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열린 제3회 BC카드배 월드바둑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이세돌 9단(왼쪽)이 구리 9단을 꺾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
이번 통합예선 참가자는 무려 313명으로 세계대회 사상 최다 기록. 한국 189명, 중국 56명, 일본 29명, 대만 12명에다가 통합 예선에 앞서 치러지는 18~19일의 아마추어 예선을 통과한 20명과 러시아 프랑스 체코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날아온 유럽 선수 7명이 합류한 숫자다.
BC카드배는 상금제 기전. 일단 본선에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면 300만 원의 대국료(상금)를 확보하게 된다. 본선 1회전의 대국료다. 1회전에서 탈락하면 300만 원을 받고 거기서 끝이고 이기면 2회전 대국료를 확보하고, 그런 식이다. 그런데 예선에서 탈락하면 한 푼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회 기간 동안의 교통비와 숙식비는 모두 자비부담. 한국 기사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외국 기사들, 특히 유럽 선수들로선 좀 살벌하다.
이게 좀 모순이긴 하다. 예선을 통과하려면 4~5연승을 해야 하는데, 첫 판에서 떨어진 사람과 3연승이나 4연승을 하다가 예선 결승에서 떨어진 사람이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예선 탈락은 똑같지만 금전적으로는 3연승, 4연승한 사람이 단칼에 떨어진 것보다 손해다. 첫 판에서 져 얼른 집에 간 선수보다 몇 판을 더 두는 동안 먹고 자는 비용이 그만큼 더 들었으니까. 그게 승부사의 운명이라면서 웃고들 있기는 하지만. “현상금 노리는 총잡이들 세계는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 본선 시드를 받은 사람은 제3회 대회에서 우승-준우승을 차지한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 두 사람 외에 한국은 2월 랭킹 2-3-4위인 박정환 최철한 원성진 9단 등 3명, 중국은 2명으로 콩지에 9단과 장웨이지에 5단, 일본도 야마시타 게이고 9단과 이야마 유타 9단 2명이, 대만은 천스위엔 9단 한 사람이 본선 시드를 받았다.
영원한 일인자 이창호 9단과 지난 제1회 대회 때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던 ‘바둑계의 기부천사’ 조한승 9단을 비롯해 강동윤 박영훈 이영구 김지석 등 랭킹 10위권 안의 전원이 신발 끈을 조이고 있다. 중국도 자국 랭킹 1~30위까지 출전하는 것을 포함해 (28위 탕웨이싱 제외) 56명이 몸을 풀고 있다는 소식이다. 3월 황사가 과연 어느 정도일지.
지난해 통합예선에서 한 명의 생존자도 없었던 일본과 대만도 “올해만큼은 다를 것”이라며 벼르고 있으며 역대 최다 인원을 동원하는 것으로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한편 몇 년 전 일본으로 건너가 관서기원을 통해 프로기사의 꿈을 이룬 홍맑은샘 초단과 윤춘호 초단이 일본 대표팀에 끼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시험바둑’으로 입단한 두 사람은 입단 후 한동안 소속 기원의 까다로운 제한규정 때문에 BC카드배 같은 국제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규제에서 벗어난 것. 한-일 양국에서 관심과 기대를 갖고 주시하는 두 사람이다.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하는 것. 지난 3회 대회까지 아마추어는 총 14명이 본선에 진출한 바 있는데, 그중에서도 2회 때 당시 아직 연구생이던 한태희 2단이 본선 64강전에서 이창호 9단을 쓰러뜨리는 이변을 연출한 것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명장면이다. 작년에는 아마추어 선수 4명이 이른바 ‘바늘구멍보다 작은’ 관문을 통과했다.
아마추어 선수들, 특히 연구생이거나 연구생 출신의 선수들이 BC카드배 같은 대회에 전력투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큰 승부의 무대라는 것 말고도 바로 ‘입단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입단대회에 나가 누구 하나 만만하지 않고, 서로의 장단점을 피차 잘 알고 있는 또래의 친구들을 상대로 7연승, 8연승하는 것보다, 상대가 프로라 할지라도 서로 잘 모르는 외국 기사와 싸우는 것이 편한 의미가 있다는 것.
예선 준결승에 진출하면 5점을 받으며, 예선결승 10점, 본선 64강 20점, 32강 40점, 16강 진출이면 60점을 얻는다. 8강에 진출하면 100점, 곧장 입단이다. 저번에 조인선 초단이 바로 이 코스를 밟아 포인트 입단 1호로 조명을 받았다.
제4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챔피언십의 총 상금 규모는 8억 3000만 원.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초읽기 3회. 3회 대회 때는 이세돌 9단이 결승에서 초대 우승자 구리 9단을 아슬아슬하게 3 대 2로 제치고 우승, 2회에 이어 2연패에 성공했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