 골고루 발생했다. 그런데 올해엔 여객 수송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대도시에서 집중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항공사 매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인터넷상에선 한 중소형 항공사 기장의 글이 많은 화제를 모았다. 본인을 15년 차라고 밝힌 그는 3월부터 5월까지, 약 3개월간 비행 업무를 맡지 못했다고 했다. 연봉은 100만 위안(1억 9000만 원)이 넘었지만 올해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이 많아 삭감이 불가피할 것으로 걱정했다. 회사 측에선 대략 40% 삭감을 예고했다고 한다.
이 기장은 코로나19 이전 줄곧 국제선 비행을 했다. 이 때문에 한 달에 절반 이상은 집에 올 수 없었다. 하지만 비행이 없던 3개월 동안 그는 집에서만 생활했다. 딸은 그에게 물었다. “아빠, 왜 출근하지 않아요?”
그나마 이 기장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항공사 직원들 중 태반이 집에 머물며 기본급 2000위안(38만 원가량)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항공사에서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기장들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매달 대출을 받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업계에선 기장들이 오랜 시간 비행을 하지 않을 경우 업무 숙련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뒤를 잇는다.
설상가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항공유가 인상도 업계를 덮쳤다. 6월 기준 항공유 출고가는 톤당 7800위안(152만 원)가량이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7% 오른 가격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급등한 셈이다. 벌어들이는 돈은 없는데 나가는 돈만 증가하고 있으니 항공사들 부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중국 최초의 저비용 항공사(LCC) 춘추항공의 경우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폐업할 위기에 놓였다. 춘추항공의 주요 수익은 상하이의 여객과 화물에서 나온다. 그런데 올해 상하이는 코로나19로 인해 도시가 봉쇄되기까지 했다. 춘추항공은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적자를 거뒀지만 지난해엔 영업이익 108억 위안(2조 원)가량을 올리며 흑자 전환했다. 하지만 올해 1분기 매출은 2021년 같은 기간에 비해 70%가량 줄었다.
속이 타들어가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한 항공사 임원은 “방역 정책에 협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저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가서 업황이 살아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라고 했다.
항공사들은 코로나19 기간 줄어든 여객 대신 화물 수송을 늘리는 것으로 출구전략을 모색했다. ‘2021년 민항산업 발전통계 공보’에 따르면 항공 화물 운송량은 2020년 대비 20% 가까이 늘었다. 전체 매출에서 화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3.17%에서 2021년 11.37%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대도시 봉쇄로 화물마저 줄었다. 상하이공항의 상반기 여객 수는 2021년 대비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화물량은 70% 감소했다. 여객은 물론 화물까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항공사들은 자체적으로 새로운 사업 발굴에 나서기도 했다. 비어 있는 주차장을 활용해 충전기 사업을 하거나 부동산을 개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비항공 부문의 수입은 2021년 상반기에 비해 347% 증가, 전체 매출의 30%에 육박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이다. 항공 주요 매출인 여객과 화물이 살아나지 않으면 항공사들의 연쇄 도산이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 당국이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얼마 전 민항국은 재정부와 공동으로 ‘국내 여객선 운항 재정 보조금의 단계적 실시에 관한 통지’를 발표했다. 하루 여객기 운항량이 4500편을 넘지 않을 경우 모든 항공기에 대해 재정 지원을 하는 게 골자다. 보조금은 각 항공기의 인건비, 여객권 판매율 등을 따져 책정한다.
민항국 재무국의 슝옌화 국장은 보조금 상한선이 시간당 2만 4000위안(465만 원)이라고 밝혔다. 슝옌화 국장은 “여객이 많은 항공사는 수입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보조금의 필요성이 떨어진다. 지난 항공사들의 비용과 매출 등을 분석한 결과, 최대 2만 4000위안이면 여러 리스크를 상쇄할 것으로 봤다”고 했다.
국무원 상무회의에서도 항공사들에 대한 긴급 재정 지원에 나섰다. 상무회의는 “항공사들에게 1500억 위안(29조 원)가량을 긴급 대출해주기로 했다”고 했다. 상무회의는 2000억 위안(38조 7000억 원) 상당의 채권도 발행해 이를 항공사 지원에 쓰기로 했다. 또한 상무회의는 얼어붙은 국제선의 물꼬를 트는 데도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이런 구제금융에 더해 하반기를 낙관할 수 있는 신호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최근 주요 항공사들의 하루 여객편은 1만 건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 항공사들은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운항이 중단됐던 로마, 튀르키예, 벨라루스 등 국제선 운항 편수를 확보한 항공사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3대 항공사의 항공기 구매 주문 소식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중국국제항공, 남방항공, 동방항공은 에어버스 A320 292대를 주문한다고 밝혔다. 금액으로는 약 372억 달러(48조 6000억 원)다. 역대 항공기 단일 주문으로는 최고가다. 이는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 하반기 업황 회복 기대감이 맞물려 이뤄낸 결과로 풀이된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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