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학’ ‘소년심판’ ‘우영우’ 대박, ‘종이의 집’ ‘야차’ 쪽박…“이제는 양보다 질에 집중할 때” 쓴소리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공격적인 투자로 말미암은 밥상에 생각보다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양은 늘어났지만 퀄리티 측면에선 해외는커녕 내수용으로도 수요가 거의 없을 법한 작품들의 연이은 공개로 국내 시청자들의 비판도 거세지는 상황이다. 특히 공개 예정인 작품까지 합해 글로벌 OTT 플랫폼 가운데 가장 많은 K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작품들에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2021~2022년까지 최근 2년 사이 공개된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는 영화 9편, 드라마 12편이다. 여기에 2022~2023년 상반기까지 공개 예정으로 확정된 작품들까지 합쳐진다면 넷플릭스 안에서 K콘텐츠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양은 늘었지만 기대 이하의 퀄리티로 혹평을 받은 작품도 상당수다. 해외 시청자들이 본격적으로 K콘텐츠에 집중하기 시작한 ‘오징어 게임’을 기준으로, 그 직후 선보인 ‘고요의 바다’는 SF 불모지인 한국에서 등장한 첫 SF 드라마라는 점에서 공개 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구멍투성이란 날 선 비판이 나올 만큼 심각한 과학적 설정 오류와 개연성 없는 이야기 구조로 국내외 시청자들의 지적과 비판이 이어졌다. 이 탓에 성적 역시 이보다 앞선 시기 공개된 ‘마이네임’ ‘지옥’ 등 다른 드라마 작품들에 비해 소소한 순위를 기록한 뒤 다음 작품들에 밀려나는 모습을 보였다.
2022년 공개된 드라마는 ‘대박’과 ‘쪽박’의 차이가 더 극명했다. 먼저 1월 28일 공개된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아포칼립스와 10대 청소년들의 생사를 건 서바이벌이라는, 해외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두 장르의 결합으로 국내외에서 큰 호응을 얻어내며 ‘오징어 게임’에 필적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또 후발주자로 2월 25일 공개된 ‘소년심판’은 법정 드라마라는 장르 특수성 탓에 ‘내수용’으로 머물 것으로 예상됐지만 해외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흥행몰이가 이어지며 시청 상위권에 안착했다.
반면 2022년 가장 기대되는 작품으로 꼽혔던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은 그동안의 홍보가 무색할 만큼 흥행에 참패했다. 인기 원작인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을 리메이크한다는 점에서 공개 전부터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지만 공개 후에는 “우려대로였다”는 평이 국내외에서 쏟아질 정도였다. 큰 틀에서 각색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기대감이 적은 데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현지화’도 박해수의 베를린을 제외하면 스토리에 쉽게 녹아들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런 비판들을 상쇄할 뒷이야기가 곧 공개될 ‘파트 2’를 통해 펼쳐질 것이라는 제작진의 해명이 있었지만 전작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작품의 후속편이 시청자들에게 과연 어떤 메리트를 안겨주겠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드라마들의 대박과 쪽박이 반반이었다면 영화 쪽의 상황은 아예 잿빛이다. 2021년~2022년 공개된 9개 작품 가운데 그나마 호평을 받은 것은 한국 최초의 우주 배경 SF영화를 들고 나온 ‘승리호’(2021)와 박훈정 감독의 누아르 영화 ‘낙원의 밤’(2021) 단 두 작품뿐이었다. 2022년은 아직 남은 3개월을 두고 봐야 하겠지만, 상반기에 공개된 모든 작품이 어느 것 하나 가릴 것 없이 혹평을 떠안았다.
설경구, 박해수 주연의 ‘야차’는 시청 순위를 기준으로 한 흥행은 그럭저럭 성공했지만 화려한 라인업이 주는 홍보 효과에 비해 빈약한 스토리로 단순한 킬링타임용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밋밋한 평가를 받았다. 주원의 전역 후 첫 복귀작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카터’ 역시 액션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혹평을 받았으며 미국의 평론 리뷰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의 평론가 리뷰 지수 30%, 유저 리뷰 지수 38%를 기록해 ‘야차’보다 낮은 성적으로 밀려나야 했다.
가장 최근 공개된 ‘서울대작전’ 역시 이제까지 공개된 넷플릭스 한국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국내 시청자들의 기대치조차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1988년을 배경으로 뉴트로 카체이싱 범죄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거창한 장르를 표방하나, 시대와 부합하는가 싶으면서도 동떨어졌다고 느껴지는 유치한 대사와 설정, 스토리, 캐릭터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구석이 없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200억이라는 대규모 제작비가 무색할 만큼 어색한 CG(컴퓨터그래픽) 처리와 블랙 코미디라고 부르기엔 한참 모자란 유머 센스도 국내 시청자들이 지적한 비판 포인트였다. 이처럼 내수도 채우지 못한 K콘텐츠들의 범람이 결국 국내외 시청자들을 모두 피곤하게 만들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온다.
넷플릭스는 투자만 할 뿐, 제작에는 ‘터치’하지 않는다는 게 이제까지 넷플릭스로 향한 국내 제작진들이 꼽은 장점이었다. 그러나 최근 1~2년 사이 넷플릭스 역시 투자할 가치가 있는 작품을 이전에 비해 더 꼼꼼하게 고르며 제작 방향에도 시선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유료 시청자들이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단순히 많은 양의 콘텐츠를 보유하는 것을 넘어서 유료 구독의 가치가 있는 특정한 콘텐츠 브랜드를 갖춰야 한다는 데 모든 OTT 서비스들의 의견이 합치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OTT 서비스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OTT에서도 유의미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 콘텐츠들의 후속작 투자를 중단하거나 아예 해당 콘텐츠 보유 자체를 포기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K콘텐츠가 공개 초반 잠깐 해외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긴 하지만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투자와 제작 관문이 모두 좁아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짚었다. 작품 열 개에 투자해 한두 작품만 건져내는 것보다 애초부터 보장된 소수의 작품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선회하고 있다보니 OTT 투자를 노린 한국 작품들도 이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어 “올해 상반기 넷플릭스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낸 한국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두 개('지금 우리 학교는' '소년심판'), 그리고 케이블 방송사 ENA로부터 프리바이(Pre-buy, 작품 제작 전 제작사로부터 IP를 구매하는 것)해 한국과 중국 외 서비스 국가에 독점 배급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이 전부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투자 대비 오리지널 작품들의 반응이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편이었기에 최근 타 OTT들이 그렇듯 넷플릭스의 투자 방식도 소수 집중 투자로 바뀐다면 K콘텐츠 제작 방향도 그에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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