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철한 9단, 윤지희 3단 예비부부. |
최 9단은 프로바둑 세계 정상기사답게 세계대회 우승 타이틀로 프러포즈를 하겠다고 공언하고도 지난해 말 올 초 사이 열린 세계대회에서는 번번이 중도 탈락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화려한 약속’은 지키지 못하는 듯했으나, 4월 9일 제7회 원익배 십단전 결승 3번기 2국에서 강동윤 9단에게 흑을 들고 157수만에 불계승, 2 대 0으로 타이틀을 차지하며, 국내 타이틀로 세리머니를 대신했다. 두 사람 모두 적당한 나이에 피차 좋은 배필을 만났으니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원익배 십단전도 상당한 타이틀이어서 약속의 9할 이상은 지킨 셈이다.
최 9단은, 바둑판에서는 무지무지한 싸움꾼이지만 평소에는 정말 온순하고 자상한 ‘착한 총각’이고 요새 바둑 TV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는 윤 3단은 똑 부러지고 다부지다는 평. 옛날 일이 생각난다. 바둑 관계자 중 노총각, 30대 초반이었으니 요즘 같으면 노총각이 아니라 그냥 총각이겠지만, 한 사람이 결혼하게 되었다. 하객 중에 작고한 김수영 7단이 있었다. 김 7단이 신랑 신부를 보고는 신랑에게 슬며시 다가가 귀엣말을 했다. “신부에게 석 점은 놓아야겠는데요.”
바둑 실력이야 최 9단이 윤 3단에게는 선생님뻘이겠지만, 결혼 생활에서는 아닌 게 아니라 순둥이 최 9단이 야무진 윤 3단에게 석 점까지는 몰라도 두 점은 접혀야 할 지 모르겠다. 최철한 파이팅!
이제 국내 바둑계 프로기사 부부는 세 쌍이 되었다. 한-중 프로기사 동갑내기 커플로 2005년, 비교적 이른 나이인 스물세 살 때 결혼한 권효진 5단(30)-위에량 5단(30)을 포함하면 네 쌍이다. 프로기사 부부 제1호는 김영삼 9단(37)-현미진 5단(33). 남들이 알게 모르게 무려 6년 열애 끝에 각각 7단, 3단이던 2004년 12월에 테이프를 끊었다.
현 5단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당시에도 눈에 띄는 미모로 팬이 많았는데, 훤칠하고 서글서글한 김 9단이 제일 용기가 있었고, 수완(?)도 좋았다. 돌이켜보면 그게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김 9단 이전에도 바둑계 선남선녀 중에는 서로 은근히 마음을 주고받는 사이가 없지 않았으나 아직은 용기가 없었던 것. 또 프로기사는 승부가 업인데, 연애 감정이 승부에는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 쉬운 것. 그러나 사랑 없인 살 수 없는 것이니, 프로기사는 연애 기간을 줄이고 빨리 결혼해 안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게 통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6년 3월, 스물셋 어린(?) 나이에 동갑 규수 김현진 씨와 결혼한 이세돌 9단은 인생의 형세판단도 역시 발군이라는 축하를 받았다.
어쨌든 그동안 주로 물 밑으로만 흐르던 사랑들이, 김영삼-현미진 이후에 점차 물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이듬해인 2005년에는 1973년생 이상훈 9단과 80년생 하호정 3단이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8단과 2단이었다. 여기서 이상훈은 이세돌 9단의 친형 이상훈 8단(37)이 아니다. 뒤이어 위에서 말한 권효진-위에량 커플이 탄생했다. 권 5단은 지금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물론 지금은 세월이 꽤 지나 국제결혼이라 해도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아직 애로 같은 건 없느냐고 묻자 “있다”면서 웃는다.
“동회나 병원 같은 데 가서 남편 이름을 밝혀야 할 때 시간이 걸린다”는 것. 위에량은 한자로 岳亮(악량)이다. 岳이 ‘위에’다. 성이 ‘위에’씨라고 하면 담당자들은 이해를 못한다. 무슨 ‘위에’ 씨가 있느냐는 것. ‘악’ 씨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열이면 열 “악 씨?”라고 되묻곤 한다는 것. 권 5단은 그러나 “그런 건 정말 사소한 애로지요…^^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서 남편 자랑이 끝이 없다.
바둑 두는 사람끼리 결혼하는 건 특히 남자 프로기사로서 장점도 많다. 부인이 바둑을 모를 경우, 승부의 고통과 엄정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게다가 바둑에 지고 돌아온 날 승부사들은 때로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런 걸 설명하기도 힘든 것인데, 바둑을 안다면, 더구나 같은 프로기사라면 적어도 그런 문제로 다투거나 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 이창호 9단, 바둑기자 이도윤 부부. |
바둑 동네에서는 그 여성이 누구인지, 둘이 곧 결혼할 것이라고 대개 알고들 있으나 아직 공표된 것이 여기서 이름을 밝히기는 좀 그렇다. 힌트라면 명지대 바둑학과 출신으로 요즘 공중파, 케이블 양쪽 바둑 프로에서 진행자로, 또 바둑 행사에서는 사회자로 자주 등장하는 낯익은 사람이다.
그나저나 바둑계에는 다른 동네보다 노총각이 많고 독신도 많다. 결혼 얘기가 나오면 그들 본인과 본인뿐 아니라 주변에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바둑이 너무 재미있어 그렇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든지 말든지 할 텐데, 이건 여자 만나는 것보다 바둑이 더 재미있으니, 여자 만나 사랑하고 어쩌고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둑과 사랑을 병행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확실히 선배들보다 현명하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