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이 면세점으로 향했다. 올해 초부터 주요 면세점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에 들어간 공정위는 지난 3월 30일 일부 대기업 계열의 면세점 수수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와 동시에 롯데·신라 2개 면세점의 수수료 인하 소식도 전해졌다. 지난해 대형 유통업체들의 판매수수료 인하 수준을 감안해 이달부터 3~11%포인트를 내리기로 결정한 것. 하지만 이는 생색내기에 불과할 뿐이란 시선이 대부분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롯데·신라 면세점의 수수료는 계약서를 기준으로 대부분 14~63% 수준(알선수수료도 포함)이었다. 더욱이 해외 유명브랜드 제품은 낮은 수수료를 책정해 우대하면서도 김치·김 같은 상품을 납품하는 국내 중소기업 제품에는 60%가 넘는 수수료를 부과하는 이중 행태를 취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알선수수료를 제외하더라도 일반 백화점의 평균 수수료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수수료 체계는 면세점 개설 초기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변경되지 않은 바, 이번에 인하 조치가 이뤄질 경우 중소 납품업체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 방안에 대한 이행실태를 철저히 점검하고 금년 하반기 중 1차 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라며 “이후 매년 주기적으로 점검을 계속해 이 과정에서 일부 불공정행위의 혐의가 발견되면 추가 보완조사 등을 통해 시정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수수료 인하를 발표한 롯데·신라 면세점을 필두로 동화면세점과 SK네트웍스(워커힐)도 조만간 수수료 인하를 시행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소나기만 피해가는 행위일 뿐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현재 국내 면세점 업계는 롯데·신라가 85%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독과점 수준이라 언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것. 더욱이 정부가 추진한 공기업선진화정책으로 이들의 성장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어 우려스러운 부분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본래 면세점 업계 2위는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였다. 한국관광공사는 국산품을 주로 팔며 롯데·신라 면세점과 균형을 맞춰줬는데 2008년부터 공기업경영효율화와 민영화를 밀어붙인 결과 면세점 시장은 대기업만 남는 꼴이 돼버렸다. 이윤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관광공사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지방공항의 경우 이미 철수를 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곳이 상당수라 당장 내년부터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면세점이 사라질지도 모를 실정이다.
이후 면세점 시장은 롯데와 삼성의 맞대결 구도가 펼쳐지면서 더욱 경쟁이 치열해졌다. 특히 신영자 전 롯데쇼핑 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며 영역 확장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기업은 롯데의 AK면세점 인수를 두고 법정공방을 펼치기도 했으며 해외 유명 브랜드 유치를 두고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이 과정에서 수수료는 점점 높아져만 갔고 국내 중소기업 제품과 해외 유명 브랜드의 수수료 차이도 점점 벌어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규제를 가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롯데면세점은 오는 5월 12일부터 3개월 동안 여수엑스포가 열리는 박람회장에 입점해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여수세계박람회 조직위원회는 “비록 한정된 기간이나 출국예정인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면세점 이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관광객들의 편의와 지역발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결실”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이 주최하는 행사도 아닌데 대기업이 입점해 면세점 운영을 하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관광공사가 나간 자리는 결국 또 다른 면세점으로 채워질 텐데 대기업이 아니고서는 사업을 확장시킬 여유가 있는 곳이 없다. 면세점 사업도 규모가 중요한데 최근 몇 년간 롯데와 신라가 치열한 경쟁을 해온 것으로 보면 남는 땅을 지켜만 보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면서 “경제활동에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도 시장논리에 어긋나겠지만 보다 강력한 조치가 없다면 수수료 문제는 언제든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