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재 스카이 72 골프클럽 대표는 과대 포장될까봐 염려하며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그를 만나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스카이 72를 가면 누군가가 골퍼들에게 말을 건다는 생각이 들었다. 72홀 규모의 거대 골프장이니 위용 자체로 얘깃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접근이 섬세했다. 골프장 모퉁이 여기저기서 내게 속삭이는 기분이랄까. 화장실 안쪽마다 붙여 놓은 골프 격언을 읽을 때는 이성적 상대가, 겨울철 라운드 도중 무제한으로 먹게 해주는 뜨끈한 어묵국물을 손으로 감쌀 때는 감성적 상대가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스카이 72 김영재 사장을 만나자마자 느낌의 실체에 대해 물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어머니 마음에서 서비스가 시작된다
“골프장의 커뮤니케이션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저는 고객들에게 소소한 관심이 많습니다. 스카이 72에서 처음 시작한 서비스가 200가지가 넘습니다. 지금은 웬만한 골프장들이 다 구비해뒀지만, 고객들의 신발 말리는 기계를 처음 제작해서 비치했던 곳이 우리 골프장입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아궁이 주변에서 제 신발을 따듯하게 말리는 풍경이 지금도 많이 기억납니다. 외제차를 척척 사주는 돈 많은 부모는 아니지만 손수 지은 밥을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는 마음이 제가 생각하는 서비스입니다. 엄마는 자식들이 어디가 불편한지 미리 살핍니다. 그런 소소한 관심이나 배려가 제가 고객들을 대하고 싶은 서비스 마음가짐입니다.”
“서비스 마인드를 생각할 때 잊지 못하는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작년에 스위스에 있는 큰 호텔에 출장 갔을 때였습니다. 그날 비가 왔는데, 제가 타고 간 차를 입구에서 백발의 연미복을 입은 신사가 발레파킹을 해줬습니다. 외모가 인상적이라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알고 보니까 그분이 그 호텔을 포함한 세계적인 리조트 체인의 회장이었습니다. 회장님이 직접 고객의 발레파킹을 하고 있었던 거였죠. 그날 굉장히 많을 걸 느꼈습니다. 바로 그게 진정한 서비스 마인드가 아닐까요. 우리나라도 그런 서비스를 하는 오너들이 생기면 많은 일들이 바뀔 겁니다. 저도 아직 그 수준까지 못 갔기 때문에 더 할 일이 많습니다.”
나쁜 고객은 없다
골프장이 말을 건다는 느낌은 온라인에서도 느꼈다. 스카이 72 회원이 되면 싫든 좋든 줄기차게 이메일을 받는다. 온라인 운영은 홍보의 기본수단이지만 콘텐츠는 사이트마다 천차만별이다. 스카이 72 온라인 콘텐츠는 촘촘하다.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집에 가는 고객입니다. 싫으면 싫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얘기하는 고객이 좋습니다. 가장 큰 선물을 주는 분은 불평을 전달하는 손님입니다. 우리가 골프장 중에서 전산실 근무자가 제일 많습니다. 하루에 수백 건의 글이 올라오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챙겨봅니다. 이제는 시스템이 발달해서 10분 만에 핵심내용을 파악 할 수 있는 툴이 있습니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골프장이 각 고객의 특성을 파악해서 전산에 기록해 둔다는 정도는 골퍼들도 알고 있다.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고객에 대한 기록을 할 때는 철저하게 지키는 원칙이 있습니다. 나쁜 얘기는 절대 적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일관되게 좋은 사람은 있지만 일관되게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캐디나 직원이 나쁜 기록이 적힌 고객을 대면하면 자연히 선입관을 갖고 그 손님을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서비스 마인드는 서로에게 도움이 절대 되지 않습니다. 신뢰를 갖고 소통을 하면 나쁜 고객은 없습니다.”
▲ 스카이 72 홈페이지 메인 화면. 게시판엔 하루 수백 건의 글이 올라온다. |
고객들에 대한 마인드가 이렇다면 직원들, 특히 캐디들한테는 어떤 상사인지 알고 싶었다.
“캐디분(존칭을 붙이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이후 필자가 존칭 생략)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캐디들이 한번 라운드 나갈 때 처리하는 일을 세보니까 100가지가 넘습니다. 저라면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분들인데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게다가 그분들은 직원이 아니라 일대일 개인 사업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골프장에서 고객들을 가장 최전선에서 대하는 골프장의 얼굴들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당당히 명함을 가지라고 권유합니다.”
“요즘 프로지망생 캐디들을 선발해서 낮에는 연습장에서 연습하고 저녁시간에는 일을 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저희 고객들의 80~90%가 남자라서 남자 캐디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다행히 고객들이 좋아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들과 동반하는 라운드라서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해준다고 합니다. 남자 고객들이 여자 캐디만을 선호한다는 것도 고정관념일 수 있는 거죠.”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김영재 사장은 개인 인터뷰를 사양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경영자다. 사적인 질문은 가급적 배제했지만 핸디를 알고 싶었다. 레이크 코스에서 1언더파를 친 기록이 있다고 했다. 골프실력도 CEO급이었다. 그동안 개인 인터뷰를 멀리했던 이유를 물었다.
“CEO 인터뷰는 포장이 되기 쉽습니다. 홍보하려는 인터뷰가 되는 게 싫습니다. 진심은 홍보하지 않아도 전달됩니다. 저희 골프장에서 지금까지 수십억의 돈을 좋은 일에 썼습니다. 처음에는 요식행위로 보는 분이 많았습니다. 저도 그런 걱정을 했고요. 하지만 계속 꾸준히 하니까 습관이 됐습니다. 습관이 쌓이면 진정성이 나옵니다. 상품이나 제품은 감탄을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감동을 주기는 힘듭니다. 감동은 사람만이 줄 수 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김영재 사장이 사진을 한 장 보여줬다. 저녁 무렵 무리지어 날아가는 새떼였다. 골프장 근처 섬에 갔을 때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지인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그 형, 새를 좋아해. 만나면 꼭 새 얘기를 물어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진에 그가 담겨 있었다.
SBS 아나운서 최영주
비즈니스 골프를 할 때일수록 소소한 얘기를 주고받아야 한다. 아무 말 없이 공만 치거나
일 얘기만 하는 골프는 골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