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8일 통진당 비례대표후보부정투표 진상조사위원회에서 김재연 당선자(왼쪽)가 눈물을 흘리자 이정희 공동대표가 손을 잡아 주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4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을 처음 세상에 알린 이청호 부산금정구 의원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비례대표 사태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 의원은 5월 초까지만 해도 “결코 분당은 없다”고 이야기해 왔지만 최근 “저쪽에서 슬슬 준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느냐”며 입장을 선회했다. 그가 언급한 ‘저쪽’이란 ‘경기동부연합’, ‘주체사상파(NL)’ 등으로 불리는 민주노동당계 구 당권파 세력이다.
현재 구 당권파 측은 제1차 중앙위원회에서 의결된 경쟁 부문 비례대표 총사퇴 결의안에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고 비당권파인 윤금순 의원(비례대표 1번) 역시 “당권파에게 의석을 승계할 수 없다”며 사퇴를 보류하면서 통합진보당 의석은 단 한 자리도 승계되지 못한 상태다.
당 내부에서는 비례대표 의원과 후보자들의 사퇴 문제와 당 쇄신 방식을 놓고 의견이 첨예하고 대립되고 있다. 강기갑 전 의원을 위원장으로 한 ‘혁신비상대책위원회’의 경우 전당대회가 있는 6월 말까지 자진 사퇴를 거부한 후보자들을 출당 조치시킨 후 당을 바로세우겠다는 각오인 반면 오병윤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당원비상대책위원회’는 “전자투표로 의결된 비례대표 사퇴안은 무효이며, 당원총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는 기존 당권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의 이 의원은 “어떤 방식이든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출당 및 제명은 시간문제다. 빠르면 20일, 길어도 3개월이면 쫓겨나든지 어떻게 하든지 당직이 정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석기 의원은 ‘참여당의 유시민과 같은 존재’라는 나의 폭로에 처음에는 반발하더니 그 뒤로 별다른 말이 없다. 이석기 의원도 유 전 공동대표와 같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이석기-김재연 두 의원의 무리한 사퇴 거부와 관련해 구 당권파의 패권주의 때문이라는 기존의 주장과 함께 분당을 위한 ‘연막작전’이라는 주장이 비등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출신의 한 당직자는 지난 5월 초 기자에게 “당권파는 6월 전당대회까지 어떻게든 버틴 이후 지도부와 당직 입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귀띔했지만 최근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당권 장악에 실패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현재 구 당권파에서는 사퇴 거부 의원들의 출당 조치에 맞춰 새로운 연합체를 구성하는 ‘2차 시나리오’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서울 관악을의 이상규 의원 역시 “지금 상황은 분당될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라고 밝혀 이런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서의 당직자는 “해당 시나리오는 이석기-김재연 두 의원의 출당 조치에 맞춰 시작될 것”이라며 “검찰이나 다른 정당을 통한 강압적 출당이 이뤄질수록 기존 당원들에게 할 말이 생기게 된다. 출당된 의원과 당직자들은 당 밖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당 안에 남은 구 당권파 의원들은 혁신비대위와 국민참여당계를 흔들면서 세력을 약화시키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게 될 것”이라며 특히 “6월 말 전당대회를 목전에 두고 이석기 의원이 자진 사퇴하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이런 시나리오에 관해 국민참여당계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국민참여당 당직자 출신 한 당원은 “19대 국회의 경우 당권파가 배출한 통합진보당 의원이 13석 중 8석이다. 현재 경기동부연합 쪽에서 당 지분이 50% 가까이 집중된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쪽과 세를 규합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이석기 의원은 자금을 동원하고, 김재연 의원은 한대련(한국대학생연합) 조직을 움직일 가능성이 많다”고 전했다.
▲ 지난 5월 31일 ‘민주주의와 소통, 통합진보당 혁신을 위하여’란 주제로 한 1차 토론회에서 강기갑 비대위원장이 인사를 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민 위원장은 이 전 공동대표와의 만남 자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현재 혁신비대위 안에서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당기위원회 제소에 반대하며 타협안을 주장하고 있어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당 관계자는 “운신의 폭이 좁아진 이 전 공동대표 대신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가 신당동 인근에서 당권파와 접촉 중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함구했다.
이 같은 분당 시나리오를 전해들은 통합진보당원 윤 아무개 씨는 “이 전 공동대표가 무리하게 구 당권파를 대변하면서 공분을 사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파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지난 총선과 이번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에서도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느냐”며 “자칫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분당을 뒤에서 돕고 있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라고 전했다.
민주통합당 소속 한 보좌관 역시 “통합진보당 분당은 있어선 안 될 최악의 상황”이라며 “민주통합당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이석기-김재연 두 의원이 자진 사퇴해 진보당 자체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지 않고 새누리당이 주도적으로 제명 조치에 나설 경우 상대적으로 야권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