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꽁초 넣고 밸런스게임 참가, 노후한 맨홀 찍어 포인트 받기…착한 행동 유도 해외서 주목
최근 일본 도쿄 번화가에 등장한 투표형 흡연소의 질문이다. 마치 게임을 하듯 담배꽁초로 투표함으로써 무단투기도 방지하고, 환경미화로 이어지게 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매체 ‘지지통신’에 따르면 “이처럼 사회문제 해결에 게임 요소를 접목시키려는 참신한 시도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고 한다.
#담배꽁초 투기하지 말고 투표
도쿄 시부야의 뒷골목, 컬러풀한 재떨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각각의 재떨이마다 질문이 기재돼 있는데, 가령 맨 오른쪽에는 “만약 돈을 받는다면 어느 쪽이 좋겠느냐”라는 질문이다. A는 “10년 후 10억 엔”, B는 “1개월 후 1억 엔”으로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면 된다. 답변은 투표용지가 아니라 담배꽁초를 넣는 구조. 이른바 ‘투표형 흡연소’다.
“나중에 10억 엔을 받는 게 좋지 않아?” “응, 잊어갈 무렵 짠하고 받는 게 좋지” 흡연소 앞 젊은이들이 담배를 피우며 짧게 담소를 나눈다. 이들은 “시부야에서 놀 때면 곧잘 이곳으로 와 흡연을 한다”고 밝혔다. 선택지가 왠지 즐거워 ‘여기에 버리자’라는 마음이 든다고 한다.
‘투표형 흡연소’는 두 가지 예시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밸런스 게임을 재떨이에 적어 놓았다. 행동경제학에 근거해 흡연자가 능동적으로 담배꽁초를 버리고 싶게끔 유도하는 것. 마치 게임처럼 즐기면서 담배꽁초 무단투기를 막는 걸 목적으로 한다. 흡연소를 운영하는 현지기업 ‘코소도’가 기획한 것으로, 2022년 5월 시부야에 처음 등장했다.
코소도 측에 의하면 시부야 센터가야 주변은 주말에 약 600개의 담배꽁초가 땅에 버려지곤 했다. 그런데 “투표형 흡연소를 설치했더니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동시에 길거리에 뒹구는 담배꽁초가 든 빈 캔도 크게 줄어들었다.
#맨홀 촬영? 무엇을 위한 게임일까
최근엔 맨홀을 발견하면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부쩍 볼 수 있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맨홀 뚜껑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 ‘지지통신’은 “노후화된 인프라 보수 점검에도 게임 요소를 접목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며 모바일게임 앱 ‘텍콘(TEKKON)’을 소개했다.
텍콘은 2022년 10월 IT기업 ‘홀어스파운데이션’이 선보인 서비스다. 사용자가 맨홀 뚜껑이나 전신주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균열 등이 없는지 체크해 포인트를 준다. 이렇게 얻은 포인트는 게임 내 캐릭터 육성에 사용하거나 암호화폐(가상자산)와 교환이 가능하다.
맨홀 뚜껑의 내구 연수는 차도가 15년, 보도가 30년 정도다. 노후화된 맨홀 뚜껑은 미끄러짐 사고의 원인이 되며, 뚜껑이 열려 자칫 추락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커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본에는 1600만 개의 맨홀이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20%가 넘는 350만 개 이상이 노후화됐거나 불량일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어디가 불량이고 노후화됐는지 알기 힘들다는 점이다. 지자체가 일일이 점검하려면 수고가 많이 들 뿐더러 인건비도 든다. 그래서 고안해낸 것이 ‘시민의 눈’을 보수 점검에 활용하는 방법이다. 2021년 8월 ‘불량 맨홀’을 찾는 시범 이벤트가 도쿄 시부야구에서 개최됐다. 불과 사흘 만에 약 1만 개의 맨홀 뚜껑 사진이 수집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대처는 지방으로도 확대됐다. 2022년 3월 시즈오카현 미시마시에서 열린 이벤트에서는 약 400명이 참가해 이틀 동안 1만여 개의 정보가 모였다. 시 하수도과 담당자에 의하면 “촬영 방법이나 노후화 판단 기준에 개인차가 있긴 했지만, 통상 1년에 걸쳐 실시하는 조사와 맞먹는 규모였다”고 한다. 담당자는 “시민과 함께 인프라를 지켜나갈 새로운 수단이 생겨났다”며 “앞으로 축적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면 정확도가 높아지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게임 요소를 사회공헌에 접목시킨 사례는 또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피리카(ピリカ)’는 주운 쓰레기를 자랑하는 소셜미디어(SNS)다. 예를 들어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사진을 찍는다. 이후 앱에 투고하면 쓰레기를 주운 장소에 ‘반짝이’ 아이콘이 찍힌다. 다른 사용자는 ‘좋아요’가 아닌 ‘고마워요’를 눌러 공감을 표시하거나 “수고했다” 등의 응원 댓글을 달 수도 있다. 앱 개발자인 고와미 후지오 씨는 “쓰레기 유출량보다 회수량이 많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해외에서 주목받는 ‘게이미피케이션’
문제 해결에 게임적 요소를 적용하는 일을 ‘게이미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 게임(Game)과 접미사 화(-fication)를 합친 신조어로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미와 보상, 경쟁 등의 요소를 적용함으로써 적극적인 참여를 유발한다. 특히 미국 대선 유세활동에서 마케팅적으로 활용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 리쓰메이칸대 영상학부 이노우에 아키토 교수는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성취감을 주는 등 의욕을 향상시키는 다양한 장치가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사람들은 재미를 느끼면 어떠한 활동도 기꺼이 하기 때문에 참여율, 행동률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심리를 악용하는 안타까운 사건·사고도 발생하고 있다. 2017년 인도에서는 푸른고래 게임, 일명 블루웨일(Blue Whale·대왕고래) 챌린지에 심취한 청소년들이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관련 게임은 SNS를 통해 진행자가 50일간 과제를 부여한다. 처음에는 ‘새벽에 일어나기’처럼 단순한 것으로 시작되지만, ‘팔에 상처내기’ 등 점차 과격해지고, 마지막에는 ‘고층에서 뛰어내리기’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끄는 구성이다. 러시아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도 이외의 국가에서도 사례가 보고됐다.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서도 목을 조르는 등의 방법으로 숨을 참는 게임 ‘기절 챌린지’가 유행, 2021년 이탈리아에서 10세 소녀가 사망하기도 했다. 안타까운 사태를 피할 방법은 없을까. 이노우에 교수는 “게임 참가자는 단계적으로 게임 세계관에 빠져들게 된다”며 “주위 사람들이 눈치채고 케어할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 구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참가자들 또한 최적화된 게임(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마트폰 위치 정보를 이용하는 게임 ‘포켓몬고’ 플레이어가 출입금지구역에 무단 침입하거나 운전 중 게임을 즐기다 교통 사망사고를 낸 예시를 들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사회공헌 활동에 게임 요소를 적용하기가 한층 쉬워졌다. 이노우에 교수는 “위치 정보뿐만 아니라 걸음 수와 칼로리 등 일상생활의 모든 수치가 가시화됨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게임이 속속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게이미피케이션이 산업과 비즈니스에서 존재감을 과시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예측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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