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대하 설악고 감독이 육상연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왜 1인 시위를 했나?
▲여러 차례 대한육상경기연맹 홈페이지(자유게시판)에 밝혔듯이 땀 흘려 일하는 일선지도자들을 위해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올바른 행정과 정책을 펼치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무엇이 그리 큰 문제인가?
▲대한민국 육상의 현실이 암울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수들의 경기력은 땅에 떨어져 있고, 행정은 엉망이다. 대구 세계육상대회만 봐도 그렇다. ‘텐텐(10-10, 10위 이내 입상자 10명 배출)’ 목표에 크게 못 미친 최악의 경기력과 무능한 행정력을 드러냈다.
―성적이야 그렇다고 치고, 주최 측은 성공적인 대회라고 자평하지 않았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게 더 많다. 400여 명 심판과 임원진은 쉴 장소가 제대로 없어 여자 육상인들의 샤워실을 이용해 피곤한 몸을 추슬러야 했고, 탈의실이 없어 그나마 샤워실을 이용해야 했다. 심판복은 추리닝 바지 한 벌에 티 두 장이 고작이었다. 더위에 땀을 흘리고 나면 땀에 찌든 옷을 빨기 위해 세탁기 2대 앞에 모여 있어야 했고, 식사 시간이면 비좁은 공간에서 열악한 음식을 먹는 등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대구 대회 외의 문제는 무엇인가?
▲젊은 육상코치들을 생각하면 선배로서 눈물이 날 정도다. 평균 150만 원도 안 되는 박봉의 월급과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와 교육청의 눈치를 봐가며 꿈나무 선수를 육성하고 있다. 이러니 육상등록선수는 2만 명에서 7000명으로 급격히 줄었다. 대표선수들도 해외전지훈련에 나가 성과를 거두기는커녕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다 부상을 당하곤 한다. 그런데도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삼성에서 나온 임원들과 이에 결탁한 고위층이 자신들의 이득과 목적을 위해 비열한 짓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다. 적지 않은 돈을 썼는데 그 근거가 없고, 인사는 원칙 없이 자기사람만 기용한다. 또 올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악소문으로 깎아내리는 등 육상인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국가대표 전임지도자 선발과정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 않다. 이 선발과정에서 보인 대한육상연맹의 추태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육상연맹 게시판에 내가 올린 구체적인 글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육상연맹은 육상인에 대한 비하, 무능, 부정, 부패, 전횡 등을 일삼고 있다.
―1인 시위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먼저 육상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육상인들이 정신을 차려야 모든 운동의 근본인 육상이 바로 설 수 있다. 둘째, 국가대표 후보선수 전임지도자 선발과정에서 꼼수를 부린 책임자, 그리고 육상연맹 내 부패한 임원의 사퇴다. 끝으로 장기적인 육상발전의 비전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11월 25일 시위를 접었는데 목적을 달성했는가? 시위를 끝낸 이유는 무엇인가?
▲시위 14일째인 24일 지팡이에 의지해 노구를 이끌고 한 육상원로가 시위 현장을 찾아왔다. 이제 선배들이 나서겠다는 진정어린 원로선배의 말에 눈물이 흘렀다. 이어 25일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과 3시간가량 면담을 가졌다. 작금의 문제에 대해 조사를 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이제 공은 연맹으로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일단 연맹의 향후 조치를 지켜볼 생각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
“이재용·이부진이 회장 맡아달라”
현재 육상인들의 반목도 심각하다.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이 지난 15년간 육상연맹 회장사를 맡고 있는데 삼성에서 보낸 연맹 회장과 이사 등은 일부 실력자들과 결탁해 파벌을 교묘히 이용해왔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쓴소리를 하는 육상인들을 배척해왔다. 또 서울육상연맹의 경우에도 이사 중 서울체고 출신이 한 명도 없다.
작금의 육상계는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판단이 되지 않을 정도로 15년간 썩어왔다. 제도권에 있다는, 시쳇말로 잘나가는 육상인들은 삼성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일선 지도자와 선수들도 이렇다 할 비전 없이 끼리끼리 몰려다닐 뿐 육상발전에 대한 전망은 보이지가 않는다. 삼성이 하면 다르다고 했는데, 좋게 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이 육상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그래서 창피하고, 속이 상하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삼성님’께 호소한다. 계란이 속절없이 깨져도 그 흔적이라도 남지 않겠나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자랑인 삼성을 육상연맹 회장사에서 몰아내고 싶지 않다. 그럴 힘도 없고 대안도 마땅치 않다. 대신 제대로 육상연맹을 이끌고 도와줬으면 하는 솔직한 바람뿐이다.
먼저, 삼성 내부의 경쟁에서 밀려난 임원들을 육상연맹의 임원으로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세를 보냈으면 한다. 그리고 삼성에서 보낸 임원들이 육상인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지 조금이라도 파악해 줬으면 한다. 오히려 삼성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지 않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미래의 삼성을 책임질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등 삼성 오너가의 멤버가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을 맡았으면 한다. 부디 이 분들이 직접 신경 쓸 정도로 육상이 중요치 않다고 속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기왕 삼성이 육상연맹의 살림살이를 맡았다면 제대로 책임지고 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