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승열 가족. 왼쪽이 누나 노승은 씨, 오른쪽이 아버지 노구현 씨. |
▲ 존 허 가족. 왼쪽이 형 허민수 씨, 가운데가 아버지 허옥식 씨. |
지난해 12월 6일 캘리포니아 라퀸타PGA 웨스트코스에서는 2012시즌 PGA 투어 카드를 확보하는 지옥의 레이스 Q스쿨이 벌어졌다. Q스쿨 사상 역대 최다 한국(계) 선수를 배출한 대회였다. 유러피언 투어 출신의 노승열은 일찌감치 투어 카드가 확보됐다. 5라운드 때 73타로 다소 주춤했지만 최종일 6라운드에서 5언더파 67타로 합계 15언더파를 작성하며 여유 있게 Q스쿨을 통과했다.
공동 3위를 마크하며 상금 3만 5000달러도 챙겼다. 골프채널에서는 당시 최연소(20세7개월2일)로 Q스쿨을 통과한 노승열과 인터뷰를 가졌을 정도로 주목했다. 일찍이 해외무대로 눈을 돌린 노승열은 영어 인터뷰가 가능하다.
반면 Q스쿨 컷오프 라인인 25위를 유지하다가 최종홀에서 세컨드 샷을 물에 빠뜨려 보기를 범하며 공동 27위로 주저앉았던 존 허와 부친 허옥식 씨, 형 허민수 씨의 표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스마트폰으로 연신 스코어를 체크하고 있던 부친에게 “네이션와이드 투어를 뛰면서 2013년 PGA 투어로 진입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라는 기자의 우문에 “네이션와이드 투어를 뛰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어디 스폰서 구해줄 데 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 걱정도 잠시. 노승열의 부친 노구현 씨가 “존 허도 Q스쿨 통과했어요. 한국 선수가 모두 4명이네요”라며 반겼다. 존 허의 부친 허옥식 씨는 그 때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잠시 후 네이션 와이드 투어를 통해 이미 2012년 PGA 투어 카드가 확보된 2명이 25위 안에 포함돼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 2명이 빠지는 관계로 공동 29위까지 함께 어부지리로 PGA 투어 카드를 확보하는 행운을 맛봤다.
노승열은 공동 3위로 Q스쿨을 통과했고, 존 허는 행운의 여신이 지켜주면서 2012년 PGA 투어 카드를 간신히 손에 쥐었다. 이미 국내에서 타이틀리스트라는 든든한 스폰서와 계약을 체결한 노승열은 여러 면에서 존 허와 비교됐다. Q스쿨 통과는 노승열에게 PGA 투어를 향한 고속도로나 다름없었다. 존 허는 Q스쿨 당시 2011년 국내 KPGA에서 활동할 때 스폰서를 해줬던 정관장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 오면서 더 이상 스폰서를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존 허는 조만간 타이틀 스폰서와 용품 스폰서를 계약할 예정이다. 우승과 함께 모든 게 달라지면서 돈 액수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평소에 노승열은 부잣집 아들과 같은 귀공자 분위기를 풍긴다. 오히려 미국에서 성장하고 미국 교육을 받은 존 허는 얼굴도 둥글둥글하고 항상 웃는 모습에서 된장 냄새가 묻어난다. 나이는 존 허가 1990년생으로 한 살 위다. 노승열은 강원도 속초에서 농협 간부 출신의 아버지 뒷바라지로 어려움 없이 골프에 매진했다. 부친은 프로급은 아니었지만 테니스선수 출신이다.
노승열은 골프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아시안-유러피언 투어를 거쳐 PGA 투어에 안착했다. 현재도 유러피언 투어 카드를 유지하고 있어 양쪽 무대를 병행한다. 스윙코치도 유명한 부치 하먼(69)이다. 아시아 선수 가운데서는 노승열이 유일하게 하먼의 지도를 받고 있다. 하먼은 한때 타이거 우즈의 스윙코치였고, 지금도 닉 와트니, 애덤 스콧, 더스틴 존슨 등 PGA 투어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의 스윙을 돌보고 있다. 노구현 씨는 하먼의 지도료를 밝히지 않았지만 시간당 수천달러에 이른다.
존 허의 스윙코치는 딱히 누구라고 말할 수가 없다. 부친 허옥식 씨는 “누가 봐주고 있어요”라며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하먼처럼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정도의 스윙코치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려울 때 이 사람 저 사람 등이 도와준 골프다. 존 허가 Q스쿨을 통과한 뒤 가장 크게 변한 게 연습장소다. LA 인근 버뱅크의 퍼블픽코스 한센댐에서 훈련을 하다가 Q스쿨 통과 후 PGA 선수 자격을 얻으면서 발렌시아 TPC 코스로 연습장소를 옮겼다. 발렌시아에 거주하는 찰리 위(위창수)도 이곳에서 훈련한다. TPC는 Tournament Players Club의 약자로 PGA 선수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미 전역에 퍼져 있는 리조트와 프라이빗 코스다. 퍼블릭과 프라이빗은 하늘과 땅 차이다.
노승열과 존 허가 올해 PGA 투어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면서 바뀐 게 또 하나 있다. 가족이 선수 개인 매니저를 전담하게 된 것이다. 노승열은 누나인 노승은 씨가 맡게 됐다. 봉급받는 매니저다. 부친은 지난 2월 기자와 만났을 때 “몇 개월 동안 매니저를 고용했는데 관리가 잘 안 돼 승열이를 잘 아는 누나에게 그 일을 맡기게 됐다”고 한다.
존 허의 형 허민수 씨도 개인매니저로 뛰어들 참이다. 원래 허민수 씨는 동생 골프 때문에 그동안 미뤘던 대학공부를 하려고 했으나 존 허가 마야코바 골프 클래식에서 우승함으로써 계획을 수정했다. 동생 일을 전담하는 게 나을 듯 싶어 대학 진학을 다시 미룬 것이다. 형제자매를 매니저로 고용하면 이점이 많다. 봉급을 주면서 선수의 상금에서 세금으로 공제하는 부분을 절세하는 효과도 본다. 성장하면서 서로를 잘 알고 있어 음식이라든지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역할로서는 제격이다.
존 허는 5경기 출전 만에 마야코바 골프 클래식 우승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번 주 세계 톱랭커 74명이 출전하는 WGC-캐딜락 챔피언십 기간에 랭킹 밖의 선수들을 위한 PGA 투어 푸에르토리코 오픈에는 출전하지 않는 여유를 보였다. 노승열은 출전했다.
Q 스쿨 때와 현재 3개월 사이에 노승열과 존 허의 신상에는 이처럼 큰 변화가 생겼다. 잡초처럼 골프 역경을 이겨낸 존 허는 미국인들이 자주 애용하는 ‘행운이 실력보다 낫다(Better lucky than Good)’라는 말을 절감하고 있다. 귀공자 노승열은 PGA 투어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다. 아직은 PGA 투어에서의 누가 더 성공했느냐의 여부를 단정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두 선수 나란히 전도양양한 코리아의 젊은 청년들이다.
LA=문상열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