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박찬욱 등 거장들 ‘외유’ 중…팬데믹 이후 신작 투자 줄어 ‘선순환 끊겨’
#올해는 누가 가나
올해도 칸국제영화제에서는 다양한 한국 영화들을 만나볼 수 있다. 경쟁부문에는 들지 못했으나, 비경쟁부문·주목할 만한 시선·감독주간 등의 섹션에 한국 영화들이 포진됐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단연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이다. 비경쟁부문에 나서는 ‘거미집’의 주인공은 지난해 ‘브로커’로 한국 배우 최초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송강호다. 그는 어느덧 여덟 번째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는다. 김 감독의 경우 송강호와 함께했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15년 만에 칸을 노크한다. 이 영화는 촬영을 마친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더 좋아질 거라는 강박에 빠진 감독(송강호 분)이 검열 당국의 방해 및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과의 마찰 속에서 촬영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배우 송중기는 처음으로 칸의 초대를 받았다. 그가 참여한 독립영화 ‘화란’(감독 김창훈)이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된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의 이야기를 담은 누아르다. 신인 배우 홍사빈과 송중기가 각각 연규, 치건 역을 맡았다.
2019년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의 일원으로 영광을 함께했던 배우 이선균은 정유미와 함께한 영화 ‘잠’으로 비평가주간에 참여한다. 잠에 들면 다른 사람처럼 변해 끔찍한 행동을 하는 남편과 이 공포의 비밀을 파헤치는 아내의 이야기를 그렸고, 두 사람이 부부로 호흡을 맞춘다. 이 영화는 신인인 유재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비평가주간 상영작은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 후보가 되기 때문에 올해 초청된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수상을 노려볼 만하다.
내로라하는 국제영화제의 단골손님인 홍상수 감독은 그의 30번째 장편영화 ‘우리의 하루’를 감독주간 섹션에서 소개한다. 어느덧 열두 번째 칸 나들이다. 칸 감독주간 집행위원장인 쥴리앙 레지는 “김민희가 어떻게 진정한 여배우가 되었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홍상수 감독은 삶에 대한 교훈을 얘기하는 두 인물 사이의 평행 편집에서 명료함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홍상수 감독은 가장 위대한 현대의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라고 초청 이유를 밝혔다.
#경쟁부문에서 사라진 한국 영화
아시아 영화 시장의 맹주로 자리 잡은 한국은 한동안 칸의 단골손님이었다. 박찬욱, 이창동, 홍상수, 임상수, 봉준호 감독 등이 릴레이로 경쟁부문에서 세계적인 거장들과 어깨를 견줬고, 2019년 ‘기생충’이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팬데믹으로 인해 오프라인 개최가 무산되는 등 칸국제영화제도 어려움을 겪었으나, 2022년 공식 행사가 재개되자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감독상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남우주연상을 각각 수상하며 한국 영화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올해 경쟁부문 진출 불발은 이미 예견됐다. 이를 두고 영화 관계자들은 “갈 만한 감독, 작품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거장들의 부재가 크다. 봉준호 감독은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패틴슨과 영화 ‘미키 17’을 촬영 중이다. 박찬욱 감독의 경우 HBO 오리지널 시리즈인 ‘동조자’에 집중하고 있다. 칸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주목하는 두 간판 한국 영화감독이 ‘외유’ 중이란 뜻이다.
한국 유명 감독들의 해외 인지도가 상승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국내 영화 시장의 자본력으로는 더 이상 그들을 잡아놓을 수 없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이창동 감독은 2018년작 ‘버닝’ 이후 별다른 활동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들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배턴을 이어받을 감독들이 등장해야 하는데 그들을 육성하고 뒷받침할 만한 시장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CJ ENM,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등 국내 4대 투자배급사 작품은 눈에 띄지 않는다. ‘거미집’은 ‘기생충’을 만들었던 바른손이앤에이, ‘화란’은 2022년 ‘헌터’로 칸에 다녀온 플러스엠의 작품이다. 이는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3년 동안 4대 투자배급사가 지갑을 닫고 있었던 여파라 볼 수 있다. 좋은 감독과 작품을 고르고 적극적으로 투자하려는 시도가 줄었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흐름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촬영을 마친 뒤 개봉을 하지 못한 ‘창고 영화’들을 제외하면 신작 투자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흐름이라면 2024년 이후에는 극장에 걸 영화 자체가 부족해진다. 하물며 전 세계에서 출품된 유수의 영화들과 경쟁할 양질의 영화도 기대하기 힘들다.
한 영화 관계자는 “국내 영화 시장의 위기와 국제영화제에서의 부진은 맞물려 있다. 결국 적절한 자본이 투입돼야 실력 있는 감독과 계약해 경쟁력 있는 작품을 생산할 수 있는데 이런 흐름이 끊겼다”면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성과와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고,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아쉽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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