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상문이 파머스인슈어런스대회에서 미국 기자와 인터뷰하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
종전 PGA투어에서 활약한 한국 선수는 최경주, 양용은, 케빈 나(한국명 나상욱), 찰리 위(위창수), 앤서니 김(김하진) 등에 불과했다. 1, 2라운드가 끝나면 한 명도 주말 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최소한 4~5명씩은 주말 라운드에서 톱10 진입을 노리는 상황이 됐다.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LPGA뿐 아니라 PGA투어에서의 한국 강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골프 채널에서도 수시로 코리아를 거론하고 있다.
일본은 초청선수 자격으로 PGA투어에 출전 중인 이시가와 료와 이마다 류지 2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50명씩의 기자를 파견하고 있다.
골프는 경험이 매우 중시되는 종목이다. 우승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시쳇말이 적용된다. 루키, 신예들의 우승이 힘든 까닭이다. 그러나 올해 눈여겨 볼 루키들이 있다. 일본 상금왕 출신 배상문, 유러피언투어와 PGA투어 카드를 동시에 갖고 있는 노승열, Q스쿨을 간신히 통과하고 초반에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존 허 등이다. 지난해 막판 분전으로 카드를 유지한 강성훈의 경우 초반에 매우 부진하다.
배상문은 존 허와 함께 초반 3개 대회에 출전해 모두 컷오프를 통과했다. PGA투어는 컷오프 통과가 매우 어렵다. 베테랑도 보따리를 싸는 경우가 허다하다. ‘왼손의 달인’으로 통하는 필 미켈슨도 2012시즌 첫 출전 대회인 휴매나챌린지에서 컷오프 통과에 실패했다.
배상문은 소니오픈, 휴매나챌린지, 파머스인슈어런스대회 컷오프 통과로 일단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골프의 승부처인 주말라운드에서의 부진으로 톱10 진입에는 실패했다. 배상문은 3차례 Q스쿨 도전 끝에 PGA 투어에 합류했다. 일본 상금왕 출신으로 세계 랭킹이 이미 50위권에 랭크돼 WGC(월드골프챔피언십) 대회와 메이저대회 출전권을 갖고 있으나 정면 돌파를 했다.
배상문은 지난해 12월 Q스쿨 통과 후 “몇몇 대회 출전으로 PGA투어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Q스쿨이 어렵지만 이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정면으로 부딪치는 게 장기적인 안목에서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휴매나챌린지를 마친 뒤 “PGA투어는 천국이다.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최고다. 예선전 통과에 만족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다. 선배들이 우승했듯이 젊은 우리도 우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풍부한 경험과 루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탓인지 플레이가 매우 안정적이다. 그린 읽는 게 다소 미흡하지만 드라이브 비거리가 길고 아이언샷이 좋아 2012시즌 신인왕 후보로 꼽히고 있다.
대회 주최 측 초청자격과 WGC, 메이저대회 출전으로 PGA투어 카드를 유지하려는 동갑내기 김경태(26)와는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다. 김경태는 Q스쿨을 거치지 않고 PGA투어에 간간이 출전하고 있다.
유러피언투어 경험을 쌓은 노승열도 PGA투어 연착륙에 성공했다. 4차례 대회에 출전해 3번 컷오프를 통과했다. Q스쿨도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4위 성적으로 통과해 초반에 출전 프리미엄을 얻었다. 노승열의 아버지 노구현 씨는 “유러피언투어는 너무 힘들었다. 한국 음식점도 없는 데다가 대회 장소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있어 이동에 지쳐버린다. 게다가 국가 통과 때마다 오랫동안 줄을 서 기다리는 탓에 대회 전부터 고충이 많았다”면서 “일정은 조금 힘들지만 유럽투어와 PGA투어 카드를 동시에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승열의 미국 내 거주지를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데 처음에는 LA 인근 어바인을 물색했다가 이동거리를 감안해 요즘에는 텍사스 쪽을 알아보고 있다. 노승열의 개인 매니저는 누나인 노승인 씨가 맡고 있다. 부친은 “남매 사이고 음식이나 취향을 알기 때문에 장점이 더 많아 누나에게 매니저를 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배상문이나 노승열은 존 허에 비하면 큰 어려움 없이 골프에 매진한 선수들이다. 스폰서도 배상문은 캘러웨이, 노승열은 타이틀리스트다. 특히 노승열의 경우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세계 최고의 스윙코치로 꼽히는 부치 하먼의 지도를 받고 있다. 배상문, 노승열이 귀공자형 골퍼라면 존 허는 들에 핀 화초다. 스폰서는커녕 스윙코치도 없다. 지인들이 도와주는 정도다. 부친의 사업실패와 보증으로 인한 재정적인 어려움 속에도 골프를 포기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LA 인근 포레스트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레인지볼을 주워서 연습을 하다가 쫓겨난 적도 있다. 이 코스는 잔디에서 레인지볼을 때리기 때문에 훈련효과가 크다. 그러나 연습용 볼이 비싸 엄두가 안 났다. 결국 퍼블릭 한센댐으로 훈련지를 옮기고 새벽 5시에 나가 잡일을 도우며 무료로 레인지볼을 때렸다. Q스쿨을 간신히 통과하고 첫 번째 소니오픈 컷오프, 두 번째 파머스인슈어런스 공동 6위, 세번째 피닉스오픈 공동 12위의 선전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게다가 이름마저 ‘John Huh’여서 팬들이 오래 기억한다. ‘Huh’는 감탄사로 ‘뭐라고’다. 존 허가 티샷을 할 때 팬들은 “John, Huh!”하며 그를 부른다. 미국식 표현으로 벌써 컬트히어로가 됐다.
올 시즌 PGA투어가 흥미를 끄는 이유는 베테랑 맏형 최경주, 양용은, 케빈 나, 찰리 위와 신예 배상문, 노승열, 존 허 등이 신구조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LA=문상열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