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양국의 대학OB팀 참가자들이 충남 서산에 있는 서광사 법당에서 대항전을 펼치고 있다. |
이번에 한국 참가자가 적었던 것은 3월 3일에 바둑 행사가 몇 개 겹쳤던 탓으로 보인다. 대한바둑협회가 1년여 공을 들인 야심찬 기획 내셔널리그의 개막식과 개막전 1~2라운드가 그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콘퍼런스룸에서 있었고, 한국기원에서는 한국여성아마바둑연맹 주최 기우회 초청전이 열렸다.
한국여성아마바둑연맹은 현재 둘이다. 대한바둑협회 산하에 있다가 독립한 것과 여성바둑연맹이 떨어져 나가자 대한바둑협회에서 다시 만든 여성바둑연맹이 그것이다. 기우회 초청전은 전자가 주최한 것인데, 이거 매번 좀 헷갈린다…^^. 어느 한 쪽이 이름을 바꾸든지, 다시 합하든지 했으면 좋겠다.
한-일 대학바둑교류전은 의미가 큰 바둑 행사다. 대학 바둑이 바둑계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청소년 바둑과 성인 바둑의 가교역이다. 지금 우리 바둑계로선 이 가교의 구축과 유지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요즘은 바둑교실들이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 고개를 흔들곤 하지만, 그래도 ‘방과 후 바둑 수업’이 있는 학교가 꽤 많은 것이나, 바둑으로 ‘특기적성화’를 내거는 학교들도 나타나는 것을 감안하면, 또 어린이 바둑대회가 계속 생기고 있고 대회가 열리면 평균 200명 이상은 무조건 참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바둑교실의 현황과 어린이 바둑의 가능성은 별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활발한 어린이 바둑이 중고교로 가면서 갑자기 존재감이 약해진다는 데에 있다.
대학 바둑이, 누구나 인정하는 ‘입시 과열’의 해결사가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부끄럽기 짝이 없고 말도 안 되는 비인간적 입시 무한경쟁을 조금씩 고쳐가는 장기적이고 폭넓은 계몽의 일익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허황된 얘기가 아니다. 서울의대 교수진에서 쉬운 말로 “바둑 두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이미 발표했고, 앞으로 연구를 계속해 더 확실히 보여 주겠다고 하니, 입시 과열을 앓고 있는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게 이것만큼 어필할 얘기도 없다.
청년 프로기사 중에 오주성 2단이 있다. 바둑과 지능을 얘기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청년이다. 1988년생으로 어릴 때 ‘강동명인도장’을 다니다가 2002년 열네 살 때 프로가 되었다. 입단이 아주 빠른 편이어서 당연히 촉망받았는데, 입단 후 얼마 안 있어 마음이 변했다. 바둑보다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프로기사 생활을 잠시 쉬면서 공부로 돌아섰고, 서울대 물리학과에 들어갔다. 특별한 케이스일 수도 있으나, 만약 바둑 잘 두는 청소년들에게 오주성과 같은 경로를 밟게 한다면 어떨까. 꽤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교류전 선수들의 출신 학교는, 한국 팀은 고려대 동국대 동의대 명지대 서울대 연세대 외국어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 홍익대 등이고, 일본은 고베대 교토대 니혼(日本)대 도쿄대 도쿄여대 리츠메이칸대 메이지대 사관학교 오사카대 주오(中央)대 큐슈대 호세(法政)대 홋카이도대 히도츠마지대 등이다.
일본이 우리보다 대학 숫자가 많았고, 우리는 왕년의 외대 멤버들과 근자의 젊은 명지대 출신이 주축을 이루었다. 서울의 건국대 경희대 국민대 서강대 성균관대, 지방의 강원대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등의 선수들이 빠진 건 아쉽다.
일본 팀에서는 사카마키(酒卷忠雄) 미우라(三浦 浩) 요시다(吉田 晃) 나카조네(中園淸三) 선수 등이 눈에 띈다. 낯익은 얼굴들이다. 사카마키는 예전에 일본기원의 바둑잡지 <월간 기도(棋道)>의 편집장을 지냈고, 지금은 일본 최고 기전(棋戰) 기성전의 관전기를 쓰고 있다. 미우라 요시다 나카조네는 지난날 유명했던 일본 아마 바둑 4천왕의 뒤를 이어 ‘신4천왕’의 멤버로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이다. 지금은 모두 70객인데 칼은 아직 녹슬지 않아 우리 젊은 선수들에게도 잘 지지 않는다.
우리도 70대, 혹은 조금 아래의 강자들이 많은데, 일본은 그런 선수들이 여전히 출전하고 있는 것에 비해 우직 노장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조금 아쉽다. 일본이 우리보다 더 노령화된 탓인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한다’는 정신적 스팬에서는 일본이 우리보다 나은 것인지.
여자는 일본은 한 명, 우리는 김향희 이세나 김세영, 셋이었다. 일본 여자 선수와 우리 김향희 선수는 고참, 이세나와 김세영은 신참. 김향희 선수는 세계적인 바둑 명사다. 20여 년 전부터 일본 중국 동남아는 물론이고 유럽 미주 호주에 이르기까지 바둑 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날아가고 있다. 각국 바둑계에 지인도 많다. 요즘은 바둑 실력 외에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갈고닦는 중이다.
이세돌 9단의 누나인 이세나는 이대 출신의 재원으로 현재 한국기원 <월간 바둑>의 기자로 있다. 기사 외에 가끔 관전기도 쓰고 있다. 김세영은 얼마 전까지 유력한 입단후보였는데, 최근에는 진로를 약간 수정해 명지대 바둑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어쨌거나 일본은 바둑 인구의 증감이라는 면에서 우리보다 더 급한 상황이다. 대학교류전이 한-일 바둑의 가교가 되는 동시에 양국의 청소년 바둑과 성인 바둑의 가교가 되기를 바란다. 대학연맹의 문을 연 초대 신병식(서울대) 회장, 대학 바둑의 존재감을 심어 주었던 2, 3대 김원태(외국어대) 회장, 바둑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기꺼이 사재를 출연하는 현재의 강병두(한양대) 회장, 어깨가 가볍지들 않을 것 같은데, 그러나 보람 또한 그 이상일 것이다.
대회 도중 선수들은 서산 앞바다 작은 섬의 펜션에서 바둑과 한 잔을 연장하며 교류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내년엔 우리가 도쿄로 간다. 연령층과 참가자의 직종이 더 다양해지고 학교도 지방을 포함해 더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