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 발행 확대하고 SMP 상한제 도입, 부동산 매각 계획도…우회적인 적자 해소법 부작용 피할 수 없어
#자구책 내놨지만…
정부는 지난 5월 16일부터 전기요금을 현행보다 5.3% 오른 킬로와트시(kWh)당 8원 인상했다. 1분기에 kWh당 13.1원 인상한 것과 합하면 올해 전기요금 인상폭은 kWh당 21원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단위당 약 51원의 인상을 촉구한 것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번 인상으로 정부는 2조 6000억 원 규모의 적자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는 올해 1분기 한전의 적자(약 6조 2000억 원)도 메울 수 없는 상황이다. 비상경영을 선포한 한전은 앞서 5월 12일 자구책을 발표했다. 한전은 2026년까지 여의도 소재 남서울본부를 포함해 매각 가능한 모든 부동산을 매각하고 임직원의 임금 인상분 등을 반납해 총 25조 원 이상 규모의 재무 개선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자구책을 두고는 뒷말이 나온다. 당장의 위기는 피할 수 있겠지만 향후 더 큰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는 “적자를 이유 삼아 한전의 알토란 같은 자산을 싸게 넘겨줄 경우 외환은행 헐값 매각사태를 재연할 우려가 있다”며 “판매한 사옥을 재임대하려면 전체적으로 더 큰 비용이 소요된다. 매수자는 헐값에 사고 중개인만 수수료를 잔뜩 챙기게 되는 조치”라고 말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또한 “공개한 내용만 놓고서는 어떻게 25조 규모의 자구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납득 가능한 자구책이 되려면 한전의 회계장부부터 포함해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자구책을 쥐어짜내야 할 정도로 자금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전의 회사채 발행한도가 한전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6배까지 늘었지만 대규모 적자로 자본금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가 한전채 발행량을 더 늘리기 어려워진 한전은 기업 어음(CP) 발행량을 늘려서 대응하고 있다. 5월 12일 기준 한전의 CP 발행잔액은 약 5조 500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55%가량 늘었다. CP는 회사채보다 발행이 쉬운 대신 1~3개월로 만기가 짧고 발행금리를 낮출 수 없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결국 한전의 재무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로 도매 가격을 억누르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MP 상한제란 전기의 소매가격보다 도매가격이 높아 발생하는 역마진을 해소하기 위해 발전사업자들이 한전에 판매하는 전기가격에 상한을 부여하는 정책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2022년 1월 kWh당 154원 수준이었던 SMP는 2022년 12월 기준 268원 수준으로 올랐다. SMP 상한제 도입 시 한전은 매월 약 70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11월까지 한시적으로만 시행되는 데다가 민간 발전사업자들은 ‘고통분담’이 시장논리에 맞지 않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우회적인 방법은 한계, 인상은 불가피?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 때 중점적으로 추진하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줄이고 있다. 정부는 2026년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비율(RPS)을 기존 25%에서 15%로 대폭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RPS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채워야 하는 제도로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이다. 한전에 상당한 비용 부담을 주던 RPS가 축소되면 당장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의 위축이라는 부작용도 제기된다.
국제사회에서 점점 거세지는 RE100(기업이 소비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 요구와 2026년부터 본격화할 탄소국경세 부과 움직임을 고려하면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위축될 경우 장기적으로 무역에 미치는 악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발전업계 다른 관계자는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사고 싶어도 우리나라에 재생에너지가 없어 수출이 막히거나 결국 공장이 해외로 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용인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세운다고 했는데 현 상태가 지속되면 RE100 수요를 감당하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회적으로 적자를 해소하려다 보니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여당은 국민 부담을 이유로 전기요금 인상에 미온적인 분위기로 알려졌다. 여름철 냉방 수요가 커지는 3분기(7~9월)부터 총선 전까지는 전기요금이 동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요금을 정상화해야 전기 수요도 줄어든다. 연료 수입이 현재 무역 적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요금을 올려서 전기 수요를 줄여야 무역 수지도 개선될 것”이라며 “그리고 나서 에너지 빈곤층이나 열악한 중소기업은 정부가 우회적으로 재정을 투입해서 구제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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