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2011 Mnet AsianMusic Award(MAMA)’. 지난해 마카오에 이어 2년 연속 해외에서 열리며 한류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대거 불참하며 ‘반쪽짜리 시상식’이라는 오명을 썼지만 올해는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이 참석해 대상을 나눠가졌다. 이처럼 요즘 들어 국내 방송사가 해외에서 가요 프로그램을 녹화하거나 시상식을 겸한 공연을 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국내 시청자와 해외 팬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해외 현지 방송이지만 출연 가수들만 피해자의 위치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요즘 한류의 바람이 불면서 방송국 등에서 유료로 일본 유럽 등에서 공연을 갖고 있다. 어마어마한 티켓 값을 받고 있기 때문에 돈에 합당하는 완벽한 무대가 없으면 나중에 팬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MAMA 시상식이 끝난 뒤 열린 대상 수상자 인터뷰에서 슈퍼주니어의 리더 이특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특이 웃으면서 내뱉은 이 말은 비싼 티켓 값에 걸맞은 무대를 펼치겠다는 각오로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상파 방송사 중심으로 무분별하게 추진되는 한류 콘서트를 꼬집고 있다.
올해는 한류 콘서트의 원년이라 불릴 만큼 각종 해외 공연이 쏟아졌다. 우선 MBC는 지난 3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태국 한류 콘서트’를 시작으로 지난 5월 일본 지진 피해 돕기 콘서트, 8월 ‘K팝 올스타 라이브 인 니가타’, 10월 호주 한류 콘서트 등을 열었다.
SBS 역시 지난 6월 일본 오사카에서 ‘뮤직 오브 하트 2011 파이팅 재팬’이란 콘서트를 개최한 데 이어 11월에는 일본 사이타마에서 ‘서울 도쿄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팬들을 모았다. 공영방송인 KBS도 동참했다. 지난 7월 일본에서 ‘뮤직뱅크 인 도쿄 : K팝 페스티벌’을 연 것.
지상파 3사는 “K-팝을 세계에 알리고 수익금의 일부는 공익적인 목적으로 쓴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일부 수익금이 일본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해 기부됐다. 하지만 그것이 주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지상파 3사 모두 각종 한류 콘서트를 통해 채널 인지도를 높이고 적지 않은 수익을 냈다. 문제는 방송사가 얻는 수혜는 한류 스타들의 피해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뮤직뱅크> <쇼! 음악중심> 등 간판 음악프로그램을 해외에서 녹화한다는 명목으로 한류 스타들을 해외로 데리고 나간다. 국내에서 방송되면 단 몇 시간만 투자하면 끝났을 프로그램이지만 비행기를 타는 순간 최소 일정이 1박 2일로 늘어난다. ‘시간=돈’인 내로라하는 스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한류 콘서트에 동참하는 셈.
한 가요 관계자는 “해외 녹화라고 출연료가 크게 오르는 것도 아니다. 국내 출연료에 조금 더 얹어 줄 뿐이다. 사실 음악 프로그램은 출연료가 매우 적어 5명 이상으로 구성된 그룹의 경우 지상파 음악방송 출연을 하면 의상비 등으로 인해 수입보다 지출이 크다. 하지만 홍보를 위해 지상파에 출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공연을 따라가면 시간과 노력에 비해서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방송사의 요구를 거절하기도 어렵다. 가요 매니저들은 출연 스케줄을 잡기 위해 매주 월요일에는 KBS, 화요일에는 MBC와 SBS를 찾아간다. 때문에 개인 스케줄을 이유로 해외 공연에 불참했다가는 다음 방송 스케줄을 잡기 어려워진다. 일종의 페널티를 무는 것이다. 게다가 해당 연예기획사에서 신인이 나왔을 때 방송 기회를 잡기도 어려워진다.
한류스타들의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규모 공연이 열릴 때면 통상 계약서상에 ‘공연을 전후해 ○○일 이내 다른 공연 참가 및 유치 금지’라는 문구가 삽입된다. 비슷한 성격의 공연이 연이어 개최되면 관객이 분산되기 때문. 방송사에서 갑자기 한류 콘서트 일정을 잡으면 해외 투어 등을 준비하고 있던 가수들의 일정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다수의 한류 스타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줄 세우기’식 공연이 남발되면 그들의 단독 콘서트를 찾는 한류 팬들의 발길이 줄어들게 된다.
일부 방송사는 가수들의 고유 권한인 MD에 손을 대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한 방송사가 출연진의 동의 없이 행사장에서 한류 스타의 사진이 들어간 기념품을 판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는 초상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동시에 가수들의 밥그릇을 통째로 뺏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다.
한 아이돌 그룹의 매니저는 “한 방송사는 공연 영상을 담은 DVD를 직접 팔겠다며 동의를 구하며 푼돈을 건넨 적도 있다. 향후 어떤 피해가 올지 모르겠지만 너무 기분이 나빠 거절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2011 MAMA 역시 이특의 발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MAMA는 ‘공연’ 아닌 ‘시상식’이다. 때문에 수많은 한류스타들이 별다른 출연료 없이 참가한다. 여기에는 상업적 목적을 가진 행사가 아니라는 ‘무언의 약속’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돈을 버는 공연이 아니라 한 해를 정리하며 의미를 다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최사인 CJ E&M은 표를 팔았다. 티켓의 가격은 98~198싱가포르달러(한화 약 8만 6000~17만 4000원)이었다. 약 1만 명의 관객이 운집한 것으로 미루어 계산하면 최소한 10억 원 이상의 수익을 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해외에서 공연을 열기 위해 무대 및 장비를 대여하고 한류스타들의 항공료, 숙식비 등을 지출했다고 하더라도 시상식이라는 기본 취지와는 엇박자를 낸다.
MAMA에 참석한 한 가요의 매니저는 “국내에서 열리는 시상식이었다면 이런 고가의 티켓을 팔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국내 팬들과 언론의 비판이 거셌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류스타들을 보고 싶어 하는 해외 팬들을 대상으로 잇속을 챙긴 셈이다”고 말했다.
지난 7월 한류 확산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감사패를 받은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프로듀서는 “한류 열풍도 좋지만 무분별한 해외 콘서트와 한류에 대한 잘못된 의견들이 결국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 줄까 걱정이다. 이를 위해 정부, 기업 등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잘 다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눈앞의 돈을 벌겠다는 근시안적인 생각 때문에 대한민국의 신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한류가 멍드는 일을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