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회 의원과 강기정 의원. |
18대 국회 역시 ‘폭력’과 ‘날치기’가 난무했던 4년으로 기억된다. 이에 연루됐던 현역 의원들은 19대 총선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 2008년 12월 18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려는 것에 반발해 회의장 문을 해머로 부쉈던 민주통합당 문학진 의원(경기 하남), 이듬해 1월 5일 국회 사무총장실에 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탁자 위로 ‘공중부양’했던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경남 사천) 등 ‘폭력 의원’들은 19대 총선에서 쓴잔을 마셨다. 반면 올 3월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외신에까지 이름을 알린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은 전남 순천·곡성에서 살아남았다.
18대 국회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 예산안 날치기 처리로 국민들을 짜증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특히 2010년 12월,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끼리 주먹질하는 집단 난투극이 발생했는데 결과는 엇갈렸다. 당시 국회 폭력 사태와 관련해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과 민주당 강기정 의원 모두 불구속 기소됐다. ‘돌주먹’을 자랑했던 김성회 의원은 경기 화성갑 공천에 탈락하면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지만 피를 흘리며 쓰러졌던 강기정 의원은 광주 북구갑에서 살아남았다.
미디어법 날치기를 주도한 새누리당 의원들 역시 전멸했다. 일부 시민단체에 의해 ‘언론 5적’으로 규정됐던 김형오(부산 영도) 안상수(경기 의왕·과천) 고흥길(경기 성남 분당갑) 나경원(서울 중구) 의원은 진통 끝에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이윤성 의원은 탈당 후 인천 남동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득표율 12.3%). 미디어법의 부수 법안인 미디어렙법을 밀실에서 통과시킨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재희 위원장(경기 광명을) 역시 낙선했다.
‘막말 논란’에 휩싸였던 의원들의 성적표도 엇갈리고 있다. 2010년 11월 30일, 연평도를 방문해 불에 탄 보온병을 들고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이야기 한 안상수 의원은 공천에서 떨어져 5선을 했던 경기 의왕·과천시를 민주통합당에게 내주고 말았다. 2011년 8월 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종료 직후 “25.7% 투표율을 얻은 주민투표는 사실상 오세훈 서울시장이 승리했다”고 발언하며 ‘사실상’ 시리즈를 유행시킨 홍준표 전 대표도 서울 동대문을에서 낙선하면서 30년 정치 인생을 마감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100단어 공주에 베이비토크 수준’이라 비판했던 전여옥 의원은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갑 낙천 이후 국민생각으로 당적을 옮겨 비례대표 1번을 꿰찼지만 정당지지율이 0.7%에 그쳐 당 해산과 함께 여의도를 떠나야 하는 처지가 됐다. 2010년 재보궐 선거 때 “대통령 집구석 하는 짓거리가 이런 것이다. 형은 돈 훔쳐 먹고, 마누라도 돈 훔쳐 먹으려고 별짓 다 하고 있다”는 발언을 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민주통합당 최종원 의원도 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 공천을 받지 못했다.
▲ 2009년 11월 미디어법 재개정 촉구 집회. 유장훈 기자 |
▲ 2010년 12월 예산안 날치기 처리. 유장훈 기자 |
▲ 2011년 11월 한미FTA 비준안 처리에 반발한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 투척. 사진제공=부산일보 |
‘열혈파’들의 최후도 좋지 못했다. 2008년 4월 법원의 명령을 어기고 신념에 따라 전교조 명단을 온라인에 공개한 새누리당 조전혁 의원은 인천 남동을 낙천에 즉각 승복했지만 같은 날 김무성 의원의 ‘백의종군’ 선언에 묻히고 말았고, 창조한국당에서 일당백으로 활약했던 유원일 의원(비례대표)은 올해 1월 의원직 사퇴 후 민주통합당 공천을 기다렸지만 좌절돼 쓸쓸히 정계를 은퇴했다. 비례대표 초선으로서 활발한 의정 활동으로 당 대표 자리에까지 올랐던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지난달 야권단일화 경선 과정에서 보좌관의 여론조작 시도가 발각되는 바람에 눈물로 출마를 단념했다.
새누리당 쇄신파는 절반만 생환했다. 지난 3월, 국회의원 세비 삭감 및 연금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자기쇄신 공약’에 서명했던 쇄신파 15명 가운데 남경필(경기 수원 팔달) 김세연(부산 금정구) 박민식(부산 북강서갑) 신성범(경남 산청·함양·거창) 정두언(서울 서대문을) 홍일표(인천 남구갑) 김용태(서울 양천을) 황영철(강원 홍천·횡성) 8명 의원은 당선됐지만 김정권(경남 김해갑) 임해규(경기 부천 원미갑) 구상찬(서울 강서갑) 권영진(서울 노원을) 주광덕(경기 구리시) 의원과 무소속 김성식(서울 관악갑) 정태근(서울 성북갑) 의원 7명은 낙선했다.
이번 총선에서 이목을 끌었던 SNS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위력적이지 않았다. 풀뿌리시민세력 세금혁명당을 이끌고 있는 선대인 씨가 주도적으로 낙선 운동을 벌였던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비례대표)과 민주통합당 노영민(충북 청주 흥덕을) 박기춘(경기 남양주을) 의원 등은 19대에도 생환했고 특히 ‘민주통합당 X맨’으로 불리며 가장 많은 비난이 집중됐던 김진표 원내대표의 경우 지역구인 수원 영통구에서 61%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19대 총선에서 사라진 지역구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공중 분해된 전남 담양·곡성·구례를 떠나 서울 강서을에 도전했던 민주통합당 김효석 의원은 낙선했지만 경남 사천시와 합쳐진 경남 남해·하동의 경우 새누리당 여상규 의원이 사천의 유력 주자였던 통합진보당 강기갑 의원, 무소속 이방호 전 의원을 따돌리며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선거구 획정을 둘러싸고 여상규 의원과 극렬하게 충돌했던 주성영 의원(대구 동구갑)은 엉뚱하게도 3년 전 성매매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 절반인 충남 연기군이 세종시로 편입되면서 19대 국회 세종시 사수를 천명했지만 낙선하면서 지난 4월 13일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현역 의원도 새삼 화제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후 14대 민주자유당, 16대 새천년민주당, 17대 자유민주연합, 18대 무소속을 거쳐 19대에 자유선진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인제 의원(충남 논산·계룡·금산)은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18대 총선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88.7%)로 당선됐던 민주통합당 박주선 의원은 지역구인 광주 동구에서 불법선거인단 모집을 하던 한 지지자가 자살하는 불미스런 사건으로 치명상을 입었지만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31.6%의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는 저력(?)을 과시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