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경기도 분당 선수협 사무실은 조용했다. 간간이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가 그나마 정적을 깰 뿐이었다. 하지만 박충식 선수협 사무총장을 비롯한 선수협 집행부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끊임없이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모처에서 만난 박 총장은 비장한 표정으로 “운명의 날이 이제 5일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머리를 맞대 투쟁 방향을 설정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총장이 말한 ‘운명의 날’은 5월 8일 열리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날 KBO 이사회에선 9구단 NC의 1군 진입시기와 10구단 창단 승인 여부를 심사할 예정이다. 4월 8일 이사회에서도 똑같은 주제로 회의를 열긴 했다. 그러나 당시엔 각 구단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합의에 실패한 채 5월 이사회로 공을 넘겼다.
선수협이 5월 이사회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5월 이사회에서마저 NC 1군 진입시기와 10구단 창단 승인이 결정되지 않으면 NC가 바라는 2013년 1군 진입과 야구계의 희망사항인 10구단 창단은 사실상 무산되기 때문이다.
박 총장은 “만약 NC가 2013년이 아닌 2014년에 1군 진입을 한다면 NC 선수들은 2년 동안 2군에서 뛰어야 한다”며 “다른 팀 선수들이 데뷔 이후 9년(대졸 선수는 8년)이면 손에 쥘 FA(자유계약선수)권리를 NC 선수들은 10년이 지난 후에나 행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박 총장은 “NC 선수들 사이에서 ‘2년 동안 2군에서 뛸 거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군복무를 해결하는 편이 낫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며 “신생구단이던 빙그레(한화의 전신)와 쌍방울도 ‘1년째 2군 참가, 2년째 1군 진입’의 수순을 밟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박 총장은 유독 NC 선수들만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5월 이사회에서조차 10구단 창단 승인이 결정되지 않으면 10구단 창단은 완전 무산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5월 이사회에서 10구단 창단 승인이 결정돼야 뒤따라 최종 유치지와 창단 기업체가 선정되고, 8월에 열릴 2013년도 신인지명회의에도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총장은 “만약 5월 이사회에서 10구단 창단 승인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10구단 문제는 내년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경기도 수원과 전북 등 기존 10구단 연고지 희망 지자체의 유치 의욕이 꺾여 10구단 창단 원동력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선수협의 다급함과는 달리 5월 KBO 이사회 전망은 다소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다. KBO 관계자는 “이사회에서 만약 표결로 갈 경우, 10구단 창단은 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귀띔했다.
그동안 KBO 이사회는 만장일치를 선호했다. 하지만 표결까지 갈 때도 많았다. 만약 NC의 1군 진입시기와 10구단 창단 승인을 놓고 이사회의 의견이 대립한다면 이번에도 표결로 갈 가능성이 높다.
KBO 규약엔 ‘재적위원 3분의 2이상의 출석과 출석위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명시돼 있다. 재적위원은 각 구단 사장들과 KBO 총재까지 포함한다. 일부에선 “NC는 재적위원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올해 NC는 KBO 예산권과 인사권에 대해서만 표결에 참가하지 않지, 다른 부분은 표를 행사할 수 있다. 그렇다면 9개 구단 대표와 KBO 구본능 총재까지 재적위원이 10명이 되는 셈이다.
<일요신문>이 10명의 재적위원을 취재한 결과 NC의 2013년 1군 진입을 찬성하는 쪽은 7~8명이었다. 반대는 롯데를 비롯한 2~3명. 최대 3명의 반대표가 나와도 출석위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의결되기 때문에 표결로 갈 시 NC의 2013년 진입안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NC에서도 1군 진입시기와 관련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문제는 10구단 창단 승인 여부다. 현재 10구단 창단 승인을 반대하는 구단은 롯데, 삼성, 두산, 한화로 알려졌다. 표결 시 4개 구단이 반대표를 행사한다면 10구단 창단 승인안은 부결된다. KBO에서도 NC 문제는 순조롭게 해결될 것으로 보나, 10구단 창단 승인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
KBO 핵심 관계자는 “4개 구단의 반대 의사가 워낙 확고해 전혀 설득이 되지 않는다”며 “KBO 구본능 총재가 직접 구단주들과 접촉해 설득 작업을 펼치기까지 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구 총재는 4개 구단의 구단주와 접촉해 10구단 창단에 협조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모 구단은 구 총재의 설득으로 기존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반대로 태도를 돌변했다. 모 야구인은 “A 구단 모그룹의 실세가 ‘10구단 창단 반대’를 외치자 나머지 구단 모그룹의 실세들이 의리를 내세워 A 구단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 것으로 안다. 대한민국 야구의 미래가 모그룹 수장들의 개인적인 의리 때문에 무너진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야구인은 “더 기가 막힌 건 이들이 10구단을 반대하면서 내세우는 논리가 ‘넥센을 없애고, NC가 리그에 들어오면 8개 구단 체제가 유지된다’는 것”이라며 “엄연한 KBO 회원사인 넥센의 재산권을 어떻게 강제로 빼앗을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KBO는 4개 구단 가운데 한 구단이라도 태도를 바꿔 찬성표를 던지길 희망한다. 선수협의 대국민 홍보전이 반대 구단의 마음을 돌리길 내심 바라고 있다. 박 총장은 “전체 야구인이 모여 목소리를 함께 낸다면 4개 구단도 자세를 바꾸지 않을까 기대한다”며 “5월 8일 이사회 개최를 앞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투입해 대국민 선전전에 나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