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스볼아카데미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는 모습. 인스트럭터 코스, 리더 코스, 마스터 코스 등 교육 과정을 세분화했다. 사진출처=베이스볼아카데미 |
애초 협회는 정부가 인정하는 2급 경기지도자 자격증과는 별개로 BA 수료자에 한해 생애 첫 지도자 등록을 허용하도록 명문화했다. 기존엔 지도자 자격증만 있으면 아마추어 지도자로 등록할 수 있었다.
협회가 이 같은 강조 조항을 신설한 건 대부분 지도자가 과거 개인의 경험과 관성에 따라 학생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덧붙여 스포츠 과학과 리더십, 인성적 자질을 갖춘 검증된 지도자를 배출해 학원스포츠의 발전과 비리를 막자는 게 취지였다. 그러나 문체부의 제동으로 ‘공부하는 야구인 배출’을 목표로 했던 야구계의 의지는 한층 꺾이게 됐다.
‘공부하는 야구인을 양성하자’는 목소리는 10년 전부터 나왔다. 애초 의식 있는 야구인들은 거듭된 학원스포츠의 비리와 지도자들의 탈선을 막으려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야구계의 풍토와 일부 비리 지도자 옹호세력의 조직적인 반발이 걸림돌이었다.
제도적 장치 마련에 실패한 야구인들은 교육을 통한 야구계의 혁신을 주창했다. 프로 감독 시절부터 야구지도자 양성기관 설립을 주장했던 이광한 BA 원장이 대표적이었다. 2007년 이 원장은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장을 맡으며 전국의 아마추어 현장을 둘러봤다. 그때 이 원장은 지도자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많은 지도자가 자신이 배웠던 예전 지도 내용을 그대로 학생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여기다 인성과 자질이 부족한 지도자들이 상당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한국 야구가 발전하려면 지도자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야구지도자 보수교육과 양성소를 담당할 별도의 기관이 필요하다는 걸 주장하고 다녔다.”
이 원장의 주창에 가장 먼저 귀를 기울인 이는 KBO 유영구 전 총재와 협회 강승규 회장이었다. 2009년 말, 유 전 총재와 강 회장은 회동해 야구지도자 양성기관을 설립하자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강 회장이 기관 설립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고교야구 주말리그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강 회장은 주요 신문사가 운영하는 전국고교야구대회가 학기 중 열려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이 침해받는다고 생각했다. ‘선수’ 이전에 ‘학생’임을 강조한 강 회장은 그래서 취임 후, 고교대회를 통합하고, 주중 경기를 엄격하게 막는 ‘주말리그 제도’ 시행을 준비했다.
당시 강 회장은 “공부하는 학생선수를 배출하려면 공부하는 지도자는 필수”라며 “시대의 흐름에 걸맞은 준비된 야구지도자를 양성하는 것도 협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유 총재는 어째서 강 회장과 보조를 함께했던 것일까. 사실 야구지도자 양성기관 설립은 프로를 관장하는 KBO와는 무관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재정적 지원을 담당할 곳이 필요했다. 바로 KBO였다. 협회의 살림살이를 떠맡는 KBO는 기관 설립 시 해마다 2억 원 이상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아마추어 야구발전이 프로의 발전과도 직결된다고 믿은 까닭이었다.
지도자 프로그램 개발과 진행 그리고 장소 제공은 서울대가 담당하기로 했다. 서울대엔 한국 최고의 스포츠연구기관인 ‘스포츠과학연구소’가 자릴 잡고 있었다.
드디어 2010년 10월 27일 KBO와 대한야구협회, 서울대는 손을 맞잡고 전문 야구 지도자 육성 교육 프로그램인 ‘베이스볼아카데미’를 출범했다. 그리고 한 달 후 서울대에서 첫 강의가 열렸다. 야구인들은 숙원사업이던 BA 출범에 박수를 보냈다. 이 원장은 “이제 한국에서도 공부하는 지도자가 탄생하게 됐다”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BA는 출범 때부터 지도자 교육 프로그램을 세분화했다. 리틀, 유소년, 중고교 코치를 상대로 한 인스트럭터 코스와 지도 경력이 2년 이상인 지도자가 대상인 리더 코스, 프로야구 10년 차 이상 경력자와 전·현직 프로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마스터 코스가 그것이었다.
각 코스는 수준별 맞춤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서울대 교수진과 야구 원로, 각계 인사들이 강사로 초빙되면서 BA 교육은 참가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전 해태 포수 장채근 씨는 지난해 BA 마스터 과정을 수료했다. 처음엔 그도 BA에 부정적이었다. “프로 경력이 몇 년인데 무슨 교육이 필요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BA 과정을 밟으며 생각을 고쳤다.
“프로에서도 알지 못한 각종 이론과 코치법 그리고 세계야구의 흐름을 BA를 통해 배웠다. 무엇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 차리고 공부라는 걸 해봤다. 만약 BA가 없었다면 프로에서 배운 내용 그대로 학생선수들을 지도했을 것이다.”
▲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내야 수비 교육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베이스볼아카데미 |
하지만, BA 수료자들과 달리 외부의 시선은 차가웠다. 일부 아마추어 지도자들은 “BA가 오히려 야구계 발전을 저해한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서울지역 모 고교 감독은 BA 비판의 선두주자다. 그는 어째서 BA를 비판한 것일까.
첫 번째 비판 이유는 BA 강제 수료의 부당성이다. “현재 아마추어 지도자 대부분이 문체부가 인정하는 2급 경기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간 이 자격증만 있으면 일선 지도자가 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그러나 BA 측은 문체부가 발급하는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더라도 협회에 생애 첫 지도자 등록을 하려면 반드시 BA를 수료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BA 수료증이 정부 자격증보다 상위개념이란 뜻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
두 번째는 교육장소와 시간이다. 현재 BA는 서울대에서만 진행한다. 지방 거주자도 서울로 올라와 교육받아야 한다. 교육시간도 긴 편이다. 봄학기엔 주 5일 3시간씩 총 8주로 교육이 진행된다. 이 때문에 일선 지도자들은 “한창 바쁜 봄에 서울로 올라와 8주 동안 교육을 받으면 팀은 누가 돌보냐”며 불만을 터트려왔다.
BA 측도 이 같은 불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BA 관계자는 “인스트럭터 코스의 수강료가 교재 값을 포함해 30만 원이다. 강사들의 교육비와 프로그램 개발비, 운영비 등을 고려하면 무척 낮은 금액이다. 그나마 KBO가 해마다 2억 5000만 원을 지원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를 제외한 지방대학에 위탁교육을 맡긴다면 몇 배의 운영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KBO의 한정된 지원비로는 지방대학 위탁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BA 관계자는 또한 교육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도 총 160시간이 필요하다”며 “질 높은 교육을 위해선 120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가가 인정한 2급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데 어째서 BA 수료증이 있어야 지도자를 할 수 있느냐’고 반발하는 일선 지도자들과 ‘우리 아이들의 질 높은 야구교육을 위해선 별도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협회의 갈등은 올 초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금광옥 전 현대 수석코치가 인천 동산고 감독으로 취임하며 갈등이 표면화됐다. 올 초 금 감독은 BA를 수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자 등록이 좌절됐다. 이미 2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던 금 감독은 “모든 리그가 끝나는 가을에 BA에 등록하겠다”고 읍소했지만, 협회는 반드시 BA를 수료해야만 지도자 등록이 가능하다고 회신했다.
지도자 등록이 되지 않으면 벤치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금 감독은 좌불안석이었다. 결국 금 감독은 문체부에 “협회가 국가 자격증을 인정하지 않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문체부는 논의 끝에 금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문체부는 ‘장관이 인정한 지도자 자격증이 지도자 자격을 검증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며 ‘BA 수료증이 없어도 지도자 자격증만 있으면 지도자 등록을 받아줄 것’을 협회에 권고했다.
협회는 문체부의 권고를 받아 금 감독의 지도자 등록을 승인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앞으로 지도자 자격증만 있으면 누구나 지도자 등록이 가능하기에 BA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협회는 이사회를 거쳐 경기지도자 자격증만 있으면 지도자 등록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손볼 계획이다.
협회 이상현 사무국장은 “일단 문체부의 권고를 받아들일 생각이지만, BA는 계속 유지한다는 게 협회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미 검증된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이 사장돼선 안 된다는 게 이유다. 그래서 경기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은 이들에겐 여전히 BA를 수료하도록 강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이 국장은 “문체부를 비롯한 해당 기관들과 협의해 BA 과정을 경기지도자 과정으로 대체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승인받도록 노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만약 이 국장의 생각대로 된다면 지도자 자격증과 BA 수료증을 동시에 취득해야 하는 이중고는 사라질 전망이다.
그러나 당장 BA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BA 수료증이 없어도 지도자 자격증만 있으면 지도자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벌써 일선 지도자들은 BA는 제쳐놓고 지도자 자격증을 따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여기엔 숨은 이유가 있다.
모 중학교 감독은 “지도자 자격증 취득은 원동기 면허 취득보다 쉽다”고 귀띔했다. “프로 경력 4년 이상일 경우 별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아도 자격증이 나온다. 전혀 경력이 없으면 160시간을 이수하면 된다. 그러나 말이 ‘이수’지 등록만 하면 누구나 딸 수 있다. 교육 프로그램과 관리도 매우 부실하다.”
야구계에서 ‘정부의 지도자 자격증 관리가 얼마나 허술하면 대한야구협회가 나서 BA를 만들었겠느냐’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