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바둑리그에서 우승한 포스코 선수들과 김성룡 감독(가운데)이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
‘바둑인의 밤’은 2010년 ‘아마바둑인의 밤’에서 ‘아마’가 빠진 이름. 바둑인이면 바둑인이지 구태여 ‘아마’를 붙일 것 있느냐, 궁색하고 어색하다는 의견이 반영되었다. 2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룬 이날 행사에서 대바협 조건호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2012년에는 세 가지 중점사업이 있다”고 운을 뗀 후 “현재 바둑이 2013년 아시안게임 실내-무도대회에는 채택이 되었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2014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또 “아시안게임에 앞서 2012년에는 국내 전국체전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노력할 것이며 아울러 지난 17~18일 오픈 기념경기에 이어 3월 예정으로 이미 발표한 내셔널리그 공식 출범에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내셔널리그를 위해서는 현재 하나은행이 메인스폰서로 결정되어 5000만 원을 후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바협은 5000만 원을 더 조성해 1억 원의 예산으로 리그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 아마추어 바둑인 송년회 ‘2011 바둑인의 밤’. |
공로자 표창에서는 2010년 4월 창단되어 지금까지 1년반 동안 폭넓은 활동을 벌이면서 내셔널리그 창설에 결정적 모티브를 제공한 ‘고양시 바둑선수단’에게 감사패가 전달되었다.
21일 오후 한국기원 2층 대회장은 사뭇 뜨거운 분위기였다. 챔피언 결정전은 정규리그 1위인 포스코와 포스트시즌에서 올라온 하이트진로의 대결. 전날 20일의 1, 2국에서는 포스코의 강동윤 9단이 안국현 3단을, 하이트진로의 안성준 3단이 포스코의 주형욱 6단을 각각 이겨 1 대 1. 21일 제3국이 분수령이었다. 포스코의 신참 김정현 3단과 하이트진로의 주장 최철한 9단의 대결. 객관적 전력이나 관록 등에 비추어 전전 예상은 최철한의 승리가 대세였다. 실제 바둑도 중반까지는 최 9단의 낙승지세였다. 그러나 김정현은 포스코의 비밀병기답게 중반 막바지부터 괴력을 발휘하며 필패의 바둑을 역전시키는 데 성공, 점심시간 지나면서부터 2층 공개해설장을 메운 바둑팬을 열광시켰다.
최철한의 패배는 하이트진로로서는 정말 뼈아픈 1패였다. 흐름은 포스코로 넘어갔다. 이어 벌어진 4국, 포스코의 터프가이 백홍석 9단과 하이트진로의 신진정예 이원영 2단의 격돌에서 백 9단이 백을 들고 206수 만에 4집반승, 2011 한국리그의 대미를 장식하며 창단 2년째인 포스코에 우승컵을 안겼다.
우승상금 4억 원, 준우승 2억 원. 곧이어 열린 시상식은 거의 강동윤 9단의 독무대였다. 우승컵과 상금 외에 정규리그 MVP, 1지명 랭킹상(1지명 선수, 즉 주장 중에서 최고 성적을 올린 선수에게 돌아가는 상), 다승상 등을 석권한 것. 포스트 시즌 MVP는 바로 이날 거함 최철한을 격침시키면서 우승 분위기를 포스코로 끌고 온 김정현 3단이었고, 감독상도 당연히 포스코 팀의 몫. 거침없고 유쾌한 해설로 광팬도 많고 안티팬도 많은 신임 감독 김성룡 9단이 최고 명장의 영예를 안았다. 역대 최다 우승팀이나 2011년에는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한 영남일보는 나현 초단이 신인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인터뷰가 예년에 비해 재미있었다. 김성룡 감독은 “우리는 자체에서 바둑을 두어 승부 결과에 따라 오더를 정했고, 우승 상금도 균등 배분이 아니라 성적에 따라 나누기로 했다. 그게 효과가 있었던 것 같은데, 상금을 똑같이 나누기로 한 하이트진로가 결승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상금에 꼭 동기부여 역할을 했는지는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어쨌든 우리 선수들이 2012년에는 또 다 흩어질 것인데, 어느 팀으로 가든지 모두 살아남기를 바란다”는 말로 폭소를 유도했다.
김 감독의 장군에 주장 강동윤 9단이 멍군을 불렀다. “예전에도 이런 정도의 성적은 올렸는데, 팀을 잘못 만나 상을 못 받았던 것 같다…^^. 감독님에게 감사드린다. 제가 만난 감독님 중에서는 제일 열심히 하셨다는 생각이다. 우리도 흩어지겠지만, 감독님도 다른 팀에 가시더라도 계속 우승하시기 바란다…^^”
장내에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이거, 주장과 감독이 서로 내년에는 만나지 말자고 하는 것 같네.”
수훈 갑 김정현 3단은 “오늘 부담이 되지 않았느냐?”는 사회자 윤지희 3단의 질문에 “아침에 책을 들고 나오면서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 그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책은 요즘 젊은이들 사이의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였고, 무슨 주문이었느냐고 사회자가 재차 묻자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둑이다, 라고 외웠다”고 답해 박수를 받았다.
다음은 이날 시상식을 지켜본 바둑 관계자-바둑기자들의 관전평.
“프로기사들은 나이를 떠나 왜 그렇게 하나같이 표정이 없나? 바둑이 끝나도 표정만으로는 누가 이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기면 좀 웃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앞으로는 ‘표정상’ 같은 거 만드는 거 어때?”
“그거 좋네요. 이세돌 9단, 백홍석 9단은 표정이 좋잖아요. 살아 있어요. 다양하고…^^ 사진으로는 두 사람이 최고 같아요.”
“한국리그도 이제는 선발전 같은 거 하지 말고, 프로야구처럼 각 팀에서 알아서 지명하는 걸로 할 때가 된 것 같아.”
“그렇죠. 매년 선수가 바뀌는 게 좀 헷갈리기고 하고.”
“한 팀에서 적어도 한두 사람은 계속 그 팀에 있는 게 좋잖아. 상징성도 있고.”
“스폰서도 그걸 더 좋아할 겁니다.”
프로기사들은 정말 잘 웃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이날 시상식에서 김성룡, 강동윤 두 사람의 인터뷰는 재미있었다. 사회를 맡은 윤지희 3단도, 경험이 별로 많지 않을 텐데도 버벅대는 것 전혀 없이, 전문 아나운서 못지않은 실력과 외모를 과시했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