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신문 DB,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명예회복 노리는 이동국
최 감독은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현재 상황만을 놓고 보면 단연 이동국(33·전북 현대)이라고 자부한다. K리그에서 그만 한 스트라이커를 봤는가. ‘제2의 전성기’라는 표현을 해도 좋다. 감각도 감각이지만 무엇보다 독이 잔뜩 올라 있다. 물러설 곳 없다는 각별한 마음가짐은 후배들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기에 충분하다.”
실력 외적인 부분까지 염두에 뒀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풍부한 국가대표 경험을 전수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껏 실추됐던 명예를 복권시키겠다는 의지만큼은 이동국을 따라올 선수들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중요한 순간마다 항상 눈물을 쏟았던 그였다. 심지어 ‘잘나간다’고 자신했던 클럽 무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1998프랑스월드컵 본선에 혜성같이 등장했다가 2002한일월드컵과 2006독일월드컵에서 거푸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2010남아공월드컵에서는 절치부심 승부를 걸었지만 결과는 참담하기까지 했다. 작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조광래호 시절, 잠시 발탁됐다가 심적인 고통만을 겪고 돌아온 후유증으로 근육 부상까지 겹쳐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중요한 시기마다 제 몫을 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던 이동국이기에 역설적으로 이번 쿠웨이트전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더욱이 최 감독은 전북 시절 스승과 제자 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동국을 활용할 수 있는 남다른 노하우를 갖고 있다. 처음 영입했을 때부터 변치 않는 신뢰와 믿음을 지속적으로 부여해 제자가 다시 주목을 받게끔 만들었다.
이동국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서 실패하고 안착한 성남 일화에서 쫓겨나다시피 했을 때, 직접 나를 찾아와 ‘함께 전북을 좋은 클럽으로 만들어보자’고 한 분이 최 감독님이었다. 그런 분에게 또 다른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다”고 강한 애정을 드러낸다.
더욱이 이동국에게는 기분 좋은 징크스가 하나 있다. 바로 ‘중동 킬러’로서의 면모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3차례 쿠웨이트를 만났던 이동국은 4골을 몰아쳤다. 이동국이 골 맛을 본 당시 경기들이 모두 반드시 승부를 내야 하는 월드컵 아시아 예선이나 아시안컵 등이었기에 의미도 컸다.
단체 스포츠인 축구에서 특정 선수가 주목을 받으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특별하게 각광을 받는 스타플레이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강희호에 이동국이 바로 그런 선수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다.
#쇠락 대신 ‘쇄신’ 박주영
안 풀려도 이렇게 안 풀릴 수 있을까. 작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 이후 주장 완장을 차고 태극전사들을 이끌었던 박주영(27·아스널)은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있다.
축구 선수는 결국 기록이 상황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리그 AS모나코에서 아스널로 이적한 작년 여름 이후 박주영의 존재는 거의 잊히다시피 했다. 득점이나 어시스트는 꿈도 꾸지 않는다. 출전 장면은커녕, 이제는 벤치에서도 자취를 감출 때가 잦아지며 덩달아 아스널의 아센 웽거 감독은 한국 축구의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혔다. 유럽 축구 겨울 이적시장이 오면서 갖은 이적설이 나돌았던 것도 당연했다.
최 감독이 국가대표팀 1기 명단을 짜면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도 바로 박주영의 선택 여부였다. 명단 발표 직전, 대한축구협회 황보관 기술위원장과 영국 출장을 떠나면서 박주영이 출전하길 바란다는 속내를 전했으나 결국 그라운드가 아닌, 터치라인 인근에서 몸을 푸는 장면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교체 투입을 위해 다른 선수들을 웽거 감독이 불러들이는 장면을 지켜본 최 감독은 “웽거 감독의 머릿속에는 아예 (박)주영이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면서 혀를 찼다.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박주영은 한국 축구의 요즘을 이끌어가는 기둥이다. 오랜 베테랑인 이동국과 궤를 함께 했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다. 둘은 명암이 뚜렷하다. 이동국이 가장 암울한 상황을 겪을 때와 박주영의 지금이 비슷하다.
박주영도 이동국이 가진 ‘중동 킬러’라는 닉네임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속 팀에서 부침을 겪을 때에도 태극마크만 달면 이상하리만치 좋은 기량이 나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최 감독은 기대한다. “출전시키지 않을 거라면 선수를 먼 곳에서 불러들일 필요가 없다.” 결국 박주영의 출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다. 이동국과 함께 공격 콤비를 이룬 적도 있다. 2005년 6월 8일, 쿠웨이트 원정으로 열린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라운드였다. 둘은 나란히 한 골씩 터뜨리며 4-0 대승을 일궜다.
최 감독은 ‘재활공장장’으로 불리고 있다. 기량이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은 선수들이 최강희호 체제에서 부활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손발을 맞추고, 각자의 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프로 팀과 대표팀의 환경은 크게 다르겠지만 ‘박주영 없는’ 한국 축구는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 명백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박주영에게 이번 대표팀 소집의 핵심 포인트는 역시 ‘분위기 쇄신’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